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인생 작전 타임,
올해도 예외 없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제는 ‘연례행사’로 자리매김을 한 ‘이력서 써 보기’라는 연중 이벤트를 벌인다. “아니 무슨 객기인가? 왜 난데없이 갑자기 ‘이력서 써 보기’ 캠페인을 할까?”하는 의아함과 의구심이 생길 만도 할 것이다. 또 아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라는 속담도 분수가 있지 생뚱맞게, 불쑥 그리고 뜬금없이 ‘이력서 타령’을 할까? 호기심도 발동할 수가 있을 것이다. ‘횡설수설’ 같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내 경험으로는 사람들은 이력서 앞에서는 다 어지간하게 간이 크다는 사람들조차도 잠시나마 ‘무장해제’를 하게 된다.
내 경험으로는 이력서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장사가 없더라. 우리들은 다 자기만의 삶의 속도와 방향에 훈련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내가 가는 그 길이 최고이고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만다. 브레이크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기차꼴이 되고 만다. 그것밖에 모르는 그리하여 더 이상 경직될 수가 없을 만큼의 ‘외골수’가 되고 만다. 모두가 도둑처럼 찾아온 ‘자아도취’, ‘자기중심적’이라는 고질병에 걸려서 모든 것을 합리화하기 시작을 한다. 결국에는 시세표현으로 옮기자면 ‘다 제 잘난 맛에 살리라’의 나르시시스트라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만 다행이지 나를 망하게 할 심각한 정신적인 ‘고질병’이 ‘고칠 병’으로 변화게 되게 하는 ‘절호의 기회’가 온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구름이 잔뜩 끼는 순간들과 정면으로 부닥치게 되는데 바로 곧이어 들어닥칠 내 인생의 ‘회오리바람’과 ‘날벼락’의 전초전 겪이었던 것임을 어름풋이 나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쯤에서 사람들의 삶은 ‘행운’과 ‘비운’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확연하게 다른 운명의 길을 선택하게 되더라. 혹자는 이런 경우를 두고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의 차이라는 말로 각색을 하고 또 혹자는 성공과 실패는 99%의 노력과 1%의 ‘운’이라고도 하더라. 결국 나와 저 사람의 운명을 가른 그 종이 한 장의 미묘한 차이는 인생의 ‘불청객’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인가에 달렸던 것이다.
위대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는 바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낀 ‘작전타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작전타임’이 나에게는 없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아예 축구장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력서를 써 보라는 말은 결국 인생의 ‘작전타임’을 하라는 말이다. ‘작전타임’은 내가 내 인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고 인생 대역전의 발판이다. 정신병원으로 가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사람들은 이력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숙인다. 어느날 갑자기 이력서에 투영된 자신의 삶의 현주소 앞에서 참 그동안 ‘아무 하는 일도 별로 없이 그저 놀 먹기만 하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삶이 유명무실하고 무위도식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서 망연자실과 후회막심하게 하게 된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이력서를 한번 써 보라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산파된 것이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강제적으로라도 중간 점검을 해보자는 차원이 다분하다. 대부분 처음에는 ‘멍하게’ 넋이 나간 듯한 젊은이들도 마지못해 이력서를 써 내려간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삶에 유턴을 한 젊은이들이 예상외로 많았고 그리고 예상외로 삶의 ‘다른 길’로 간 사람들이 많더라. 물론 대단한 (대가리가 단단한) 인간들도 많지만…
혹시라도 부끄러운 이력서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는 젊은이들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이력서를 작성하다가 어느 날 인생의 궤도를 대대적으로 수정하면서 진로, 가치, 목적과 의미를 바꾸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 본다. 먼저 우리에게 ‘이삭 줍는 여인들’, 또 '만종' 같은 참으로 친숙하고 익숙한 그림을 선물한 금세기 최고의 화가 밀레의 삶을 돌아본다. 밀레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남다른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부친이 사망하자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는 단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누드 그림이라도 그려야 했었던 가난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대로 그의 누드화는 잘 팔렸기에 겨우 굶지 않았고 가족들과 먹고살만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고 또 그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건이 밀레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엎게 되었는데 자신의 누드 그림 앞에서 두 청년이 희희덕거리면서 음담패설을 하는 것을 우연하게 듣게 되었다.
밀레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는 누드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가졌던 ‘작전타임’의 순간이었다. 만약 밀레가 ‘절호의 기회’를 허송세월로 넘겼다면 그리고 끼니를 굶는 생활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기를 거부했다면 밀레는 아마도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름을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고 세상은 ‘이삭줍는 여인들’ 그리고 ‘만종’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밀레의 삶의 삶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었는데 바로 삶의 벼랑 끝에서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찾아오는 ‘작전타임’을 잘 활용하라는 교훈이다. 하마터면 인류 최고의 ‘포르노’ 그림의 ‘대가’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을 뻔했었던 금세기 최고의 화가 밀레는 우리에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쩍 넘겨 얼버무리려는 태도가 아니라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한 번 부끄러워해 보라고 교훈한다. 왜냐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끄러움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생 횡재의 길이 환하게 열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단연코 조물주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또 가장 위대한 축복은 바로 일이 잘못돼 볼 낯이 없거나 양심이 거리끼어 떳떳하지 못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사상사들과 철학자들은 부끄러움을 찬미하고 있는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라고 했었고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며..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옳음의 극치이다.’라고 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인간이 아니다.’라고 까지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어떡할까? 사람들이 점점 더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고 있다. 정말이지 도대체가 우리 주위에는 윗물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을 잘못을 범하고도 도무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사람을 일컬어 ‘철면피’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그들의 낯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박완서 시인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어느 순간에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참 보기가 힘들다. 세상이 힘든 것이 아니라 아무도 도무지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더 힘들어진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만이 고관대작이 될 수 있고 그들만이 나라의 주류 세력이 되어가니 부끄러움을 알고 살아가던 보통사람들이 더욱 비참해져 옳은 삶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이 한스럽기만 하다.
