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고개가 숙여지는 콩씨네 자녀교육

연단, 단련

by Joung park

바야흐로 오매불망 손꼽아 기다리던 졸업식이 까마득한 저 멀리에서 우리 곁으로 한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졸업식은 장구의 세월 동안 한 젊은이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뛰어난 능력을 발견하고 이끌어 내어서 이 사회가 진정으로 바라는 지도자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는 위대한 순간이다. 고로 단순히 막연하게 맞이하는 ‘눈요기 감’ 이벤트로 얼렁뚱땅 대충 넘어갈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학교와는 별도로 의미 있는 졸업 파티를 준비한다. 졸업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부모님들에게 올리는 감사 편지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에는 졸업생들과 함께 보는 영상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들었던 유명인들의 지난날들의 졸업사들이다.


올해 졸업 파티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대다수이기에 그들의 눈높이에서 선택된 졸업사를 들을 예정인데 이름 없는 한 조그마한 미국 고등학교 (웰슬리 고등학교Wellesley High School)의 무명의 영어 교사 데이비드 맥컬로우(David McCullough)씨가 전한 ‘너희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You are not special’이라는 제목의 졸업사를 함께 들을 예정이다.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처음 받았던 깊은 울림과 감동은 여전하기만 하다. 제목을 보면 얼른 듣기에는 마치 남의 잔치 상에 찬물을 끼얹는 그런 심술궂고 황당무계한 졸업사 같은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 교사는 연설 내내 연거푸 무려 9번이나 이 말을 던진다. 교단에 선지 26년 차 교사이라고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 교사의 넋두리가 아니라 장구의 세월 동안 가까이에서 제자들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한 스승의 애정 어린 권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마땅히 우리의 귀를 쫑긋하게 하고 들어야 할 졸업사라고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그 졸업사를 대충 간추리면 이렇다. 여러분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특출 나지도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만도 대략 2천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또 또 다른 이웃지역도 그 정도일 테죠. 더 나아가서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 전역에는 3천2백만 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무려 3만7천 개 이상되는 고등학교에서 여러분과 함께 졸업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졸업하는 졸업식에는 졸업생 대표만 3만7천 명이고, 반장도 3만7천 명……운동복을 입고 스웩 (swag) 넘치는 같은 나이 또래의 애들만 34만 명이고, 어그부츠만 218만 5967짝입니다. 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님을 기억하세요. 또 여러분의 은하계도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오늘 졸업하는 전국 3만 7천여 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은 하나같이 다 자신이 졸업하는 학교를 가리키면서 '최고 중 하나'인 우리 학교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발 '최고 중 하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절대로 ‘최고 중의 하나’라는 말에 너무 곧이곧대로 또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고 중 한 사람'이란 말을 너무 쉽게 남발하고 오용함으로써, 마치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차이를 두고 더 낫다고 생각하고, 막연히 근거없이 자신을 소위 엘리트 집단에 자신을 끼워 카운트하지 마세요. 너무 자신을 턱없이 과대평가하면서 내가 누구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너무나 허무맹랑한 생각을 가지지 마세요. 여러분 그것을 아시나요? 모든 학생들이 다 최고라는 말은 결국에는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함을 말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사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졸업생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너무 기죽지 마세요. 언젠가는 여러분들이 자타가 공인하고 인정하는 진정으로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최고 중 한 사람’이 될 수는 있음을 기억하세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지금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바로 ‘내 자신 결코 특별하지 않다 I am not special’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이 특별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음이 내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절대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최근에 성실하게 이룬 성취감보다 물려받은 상속의 영예를 더 좋아하게 되어 가치관에 큰 손상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벽난로 위의 상장들을 받아야 계급사회에서 높은 위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더 이상 경기를 할 필요가 없고, 이길 필요도 없게 되고 말지요.


