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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포레스트 Oct 24. 2024

6 months in Chicago(1)

너와 나 사이의 길고 긴 거리

시카고의 추운 겨울은 

살을 에는 바람과 함께 내 방 창문 틈새를 파고들었다. 


한번 눈이 내리면 1m씩 쌓이던 곳. 

영하 18도의 날씨가 일상인 곳.

패딩부츠가 아니고선 두 발이 꽝꽝 얼 것 같던 그곳. 

 

매서운 시카고에서의 1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우리를 도와주기로 계약된 현지 코디네이터가 본업이 있는 관계로 집 구해주는 일에 심드렁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직접 살 곳을 찾아 나섰다. 

멕시칸들이 많이 살던 시카고 북부 한 동네의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보여주는 집들을 보니 아, 말로만 듣던 자본주의란 이런 거구 나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제시된 가격과 집의 상태는 신기하리만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평수여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무조건 있었다. 


내가 고른 방도 그런 방 중에 하나였다. 

크기도 제법 크고 쾌적한 원룸 형태의 방. 

그런데 뭔가 다른 방에 비해 훨씬 쌌다.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서 10m 정도 떨어진 위치에 24시간 운행되는 전철이 다니고 있었다. 

이름하여 시카고 CTA, 레드라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간 갑자기 건물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였다. 


바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

내 귀에서 인간이 최대로 낼 수 있는 데시벨의 고함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6층의 좁디좁은 방 대신에 쾌적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2층의 그 전철방을 선택했다.


시카고에서의 첫날밤, 전철 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잠을 아예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도, 한낮에도, 철로 위를 달리는 극한의 소음은 귀에 쑤셔 넣은 주황색 귀마개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와 통화하는 도중에도 그 소리는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끼어들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소리가 지나갈 때까지 무념무상의 상태로 기다려야 했다. 

이게 맞는 건가?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정상적인 건가 하는 생각이 의문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어느 시점부터 나는 그 소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밤에 귀마개를 하지 않고도 숙면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철이 지나가는 순간마저도 통화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우리는 마치 전철 소리가 통화의 한 의식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 멀리서 소리가 시작되어 점점 커지면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는 그 너머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면 우리는 마치 서로 마주 보듯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시끄러운 소음은 어느덧 우리의 통화에 필요한 양념처럼 맛있게 스며들었다. 

어색했던 장거리 연애 또한 우리가 만들어가는 연애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기 시작했다.


먼 거리 때문에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우리는 이전엔 쓰지 않았던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글로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는 걸 꽤나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그 점을 알기에 그가 내게 메일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겠지? 설레기도 하고 겁도 좀 날 텐데 나는 네가 정말 잘 해내리라 믿어.

사랑해."


그가 처음으로 보낸 메일은 짧고 서툴렀지만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때론 메일을 통해 내가 좋아했던 감독의 영화를 찾아 보내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의 MP3 파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오늘은 엄청 바빴어. 네가 있었으면 더 힘이 났을 텐데. 나 혼자 커피 마시면서 네 생각 많이 했어.”

“이 노래, 꼭 들어봐. 너 생각나서 보내.”


그의 메일을 읽으며 나는 멀리 있어도 그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나와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짧은 글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었다. 


나도 그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 맞는 밸런타인데이에 그가 일하는 곳으로 정성껏 고른 초콜릿을 보냈다. 

“이거 뭐야? 네가 보낸 거야? 나 진짜 몰랐어! 정말 고마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설렘 가득한 목소리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작은 추억의 조각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사이의 멀디먼 물리적 거리를 채워갔다.

전철 소음조차 사랑스러워질 만큼 우리는 그리움 속에서도 작지만 행복한 순간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순탄하던 관계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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