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스무 살
제주에 와서 알았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거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내가 다시 자라는 중이라는 걸.
바람에 몸을 맡긴 억새처럼,
파도에 흔들리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바다처럼, 이 섬은 내 안의 잊고 있던 감각과 목소리를 다시금 불러냈다.
도시에서의 나는 늘 서둘렀다. 오늘을 놓치면 내일은 뒤처질 것만 같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걸 준비하지 못하면 부모로서 실패한 것 같았다.
이전 목록을 다 해치우지도 못한 채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쉴 틈 없이 추가되는 삶. 그래서 시간을 다그치고, 스스로를 재촉하며 하루를 채웠다. 그렇게 녹초가 된 밤, 아이들을 재우며 기절하듯이 바닥으로 내 몸이 끌어내려지던 밤. 그 밤을 지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서글펐고 내 눈동자는 힘없이 풀려있었다. 오늘 하루도 어제와 너무 똑같을 것 같아서…
제주에 와서도 익숙했던 그 속도감을 금방 놓지는 못했었다. 또 해야 할 일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해야 할 일의 종류가 달라졌을 뿐 나의 태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전과 같은 속도감이 도저히 유지되지 않았다.
바람이 차를 세우고, 비가 약속을 뒤로 밀어내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계획을 날려버렸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멈추는 행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란 것을.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이었고, 회복은 곧 새로운 성장이었다.
아이들을 통해서도 많은 걸 배운다. 이사오기 전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레지오 철학을 기반으로 하던 곳이었다. 선생님들이 무언가를 억지로 가르치지 않고, 아이의 호기심을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교육이란 결국 ‘심어 넣는 것’이 아니라 ‘깨워내는 것’이라는 걸 배웠었다.
언젠가 내 아이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속에서 자기 의지를 지키는 힘을 보았다.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아이 곁에서 나는 부모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나’라는 존재로 돌아온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묻혀 있던 내 꿈, 내 호흡, 내 목소리를 하나씩 찾아내고 있다. 글을 쓰는 시간,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그냥 멍하니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모여 나를 되살리고 있다. 이 순간들이 예전에는 사치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삶의 본질이라는 걸 안다.
결국 제주에서 나는 아이만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키우고 있었다. 아이와 자연이 내 스승이 되어주었고, 나는 제자가 되어 배워가는 중이다. 부모란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아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라는 걸 이제는 기꺼이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완성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하며 살아가려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이지?
그 원함을 무엇으로 실현시킬 수 있지?
이제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단단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이 곁에서, 자연 곁에서, 그리고 내 곁에서. 나는 지금, 제주에서 나를 다시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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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다시 자라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