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

by 작은영웅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계절마다 제일 먼저 가고 싶어서 떠올리는 곳이 제주이다. 제주에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내 집 드나들 듯이 생각날 때마다 가서 쉬다 오고 싶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여행은 누구랑 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제주는 누구랑 가도 좋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젖어 옆에 있는 이들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옥빛 바다와 계절마다 바뀌는 꽃의 향연에 그저 행복하다. 사는 곳이 김포공항에서 멀지 않고 제주도 비행기 요금은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언제든 가서 제주를 품을 수 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운전이다. 운전을 못한다는 점이 유일한 걸림돌이다. 뚜벅이로 제주를 다니는 것은 체력의 문제보다는 나에게는 들개 위험 때문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걷다가 만나는 목줄 없는 개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돌아오는 순간 다시 가고 싶어지는, 가 있는 동안 흐르는 시간이 너무도 아쉬운 제주. 무엇이 이토록 나를 이끄는지 생각해 본다.


일단 봄부터 생각해 보자. 봄꽃 하면 떠오르는 것은 벚꽃이다. 날이 따뜻해서 매화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3,4월이 바쁜 때라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 시기에는 제주에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시기에는 육지에서도 봄맞이할 곳이 너무 많아서 제주까지 갈 생각을 못했다. 육지는 봄꽃이 필 때 초록빛이 약해서 은은한 빛을 띤다면 제주는 늘 초록이 가득하기 때문에 봄꽃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닐 것 같다.


다음은 여름이다. 정확히 말하면 5,6,7월. 이때의 제주는 어딜 가도 환상의 꽃밭이다. 특히 수국이 피는 6월은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기이다. 한송이도 압도적이 꽃들이 무더기로 몽글몽글 피어 있는 수국밭은 환상 그 자체이다. 게다가 초록을 제외한 모든 색깔의 꽃송이들이 다양한 색감으로 모여 있으면 그 자체가 그림이다.

바닷가든 산속이든 들판이든 골목길이든 그 어디서든 수국은 존재감이 완연하다. 꽃 한 송이만 들고 사진을 찍어도 부케를 든 신부처럼 아름답다. 그러니 내가 해마다 수국을 보러 갈 생각에 가슴이 설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수국 꽃밭에 살짝 앉아서 같이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이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 것이다.

5월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진 싱그럽고 아름다운 초록의 향연, 7월은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온갖 꽃들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다. 이 세상에 이렇게 꽃이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 정원들을 만날 수 있다.


가을에 접어들면 제주는 코스모스와 메밀꽃, 핑크뮬리로 뒤덮인다. 원래 가을 제주 하면 억새가 대표였다. 하지만 이것도 유행이 있어서 거친 느낌의 억새보다는 아기자기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해 억새는 주인공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산등성이나 오름에 파도치는 억새의 역동적인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 또한 잔잔한 꽃들의 무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가을꽃들은 육지에도 차고 넘쳐서 가을에는 제주를 잘 안 가게 된다.


드디어 겨울이 되면 제주는 다시 매력적인 곳으로 변한다. 육지에 없는 꽃들이 제주에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 제주의 완승이다.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12월의 제주는 붉은 동백꽃과 노란 귤이 열린 나무들이 따뜻한 날씨와 함께 추위에 지친 사람들을 달래주는 곳이다. 애기동백꽃의 화사함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주홍빛을 띤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는 꽃보다 아름답다. 따사로운 서귀포 앞바다의 윤슬은 종일 바다멍을 해도 지겹지 않고 머리카락을 감싸고도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면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는 느낌마저 든다. 1,2월은 동백꽃도 시들고 귤도 조금씩 줄어들지만 푸릇푸릇한 풀잎이 대지를 덥고 노란 배추꽃과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처럼 4계절 아름다운 제주.

나중에 시간이 되면 6월과 12월에 한 달 살기를 할 생각이다. 한 달을 살면서 경치 좋은 곳마다 자리 잡은 카페 투어를 해보고 싶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카페 하나마다 한 편의 글쓰기를 해서 책 한 권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제주, 그곳에서 만든 책 한 권,

그 정도면 충분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멋지게 나이 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