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행 기록법
"잠깐만, 엄마 미쿡 좀 다녀올게!"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또 다른 기억의 문이 열린다.
나는 여행지에서 냉장고 자석을 수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흔해 빠진 자석이라는 아이템에 나만의 특별한 추억을 담아 저장한다. 한여름 밤, 시원한 물을 꺼낼 때도, 바쁜 아침 밑반찬을 고를 때도 내 시선은 자연스레 자석의 나라와 도시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의 만남, 음식, 그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좌르륵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행지에서 똑같은 물건을 사고 모으는 일이 이렇게 마음에 큰 위안이 될 줄 몰랐다. 각각의 여행이, 그리고 그 여행의 주인공이었던 나의 모습이 얼기설기, 때론 촘촘히 고스란히 엮여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연결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에겐 자석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고르는 과정 또한 큰 의미가 있었다. 적당한 가게를 찾아 헤매고, 딱 마음에 드는 자석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은 내 여행의 묘미 중에 하나였다.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단번에 자석을 선택하기도 했고, 비슷비슷한 가게를 몇 군데나 돌아다니다가 특별한 자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만의 기준은 명확했다. 내가 그 도시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장소나 그 도시만의 상징이 담겨 있을 것, 원색의 큰 글자가 아닌(전 세계 공통의, 알록달록 비슷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있다!) 고유한 그 도시만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글자일 것. 그렇게 시간을 들여 고른 자석들은 단순한 냉장고 자석 그 이상, 내게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나에게도 두 명의 소중한 선물이 찾아왔고, 이들과 웃고 울고 지지고 볶는 7년의 시간 동안 나의 자석 수집은 한동안 ‘강제 멈춤’ 상태였다. 그러다 작년 1월, 나는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나에게 주는 선물로 다시 자석 수집을 시작할 기회를 부여했다. 발리에서 다시 자석 모으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발리만의 전통 건축과 상징, 그리고 가장 강렬했던 기억인 발리의 전통 춤을 추는 무희가 어우러진 디자인이었다. 자석을 볼 때마다 발리의 이름 모를 금속의 악기 소리와 무희의 손끝, 커다란 눈동자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재생된다.
더 많은 세상을 내 두 눈에 담고 싶다. 신비한 대자연을 두 발로 직접 딛고 느끼고 싶다. 언젠가 우리 집 냉장고가 각각의 추억을 담은 소중한 자석들로 가득 차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과 의미 있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한 편의 여행 에세이 그 자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