절대로 지금 당신의 위치에서 누리는 현재의 안주함과 편안함에 함몰하지 마세요. 그럴싸한 물질만능주의, 자기만족이라는 마비에 빠지지 마세요. 지금 당장 원하는 꿈이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일어나 나가서 탐험하고 스스로 찾아 양손으로 붙잡으세요. 세상이 당신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세상을 볼 수 있게 산 정상을 한 번 올라 보세요. 세상이 나에게 갖다 바칠 그런 싸구려 삶이 아니라 내가 68억의 다른 사람들에게 행할 선을 위해서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한 번 하세요.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오매불망 찾고 있었던 인생의 금자탑 ‘최고 중 하나’가 되는 영광을 누릴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 졸업사를 하필이면 지금의 시대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들려주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You are not special’의 26년 차 영어 교사 데이비드 맥컬로우에 감히 비길만한 현장 경험은 없지만 나 역시 비슷한 세월 동안 내 위치에서 우리 한인 이민 2세와 3세들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자연스럽게 영어 교사의 마음과 내 마음이 오브랩을 하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게 됨을 부인할 수가 없다. 데이비드 맥컬로우 선생님은 진정으로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스승의 상이다. 그렇지 않은가? 선생님의 가장 근본적인 자격은 정직함이 아닌가? 그런 선생님의 상은 이제는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때를 위하여 내가 스승이 되었다고 마치 포효라도 하듯이 맥컬로우 선생은 단순히 듣기에 좋게 아름답게 꾸민 말과 글귀의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스승의 눈에 비친 제자들의 민낯의 모습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허무맹랑하고 너무나 근거 없는 덕담으로 젊은이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녹록지 않을 것이니 제발 정신 똑바로 챙기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거침없이 뱉은 용기백배의 권면이다. 이 스승의 마지막 졸업사 하나만이라도 건질 수가 있다면 나는 단연코 주장하건대 학교에서 배울 것은 벌써 다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쯤에서 불현듯 뇌리를 관통하는 오래전 학생들과 함께 들었던 김준선의 '마마보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긴 가사 전체를 올려본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니 끝까지 한번 들어보시면 좋겠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Stop! You're not Baby any more

1. 아직까진 너에겐 모든 일에 엄마가 필요해

모든 것을 엄마에게 물어봐야 해

네가 어디에서 있든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엄마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을 하지


잘 자라 우리 아가 내가 널 지켜줄께

머리에서 발끝까지 넌 내겐 소중한 거야

엄마- 나는 세상에 모든 것이 두려워요

엄마- 나는 세상에 모든 것이 두려워요

엄마-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줘


모든 걸 엄마에게 물어봐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어른이 될 수 없는 마마보이

Rap:이젠 내가 너에게 말할께 이젠 그만해 그 소리 마마

마!

너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Hey! 마마마마마마-


2. 너의 꿈이라는 건 바로 엄마의 꿈이야

너의 너만의 것은 하나도 없지 네가 옷을 살 때도

무엇을 먹으려고 할 때도 엄마의 기준으로 항상 생각을

하지

모든 걸 엄마에게 물어봐 (잘 자라 우리 아가)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내가 널 지켜줄께)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어른이 될 수 없는 마마보이.”


정말이지 우리는 자녀들을 '마마보이’ ‘응석받이', '치마폭 아이' 그리고 나중에는 ‘와이프 보이’로 양산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민 2세 그리고 3세들 뿐만이 아니라 조기유학으로 미국에 온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많이 만났다. 느낀 것은 심지어 성인이 될 나이의 대학생 중에도 안경하나를 맞추는데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엄마한테 시시콜콜 전화를 걸어 안경테는 무엇으로 하고 또 가격대는 어는 선이 적당한가 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자질구레하고, 치사하고, 어처구니없고, 또 시시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소한 결정을 할 순간에도 횡설수설하고 갈팡질팡하는 꼴불견 캐릭터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았다.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지만 어른들의 귀여움을 과히 받고 저질스럽게 버릇없이 굴며 자란 '응석둥이', ‘망친 아이’, ‘막장스러운 아이’, ‘나약한 아이’, 또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spoiled child, pamper, coddle)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할 딱한 형편에 처하고 말았다. 너무 오냐오냐하는 바람에 툭하면 왕자병과 공주병을 앓게 되었고 독립심이 없는 주제에 세상은 늘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일그러진 사고방식이 깊이 박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에게 맞춰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가 되게 하고 말았다. 너무 귀한 대우만 받다 보니 상대방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심하며 이로 인해 대인관계에도 큰 어려움을 겪는데 결혼 생활이라고 다르지도 않는다. 수도 없이 결국에는 재산을 다 날려서 집안을 망치거나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는 길을 걸었던 젊은이들을 보았다.


