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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동생

by 작은영웅

동생이 네 명이나 되다 보니 동생들을 통해서 다양한 삶을 경험한다. 오늘은 셋째 동생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나랑 가장 친하면서 취향이 비슷해서 잘 통하는 동생이다.

외모가 전혀 닮지 않은 형제자매들(한동안 엄마를 의심했다. 혹시 아빠가 다 다른 건 아닌가 하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비슷해진 것 같기도 하다.) 중에 ‘묻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는 그 말에 걸맞게 어릴 때부터 미모가 빼어났다.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 나가 보라는 주변의 권고가 많았을 정도였다. 당시 사진을 보면 일단 하얀 피부에 쌍꺼풀 진 큰 눈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약간 다혈질인 자매들 사이에서 유독 순한 편이었다. 손아래 동생과는 매일이 전쟁이었지만 셋째랑은 싸운 기억이 없다. 무슨 일을 시키면 설사 안 하게 되더라도 일단 ‘응’이라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약간은 존재감 없는 아이 었던 것도 같다.


암튼 착한 아이 었던 셋째는 무럭무럭 자라서 그 성정에 어울리는 간호사가 되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와서 병원에 의사 선생님과 연애를 할 것이라 기대했던 우리들에게 어느 날 한 남자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병원 노조에서 만나 같이 활동하던 노래패 사람이라고 했다. 당연히 의사 선생님은 아니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온 가족이 모여서 미래 사윗감을 기다렸다. 노조에서 만난 사람이라 약간 센(?) 사람이 아닐까 하면서.

현관에 들어선 제부를 본 순간 일단 외모에서 실망했다. 왜소한 몸피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서 중학생처럼 보였다. 게다가 병원은 임시직이었고 법대를 나왔는데 고시공부를 해서 인권변호사가 되겠다고 했다. 어쨌든 부자로 살기는 물 건너간 것 같았다. 동생의 고생길이 훤해 보였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나니 셋째가 갑자기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했다. 나를 제외한 동생들은 다들 노래 한가닥 하는 스타일이라 어색함을 덜고자 결국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좀 실수였다. 노래방에 가니 이 청년은 물 만난 고기였다. 내 동생도 노래패에서 이 노래 솜씨에 반한 게 틀림없었다. 담백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김광석 노래를 부르는데 그분이 빙의하신 줄 알았다. 당시 김광석 노래에 빠져 있던 나는 거의 넋을 잃었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께 괜찮은 청년이라고 빨리 결혼을 허하라고 재촉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렇게 일사천리로 결혼한 이후로 그들 부부는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한사코 거절한다. 노래방은 자기들 스타일이 아니래나 뭐나. 흥, 노래방 결혼 작전에 넘어간 우리는 지금도 가끔 억울해한다.


결혼 이후, 착한 동생의 험난한 인생살이가 시작된다. 제부는 어느 순간 고시 공부를 그만두었고, 적성에 안 맞는 작은 회사들을 전전하다가 친환경 먹거리 가게를 운영하더니 결국 귀농을 선언했다. 농부학교를 다니고 양평으로 제주로 정착지를 찾아 헤맨 끝에 결국 남쪽 마을에 정착했다. 그동안 동생은 착실하게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자식이 생기지 않은 동생에게 오히려 다행이라면서 남편을 아들처럼 여기고 사라고 조언해주곤 한다. 돈벌이보다는 소신과 이념을 추구하는 정치적이고 순수한 남편을 사랑하는 셋째는 무소유와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욕심 없이 남쪽 도시에 살게 되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셋째는 어느 밤, 극심한 복통을 느꼈고,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큰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 결국 50도 안된 나이에 난소암 판정을 받은 동생은 자궁을 포함해서 난소까지 제거했다. 난소암은 발견도 어렵고 증상이 느껴지지 않아서 발견되면 말기환자이기 쉽다는데 동생은 다행히 초기 발견을 한 케이스였다.

이후 동생은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면서 몸관리에 힘쓰며 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무소유였던 동생은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욕심이 없어진 것 같다.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어서인지 조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씀씀이가 크다.


이런 동생이 참 좋은 나는 가끔 ktx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내가 도착한 도시에 동생은 차를 몰고 와서 대기하고, 나는 동생과 신나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여행 스타일도 비슷하고 어지간하면 잔소리도 안 하고 순응하는 셋째는 내가 짠 일정에 좋아라 하면서 함께 한다. ‘인생 별거 없어. 즐겨야지. 놀 수 있을 때 놀자.’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서 동생을 엄청 부려먹고 나는 유유히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난 셋째 동생이 좋다. 가깝게 살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먼 남쪽 도시에 동생이 있어서 참 좋다. 나의 부추김으로 차도 튼튼한 것으로 바꾼 동생이 운전을 해줘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생과 여행을 하면 맘이 잘 맞아서 어딜 가든 즐겁다.


셋째가 건강하길 바란다.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든든한 느낌이 드는 동생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예쁘고 조용한 곳에서 살아간다면 셋째가 사는 곳 근처에서 살고 싶다. 많이 의지가 될 것 같다.

가끔 생각나고 가끔 궁금하고 가끔 보고 싶다.

봄꽃들이 내 마음을 하늘하늘 흔드는 날, 또 ktx를 타야겠다. 은은한 분홍 꽃잎들이 하늘거리는 공간에서 따뜻한 커피도 한잔 하고,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동네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씩 하면서 여행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러면서 말해 주고 싶다.

넌 잘 살고 있다고, 앞으로도 같이 잘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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