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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목적, 의미, 가치, 방향

by Joung park

매년 새해를 맞으면서 젊은이들과 나누는 나만의 ‘전매특허’겪의 이야기가 있는데 언제 들어도 그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는 죽비 같은 깨달음은 여전하기만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열대사막은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사하라 사막인데 그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비셀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워낙 첩첩이 오아시스로 둘러싸여 있기에 세상으로부터 고립이 되어서 옛날부터 이곳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빠져나가려면 약 3,4 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26년 영국 왕립 학술원의 원사였던 켄 레먼이 그곳을 찾아가기 전까지는 그 마을 사람들 중에서 마을을 떠나 사막을 벗어나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도 이 외지고 척박한 사막의 땅을 벗어날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단지 사막을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쳤지만 안타깝게도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뿐이었다. 마침내 이 마을 사람들의 수백 년 묵은 자신들의 마을을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발버둥’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던 요지부동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집는 사건이 되었다.


이 동네 사람들의 ‘제자리걸음’에 관한 이야기에 모험심과 동정심이 발동한 영국 사람 켄 레먼은 세계적인 탐험가 또 모험가이었던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레먼은 이 사마라의 작은 도시에서 뭔가 ‘사명감’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갇혀 운명처럼 살아가는 비셀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이상하다 싶어서 정확한 ‘원인규명’를 찾아보기로 했었고 마침내 그 마을의 엑터라는 청년을 고용해서 사막을 건너게 하게 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청년 엑터는 열흘 동안 사막을 쳇바퀴처럼 헤매다가 결국 다시 아침에 거짓말처럼 원점인 비셀로 돌아왔던 것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었을까?


비셀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사막을 건너지 못한 이유는 바로 아무런 표지도 없는 사막에서 단순히 자신들의 감각에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평생을 원을 그리며 걷게 된 것이었던 것이다. 레먼은 비셀 청년 엑터에게 ‘낮에는 쉬고, 밤에는 북쪽의 별을 따라 걷다 보면 사막을 건널 수 있다’고 알려 주었고 그 말에 따라 청년 엑터는 사막을 걸었고 마침내 3일 뒤 넓은 사막의 끝자락에 서게 되었고 마침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고 감히 생각지도 않았던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비셀 마을의 청년 엑터는 하루아침에 개척자가 되었고 비셀 마을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인물이 되었고 비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중앙에 이 위대한 청년 엑터의 동상을 세웠는데 그 밑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생활은 올바른 방향을 잡는 데서 시작한다.’


켄 레먼의 비셀 청년 엑터에게 한 조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우리 역시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속담처럼 지난날 앞만 보고 오직 ‘전력질주’ 달려왔었다. 그기에는 속도만이 있었지 올바른 방향 같은 것은 관심은 아예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실상 돌아보면 비셀 마을 주민들처럼 우리네 삶도 항상 온갖 발버둥 속에서도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인생은 아닐까?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늘 제자리인 것 같았고 또 그런 방황 속에서 점점 지쳐만 가는 삶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싶어 진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비셀이라는 작은 마을의 “새로운 생활은 올바른 방향을 잡는 데서 시작한다”를 가슴에 담다 전광석처럼 내 뇌리를 스쳐가는 말이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탈피하지 못한 뱀은 죽는다."라는 명언이다. 뱀은 정기적으로 자기 껍질을 벗어야만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물론 사람이 뱀처럼 육체적인 껍질을 벗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 역시 껍질을 벗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는데 뱀과 달리 육체의 껍질이 아니라 마음의 껍질, 습관의 껍질, 생각의 껍질, 자아의 껍질 그리고 정신의 껍질을 벗어야만 한다.