얼마 전에 참 독특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자폐스펙트럼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넷플릭스에서 아이들과 함께 본 적이 있다. 특별히 미국에서 태워나고 자란 그래서 나하고는 정서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었던 며느리들까지 큰 울림을 받았던 대화가 있었는데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딸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자, 아버지는 딸이 좌절하지 않도록 자꾸만 앞서서 몰래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결국 취업까지 관여하는데, 나중에 이를 안 딸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빠!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주는 게 싫습니다." 이 대사 앞에서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진정한 부모상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옛 어르신들의 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생각이 났다. 또 예부터 같은 맥락에서 우리 조상님들이 하신 "귀한 자식은 매로 키우고, 미운 자식은 밥으로 키우라"라는 말도 생각이 난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지인이 한 말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초겨울에 양의 털을 깎는다고 한다. 뭔가 범상치 않은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양의 털은 초여름에 깎아주어야 더운 여름을 잘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초겨울에 깎아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초겨울에 양의 털을 깎아주지 않으면 자기의 털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한겨울에도 자기의 털을 너무 믿고 있다가 도리어 얼어 죽는다는 것이다. 초겨울에 털을 깎아주면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고 활동해서 한겨울에도 살아남을 만한 체력과 적응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주인이 초겨울에 양의 털을 깎을 때 추운 겨울에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면서 울 수밖에 없다. 이때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이렇게 털을 깎아줘야 한겨울에도 살아남을 수 있단다. 조금만 참아라. 다 너를 위해서 그런단다.” 그런데 양은 주인의 마음을 모른다. 인생의 큰 아이러니이다. 온상에서 거목이 자라지 않고, 어항에서 고래가 놀지 않고, 개천에서 용이 살지 않고, 개미허리에 쌀자루를 올려놓지 않고 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는 법칙과 통하는 것이다.


정채봉 시인의 ‘콩씨네 자녀 교육’이 우리에게 마지막 일침을 가해 주고 있다. “콩 형제가 있었는데 광야로 내 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라는 내용이다. 콩나물과 콩나무는 받침 하나의 차이지만, 또 비록 같은 콩에서 싹이 난 것이지만, 생긴 모양이나 가치는 천지차이다. 콩나물은 방안이나 온실에서 시루에 담긴 콩 씨앗이 방 안에서 배부르고 등따시게 주인님이 공급해 주는 물만 받아먹고 ‘호의호식’, 또 ‘응석받이’로 자란다. 그러다 보니 줄기가 뿌리 구실을 하는 이상한 식물이 되어 단 한 알의 콩도 생산하지 못하고 식탁의 한 끼 식사로 그 일생을 마친다. 그러나 콩나무는 완전히 다르다. 밭에 뿌려진 콩 씨앗은 거친 환경 속에 스스로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며 따가운 햇볕을 받고 삼킬듯한 비바람과 맞서며, 또 해충과 잡초의 방해를 이기며 온갖 시련 속에 자라나게 된다. 살벌하고 냉정하고 매정한 현실의 생존경쟁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끝으로 한번 이런 질문을 드린다. 당신의 집에는 콩나물로 가득한가 아니면 콩나무로 가득한가? 자식의 얼굴에서 콩나무가 아니면 콩나물이 보이나요? 기억하시면 참 좋겠다. 콩나물은 어딜 가나 밥이 될 뿐이고 콩나무는 어딜 가나 큰 바람막이가 되고 그늘이 된다. 이 시대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과 무한경쟁의 때이다. 조금 애처롭게 보이고, 안쓰러워 보여도 혼자 부딪쳐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 그렇다고 결코 저 뜻을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가 지금 시종일관 자식이 피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모르는 척 방관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자녀들의 건전한 가치관과 위대한 비전을 위해 남보다 더 많은 눈물의 씨앗을 뿌리면서, 부모 자신들이 정직한 피와 땀으로 쌓아온 삶을 통해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꼴불견들이 득실 해서 눈살을 찌푸리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내가 또 하나의 꼴불견을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드리는 권면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사건 11%와 내 반응 89%로 이루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