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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들기

by 작은영웅

나이가 들수록 노여움이 늘어난다. 나이가 들면 오지랖이 넓어지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 너그럽게 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더 소심해지고 소소한 말에 상처받고 마음에 꿍하게 간직하고, 그러면서도 표현하면 속 좁은 사람 될까 봐 이해하는 양 감추려니 사람 만나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얼마 전에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다들 서로를 배려하고 감탄해 주고 상대방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이틀째가 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면 계획하고 루트를 짜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주로 내 몫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장소마다 감탄하고 좋다고 하면서도 오래 머물려고 하지 않았고, 제대로 안 보고 후딱 나가려고 했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과 행동이 달랐던 셈이다.

너무 멋진 곳이다 하면서 자세히 보지 않고 나가려 하고, 너무 맛있다 하면서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고 남기는 일 같은 것. 내가 짠 일정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몹시도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여행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제주도가 원래 바람이 많은 곳이거늘) 산책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길이 미끄럽다는 이유로 여행을 포기하고 아침부터 렌터카를 반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내 여행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여행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으니 여행 스타일도 다양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12월 제주 동백 여행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여행이라서 속이 상했다. 내년에 다시 오자 다짐하며 마음을 달랬지만 비행기마저 연착되자 마음이 부글부글 했던 것이다.


이렇게 뜻대로 안 되면 마음에 불만이 차오르고, 나의 노고와 배려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속상하게 느끼는 것은 인정 욕구가 강해서인 것 같다.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고 대단하다고 해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일이 다 내 뜻대로 될 수는 없는 터이니 이런 나를 내려놓고 조금은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나이 들어가다가는 고집 세고 완고한 노인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두렵기까지 하다.


만나고 싶어 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점점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으니.

모임에 나가서도 잘난 체하고 싶어 하고, 듣기보다는 말하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이 싫어 가급적 입을 다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면 참느라고 잘했다 싶으면서도 모임이 재미가 없어진다.

경청이 그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어쩌면 나의 초라함이 드러날까 봐 더욱더 잘난 체에 열을 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칭찬에 목말라한다. 이렇게 발표를 잘했는데 왜 멋진 발표였다는 말을 안 하지, 이렇게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하는데 피부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왜 안 하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었는데 젋어보이고 예뻐 보인다는 얘기를 왜 안 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그렇게 칭찬으로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이 만족을 얻지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기분이 나빠진다.

혹여 누군가가 칭찬의 말을 하면 마음의 출렁임이 심하다. 내가 높은 직위의 사람이었으면 아첨하는 이에게 둘러싸인 멍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내가 남들을 칭찬하면 어떨까.

그러고 보면 나 자신도 남을 칭찬하는데 엄청 인색하다. 오죽하면 두 딸아이가 ‘엄마가 예쁘다고 하면 진짜 예쁜 거야.’라고 말했을까. 그러면서 남의 칭찬을 바라다니 어불성설이다. 다른 이에게 나를 칭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니 일단 내가 먼저 남을 칭찬하는 것을 시도해야겠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다들 기분 좋아지는 거니까.

대단하다. 멋지다, 좋아 보인다, 예쁘다 등등. 이런 좋은 말들이 오가는 만남은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


좀 더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에게 진심 어린 칭찬을 적절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서지 말고, 오버하지 말고, 잘난 체 하지 말고, 적재적소에서 한 두 마디 필요한 말을 하고 나머지는 감탄과 칭찬으로 채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물론 영혼 없는 칭찬은 제외하고.

이를 실천할 오늘 밤 모임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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