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본으로 6개월 동안 교환학생으로 떠나게 되었어.”
두둥. 내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의 일들이 정말 어장관리였던 걸까?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설레였고 기대했던 감정들이 이렇게 한낱 무의미한 것이었나 싶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가 나를 정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저 하나의 ‘옵션’이었는지 나는 판단할 길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떠났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서 곧바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나 잘 도착했어. 여기서도 계속 연락할게.”
문자 한 통으로 인해 나는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관심이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이어지는 그의 문자는 나를 기쁘게 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 애매한 관계 속에서 나는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그와의 대화는 여전히 가벼웠고, 관계의 깊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즈음, 나는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의 웃음 속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꼈고, 더 이상 애매한 감정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안정된 마음의 바탕 아래 우리 사이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의 관계에서 자꾸만 뭔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소한 대화 속에서 자주 부딪혔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고작 100일 정도를 만났으면서 처음의 설렘은 점점 사라져만 갔다.
“오빠, 우리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아.”
그에게 헤어짐을 고하면서 나의 마음이 무거웠지만, 한편으론 후련함도 느꼈다.
이 사람과는 계속 함께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막 돌아온 그가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다른 친구에게 내 소식을 들었다면서...
“네가 헤어졌다는 소식 들었어. 나, 너랑 제대로 만나고 싶어. 우리, 만나보자.”
그의 고백에 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가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또 한 번의 애매함일까?
고민에 고민 끝에 나는 그냥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다시 찾아 온 기회를 피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다시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의 옆에 함께하면서 마음이 점점 더 따뜻해짐을 느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웃음과 설렘을 마음껏 나누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의 손을 잡을 때마다 작은 설렘들이 모이고 모여 몽글몽글한 큰 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번엔 내가 6개월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노오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늦가을 어느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 해외에서 잠시 근무해 보고싶었거든. 내년에 시카고로 가는 연수가 있는데, 나,, 합격했어.”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가 이제 막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데, 또다시 떨어져야 한다니.
하지만 그는 끝내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우리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의 담백한 말에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우리는 그렇게 만난 지 6개월 만에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이번엔 그가 아니라 내가 떠나야 했다.
나는 머나먼 시카고에서 6개월 동안 근무를 하게 되었고, 우리의 장거리연애가 시작되었다.
떠나기 전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6개월, 생각보다 금방일 거야. 우리, 잘 버틸 수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장거리연애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시간과 거리가 우리를 갈라놓을지, 아니면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