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나를 안아주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찾은 나의 첫 안식처

by 샤인포레스트


이사는 짐만 옮기면 끝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사는, 공간을 정리하는 일이자 삶을 다시 짜 맞추는 일이란 걸. 하루 종일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하고, 포장을 뜯고,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차라리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퇴근해서 짐 싸고, 아이들 챙기던 그때가 덜 피곤했던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잠시 들기도 했다.


돌풍이 휘몰아치는 제주.

말로만 듣던 제주의 날씨와 생활 문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처음 이사를 온 날부터 10일 정도가 지났는데 그동안 비가 오지 않은 날은 3일, 나머지는 매일 비가 내렸다. 2월 말, 3월 초 제주에는 자주 비가 온다는 지인의 말이 정말이었다.


“여긴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와?”


하고 묻는 아들의 말에 뜨끔했다. 그리고 부디 어서 파란 하늘이 아이를 반겨주어 이곳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사실 나 또한 ‘불편하다’라는 말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이곳의 특유의 리듬, 문화에 천천히 발을 들이고 있다. 여행을 올 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 집을 구하러 왔을 때의 느낌과도 또 달랐다. 멋진 풍경과 맛집을 찾으러 다니던 여느 때와 다르게 생활을 위해 매일 동네를 둘러보고 물건을 사러 나갔다. 하지만 날씨가 궃기도 했고, 오늘은 달리 하루 종일 집 안에서만 머물러 보기로 했다.


아침은 어제 손님들에게 대접했던 간장 닭조림과 닭볶음탕으로 해결하고, 점심은 아이들을 위해 엄마표피자를 만들었다. 도우도 직접 반죽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고 아이들도 너무 맛있게 먹어줘서 뿌듯했다. 그리고는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깔깔대고 웃다가 거실에 깔아 둔 마법의 장판 위에서 함께 뒹굴다 낮잠도 자고, 책도 읽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휘리릭 하고 잘도 흘러갔다.


딩동-. 드디어 내 사랑 믹스커피가 도착했다. 남편과 함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커피 한 봉을 탁 뜯어 적당량 물을 부어 맛을 음미하며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뜨거운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일까. 나는 내 감정을 천천히 되짚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편안한 집’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땐 내 방이 당연히 없었고, 겨울이면 집 안에서도 외투를 껴입고 양말을 신고 입어야 했다. 20살에 집을 떠나 살게 된 기숙사도, 자취방도 내게 안식을 주는 공간은 아니었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도 신혼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엔 아이들과 한 방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유일하게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책상도, 식탁도 아닌, 접이식 상과 작은 스탠드가 전부였다. 심지어 아이들의 물건들이 올려져 있을 땐 그마저도 쓰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렇게 지내온 내가, 이렇게 따뜻한 집 안에서 불안 없이 보통의 소소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이 공간은 여전히 평온하다. 소음으로 느껴지기보단 생기가 감돈다. 내 마음에 사랑이 흐른다.


‘진짜 집’

마음껏 뒹굴어도 괜찮은 곳, 잠시 멈춰 쉬어도 부담 없는 곳,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곳.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인 곳.


내게도 처음으로 ‘괜찮아, 여기 있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집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게 행복하다.


첫 번째 브런치북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저 저의 모험의 첫 시작점이 되었던 제주이주 스토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시작했던 일이었어요.


어떤 분들이 읽어봐 주실까,

몇 분이나 보실까,

사실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한 편씩 발행하면서 자주 뵙게 되는 이름들을 발견하면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참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큰 용기를 얻고 곧 두 번째 연재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진심 모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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