새해가 벌써 3주째이다. 3주 동안 날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반복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때 묻은 껍질을 벗었으며 나는 얼마 정도의 구태(舊態)의 껍질을 벗고 새로워졌는가? “제 버릇 개 못 준다”라고 했듯이 몸에 밴 지난날의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는 그 못된 버릇을 여전히 가지고 새해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늘 했었던 것처럼 입에 발린 소리로 후회와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말고 “나는 얼마나 구태에서 벗어났는가” 돌아보게 된다. 탈바꿈을 해야 진정으로 애벌레가 어른벌레가 된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애벌레인가 아니면 어른 벌레가 되었는가? 새해가 되었다고 떠들고 신나 할 게 아니라, 나의 껍데기를 벗어던졌는지 물어야 할 때다. 달력이 바뀌었다고 새로워지는 게 아니고 내가 바뀌어야 새로워지는 것이기에. 달력만 갈아 끼울 게 아니라 우리의 허물 벗기가 요구되는 때다.

새해에 이민 2, 3세들 젊은이들과 나눈 사하라 사막 작은 마을 비셀의 “새로운 생활은 올바른 방향을 잡는 데서 시작한다” 이야기를 듣고서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서 IT 계통에 종사하는 한 이민 3세 젊은이가 “꼭 읽어보시고 후배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라는 당부와 함께 보낸 두 가지 신문 기사가 있다. 한 이야기는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사인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의 한 도시의 호텔방에서 37세의 남자가 의문의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얼른 보기에는 별로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죽음이 아니었다. 단지 발견 당시 죽은 남자의 왼손에는 빈 위스키병이 있었고 또 어디엔가 부딪힌 듯 머리 한쪽은 움푹 팬 채였을 뿐이었다. 부검 결과에 따르면 죽은 남자의 간이 알코올중독으로 샛노랗게 변해있고 췌장에선 출혈이 심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단순 알코올중독자의 자살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겨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왜 이 젊은이의 죽음은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을까? 유력지 시카고 트리뷴지 일면에 대서특필될 만큼이나 말이다. 다름 아니라 37세로 죽은 사람의 신원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이었다. 그가 바로 컴퓨터 파일을 압축하는 집(zip) 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던 컴퓨터 천재 <필립 카츠>였기 때문이다.


