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드디어
아이들을 먼저 대기실에 내려주고 배 앞에 한참을 대기하고 있다 차를 싣기 위해 커다란 배를 향해 서서히 다시 출발했다. 검고 웅장한 입구를 향해 덜컹거리는 차를 몰고 올라가려니, 괜스레 겁이 났다. 혼자서 미지의 세계로 내던져지는 기분이랄까. 아이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강인한 엄마처럼 굴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이 없는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마음이 한없이 여려진 그저 연약한 사람이었다.
덜컹, 덜컹. 차가 무시무시한 입구를 향해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긴장한 근육이 조금 더 단단해질 무렵, 곳곳에 서 있는 안내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휴—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안내선을 따라 차를 몰고 한 층, 또 한 층 올라가다 보니, 크고 묵직한 덤프트럭들도 배 안에 질서 있게 주차되어 있었다. 삼층까지 올라가자 이미 많은 차들이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이제 ‘주차’라는 마지막 난관이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세워진 쇠기둥을 피해 옆 차에 맞춰 정해진 공간에 정확하게 주차를 해야 했다.
그래, 나는 엄마였지. 마음을 다시 단단히 동여매고,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안내해 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차를 주차했다. 직원분들이 쇠로 된 바닥에 바퀴 하나하나를 단단히 고정시켜 주는 모습을 지켜보니 배를 탄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다시 가서 표를 끊고, 함께 배에 올랐다.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나 있었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이 거대한 배가 얼마나 신기할까.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도, 나와 함께한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7년 넘게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부모님은 함께 살던 집에서 우리만 쏙 떠나가는 장면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차라리 제주까지 함께 가서 직접 데려다주는 편이 마음이 더 놓일 것 같다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랬다.
두 분을 그곳에 두고 ‘안녕’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등을 돌려 떠났다면, 아마 나의 눈물샘은 고장 나 멈출 줄 몰랐을 것이다. 아니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주기적으로 고장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는 20년 만에, 엄마 아빠와 함께, 그리고 나의 평생 베프이자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배에 올랐다.
배 안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비록 대합실이 아주 넓진 않았지만, 세 시간 반을 보내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밤새 배에서 자면서 가는 방법도 고려해봤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차라리 낮에 짧게 타고 가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아이들도 배에서 꽤 잘 지내주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드게임 두 개로 한 시간가량을 잘 버텨주었고, 챙겨 온 종이컵 열 개로 탑도 쌓고 숨긴 물건 찾기 놀이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배 안에 있는 매점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저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쁘다, 아름답다—
그런 단어로는 뭔가가 부족했다. 마땅한 표현을 찾기도 전에 가슴 한 켠이 벅차올랐다. 여행이 아닌, ‘살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이 그 감정을 더 낯설고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를 떠나보내는 친구들이 “너 바다 건너는 거 보니까 해외로 이민 가는 것 같다”라고 했었는데, 막상 나는 내 기분이 어떤 건지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낯설고, 막막하고, 설레고, 기대되었으며 벅찼다.
“야호! 제주도다~!!”
아이들의 텐션은 정말 대단하다. 때론 그 끝없는 에너지가 벅차기도 하지만, 사실 그 힘 덕분에 내가 하루하루 살아질 때가 더 많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우리의 새 보금자리.
둘째는 아직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은 빈 대걸레를 들고 집 안을 뛰어다니며 입주 청소 퍼포먼스를 했다. 처음 이 집을 마주한 부모님도, 생각보다 쾌적한 내부 상태를 확인하고는 마음이 놓이시는 눈치였다.
그리고, 자기가 그렸던 보물지도 속에 그렸던 그림과 같은 이층 집에서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가지게 된 첫째. 처음에는 어색한 듯 표정이 쌜쭉했지만, “집 어때?”라는 물음에 환하게 웃으며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 한 마디에, 내 마음도 한결 놓였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아버지가, 그날은 사위와 한 잔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소중하게 아껴 두었던 매실주와 하나씩 꺼낸 안주들이 하나둘 식탁 위에 놓였다. 가슴 깊이 사랑하는 딸을 앞에 두고, 사위에게 가벼운 듯 툭툭 던지는 아버지의 말속엔 고이 전달하고 싶은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편은 그걸 알아챈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허허 웃으며 아버지의 빈 잔에 매실주를 쪼르륵 따랐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지난 7년, 딸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고. 남편도 조용히 덧붙였다. 자신 또한 나의 덕에 잘 버텨낼 수 있었다고.
정말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나를 끝없이 흔들고, 때로는 무너뜨릴 듯 밀어붙였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 시간이 나를 가장 깊고 단단하게 자라게 한 시간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예상조차 못했던 제주도의 어느 집. 아이들은 신났지만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평온히 잠들었고, 내가 사랑하는 두 남자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잔을 기울이는 이 풍경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찬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