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낯선 그 곳을 향해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생일을 맞은 학생들에게 자비로 사신 책과 진심을 담은 편지를 선물로 주셨다. 그땐 전혀 몰랐다. 어리석게도 선생님께서 좋아서 하시는 일이니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2000년 2월의 어느 날.
내 생일날 선생님은 내게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과 함께 직접 쓰신 편지를 건네셨다. 그 편지 속 문장은 단순한 생일 축하와 격려를 넘어섰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 깊이 새겨진 한 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 말아라."
두둥.
당시 나는 반에서 1등을 하고 있었지만, 전교 등수로는 그다지 뛰어난 등수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당시 우리반에서만 운 좋게 1등이었을 뿐이었다. 다른 반에 갔다면 그 자리도 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마음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는 수준에서 항상 멈췄었다. 그것이 내 나름의 편안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조차 외면하고 있던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 것 같았다. 편지 속 거칠지만 단호한 필체로 적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마음 깊숙이 숨겨둔 내 치부가 낱낱이 드러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춘기 소녀에게 그건 낯설고도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늘 "알아서 잘하는 아이"로 평가받던 나는 누군가 내 행동을 지적하고 내게 부족함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나태함을 마주해야 했다. 그 당황스러움은 내 기억에 강력하게 남아 마음속 깊이 흔적을 새겼다.
나는 지금,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우물 안인가, 우물 밖인가?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우물 안이다. 익숙하고 안전한 이 자리, 마치 선생님께서 내 미래를 예견하셨던 것처럼. 나는 그 우물 속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 나는 우물 밖 세상을 향해 첫 점프를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께서 주셨던 가르침을 드디어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더 이상 작은 세상에 갇힌 행복한 개구리로 머물지 않으리라.
이제야 세상을 향해 힘을 모아 발돋움을 하려고 한다.
우물 밖의 넓고 낯선 세상.
거기에 닿을 수 있다면, 비로소 내가 진짜 나를 만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