대체 왜 한창 꿈 펼칠 나이 23살의 이 컴퓨터 천재는 왜 ‘승승장구’하고 ‘탄탄대로’의 선상에서 한 호텔 방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이 되었을까?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졸지에 떼부자가 되고 유명해질수록 그의 삶은 점차 황폐해져 갔다고 한다. 그동안 하나만을 이룩하는 꿈을 꾸면서 정말로 앞만 보고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목표를 향하여 달려온 인생이었다. 그러나 삶의 정점에서 누구보다 빨리 많이 조기 성공을 했지만 그의 삶은 단조롭고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인생의 최고의 정점에서 더 이상 올라가고 바라볼 목적과 가치 그리고 의미를 상실하였고 곧바로 너무나 뻔한 ‘성공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을 한 것인데 바로 ‘브레이커’ 없는 자신만을 위한 탐욕과 방탕을 채우는 길로 나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것에는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좋은 습관과 생각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문제는 좋지 않은 것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가속도가 붙는다. 내 운명을 가라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 되고 만다. 방탕은 더 깊은 방탕으로 이어졌고 이미 벼랑 끝으로 돌진한 그의 마지막 순간들은 마약과 스트립쇼클럽 전전 또 온갖 퇴폐 행위로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백만장자가 된 그가 30대 후반에 숨졌을 때는 거의 파산 상태였는데 죽을 당시 그의 수중에는 불과 1만 달러, 3천 달러를 빚진 마스터카드, 50달러짜리 술을 산 영수증, 그리고 음주운전 딱지와 호텔 숙박료 청구서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카츠의 친구들은 "그의 천재적 재능과 인생의 행복은 결코 비례하지 못했다"라고 안타까워했었고 그의 어머니는 "5년 전 만난 뒤 한 번도 아들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고 “너무 아들이 젊어서 성공하고 돈을 번 것이 오히려 독이 되고 파멸로 이끌었다.”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두 번째 젊은이가 보낸 기사는 ‘비운의 젊은이’ 카츠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 척 피니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었다. 잘 알려진 사람은 아니인데 기사의 내용을 대충 간추리면 이렇다. 척 피니는 세계적인 면세점 업체인 디에프에스(DFS)의 공동 창립자로 무려 80억 달러 (약 10조7000억 원)가 넘는 재산을 소유한 재력가이다. 우리 속담에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이 척 피니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싶어 진다. 마침내 척 피니를 둘러싼 신비의 베일을 벗게 된 순간이 온 것이다. ‘무명인’ 척 피니가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 소식과 함께 억만장자 척 피니가 사망 전까지 수년간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 칸짜리 소형 아파트를 임대해 부인과 함께 노년을 보냈다는 소식이 만천하에 공개가 된 것이다. 전혀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말이다. 억만장자 피니는 오랫동안 부인과의 노후 생활을 위한 200만 달러(약 26억 원)와 5명 자녀에게 남긴 조그마한 유산을 뺀 재산 전부를 기부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그 자신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죽었을 때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라고 외치면서 익명으로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전 세계에 그가 기부한 적지 않은 액수인 27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로 세워진 건물이 무려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은 한 곳도 없다고 한다. 그는 기부금 출처를 감추기 위해 일부로 자기 앞수표로 지급했다고 한다. 피니에게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가 넘는 기부금을 받은 세계적인 유명 대학 코넬대가 한 번은 그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평소에 15달러(약 2만 원) 안팎의 저렴한 시계를 차는 것으로 알려진 피니에게 일부러 13달러(약 1만 7000원) 짜리 카시오 시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에 당대 최고의 억만장자 척 피니는 “이베이에 팔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해 줘 감사하다”라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이쯤에서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왜 ‘바람의 도시’에 살고 있는 젊은이가 나에게 하필이면 새해에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기사를 보냈을까? 어떤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런 바람을 후배들에게 일으키고 싶다는 말은 아닐까? 올해에는 ‘과연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말을 한번 깊이 고심하고 고민해 보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바람을 한번 일어 켜보자’는 응원과 격려의 말은 아닐까 싶다. 사하라 사막의 비셀 마을의 운명을 뒤집은 말 “새로운 생활은 올바른 방향을 잡는 데서 시작한다.” 또 일맥상통하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Life is a Matter of Direction not Speed)”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생각은 과대망상적인 해석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도 아테네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은가?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이다. 세계적인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쇠는 쓰지 않으면 녹이 씁니다. 물은 고이면 본래의 깨끗함을 상실하며 썩어 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태만은 우리 마음의 활기를 빼앗아갑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현자들의 말씀들이다. 귀담아 들어야 할 잠언들이다. 심지어 정처 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시냇물이나 강물도 흘러가는데 그 목표가 반드시 있다. 시냇물은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들어갑니다. 시냇물이 흐르지 못하면 그것은 늪이 되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면 그 물이 고여 썩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자연히 부패하기 마련이다. 멀리 보려고 까치발해서 안간힘을 쓰지 말로 37세에 한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된 컴퓨터 천재 <필립 카츠> 또 죽으면서 걸세출의 이름을 남긴 억만장자 척 피니가 증인이다. 나는 아버지의 자격으로 젊은이들에게 강조해 온 말이 하나 있다. “현생에 개나 돼지 같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다.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아. 성공한 삶을 살기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라.” 이뿐이다. PS 한 가지 더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는 자신이 만든다. 인생이 자작이듯 인간의 가치 또한 자작이다. 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빨리의 ‘속도’도 아니고 또 얼마나 많이의 ‘양’도 아니라 단지 올바른 ‘방향’ ‘목적’ ‘의미’ 그리고 ‘가치’에서만 가능하다는 말도 동봉한다.


끝으로 드리는 이야기이다. 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다가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애처로운 생각이 나 도와드릴 생각으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구부러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처음 보습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다"라고 하셨다. 소년은 그 말씀을 마땅히 여겨서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플러 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더니 비로소 똑바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시계를 보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침반을 보며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새해가 아직 이른 시간이다. 아직도 바꿀 수 있는 것도 많고 그 다행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추가하는 말이다. “당신은 인생의 종착점을 하루 한날에 변경할 순 없지만, 삶의 방향은 오늘 밤에도 바꿀 수 있다”(You cannot change your destination overnight, but you can change your direction over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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