아니 세상 어디에서 이토록 천진난만하고 인내심 무궁무진한 백성들이 어디에 있을까? 잘못했다는 것을 솔직 담백하게 한치의 숨김도 없이 시인하고 부끄러워할 줄만 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라면서 눈감아주고 또 봐주고 덮어주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응원하고 격려까지 아끼지 않을 국민들인데 도무지 얼굴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도자가 사라지니 허탈감만 가득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청문회 때마다 위장전입, 땅투기 그리고 자녀들 병역문제 등등이 탄로 난다. 정략결혼 그리고 정경유착이라는 말에 조금도 놀라는 국민들은 이제 없다. 정말이지 배운 사람들이 왜 이럴까? 배우지 못해서 몰랐다면 몰라도… 있을 때에 나라일도 좀 해야지. 내 배만 채우기에 급급해하다가 언제 나라일을 할 수가 있을까?
세상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위태위태해지는 것은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양심에 털이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어진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온 나라가 온통 온갖 불법과 편법의 온상이 되고 아수라장 같은 험한 분위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가정에서나, 안방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두가 내 삶에 ‘이력서 써 보기’를 해보면 좋겠다. 써 내려가면서 에머슨의 ‘성공한 삶’의 정의 즉 내가 잠시 이 세상에 왔다 갔기에 (살았기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떡끄떡 해지는 순간을 느꼈으면 한다. 모두가 해보는 인성교육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나의 꼭꼭 잠겼던 내 마음의 문을 열게 했던 시가 있다. 내가 참 좋아하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시이기에 젊은이들에게 주저 없이 강추한. 내용들이 심오하고 무겁고 또 오묘하기까지 하여서 감히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함부로 재단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전문을 소개하니 양해를 바랄 뿐이다. 어디에서 이런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죽비가 또 있을까?라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 동봉하고 싶다.
‘감사한 죄’ (박노해 시인)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울림을 느낀다. 지금 시인은 자신의 팔순 노모가 일생일대의 절회의 기회인 ‘작전타임’을 하다가 처절한 부끄러움, 회한과 흐느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을 포착한다. 시 속에 나타난 팔순의 어머니는 한평생 기도 하나만을 의지하고 거친 인생의 폭풍우를 이겨내면서 늘 환란을 이겨낼 때마다 감사를 잃지 않으려 애를 쓴 노모이다. 그런데 어느 새벽,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숨은 죄’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감사한 죄’이었다. 황당하다. 어떻게 ‘감사한 것’이 ‘죄’가 되었을까? 깊은 성찰이 필요한 순간이다. 노모의 ‘감사한 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주변의 이웃이 어떤 고통을 겪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단지 ‘내만의 잔치’를 벌인 죄이었던 것이다. 내 새끼만을 향한 감사가 지금 와서 보니 참 부끄러워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백 마디의 어머니의 입놀림보다 어머니가 자식 앞에서 써 내려간 이력서가 더 효험이 있었던 것이다. ‘승자독식’, 약육강식’, 그리고 ‘각자도생’이라는 삶의 방식이 판을 치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감사한 죄’ 또 ‘숨은 죄’를 두고 처절한 눈물을 흘리는 노모가 그리워지기만 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당연하게 아무런 죄책감과 부끄러움 없이 꺼내는 말이 있는데 바로 내 자식이 일류라는 말, 내 남편이 일류라는 말, 내 사업체가 일류라는 말 그리고 내 나라가 일류라는 말이다. 팔순의 노모가 부끄러워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너무나 당당하고 뻔뻔해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일류라고 마냥 좋아만 할 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언제 반드시 예외 없이 우리도 ‘감사한 죄’ 또 ‘숨은 죄’ 앞에서 심판을 받는 날이 오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끝으로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찬미가’를 불러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또 이왕 나선 김에 돼지 ‘찬미가’도 읊어본다. ‘돼지도 한부로 발로 차지 마라’ 왜냐하면 돼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이 한평생을 산다. 돼지족발, 베이컨과 삼겹살, 순대와 국거리로 활용된 내장, 돼지 등뼈 없는 감자탕은 그야말로 시체이다. 어디 돼지의 사명은 그뿐인가?. 사업의 승승장구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돼지 머리는 없어서는 안 될 부적 같은 존재가 아닌가? 죽어서도 웃어야 하는 팔자인지 그래도 끝까지 맡겨진 사명을 다하는 돼지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돼지 수난은 끝이 없다. 돼지 털까지 구둣솔이나 칫솔을 만드는데 쓰여진다고 한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콕 집은 지혜가 살짝 엿보인다. ‘돼지들은 죽는 게 아니야. 단지 사라지는 거지. 이제부터 내가 너보고 돼지 같은 (?)이라고 불러도 너무 쓰러워하지 마. 칭찬으로 여겨도 좋아. 너도 자세히 봐. 돼지만큼 쓸모 있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 넌 그런 사람들과 달라. 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위대한 사람이야.’
아직도 ‘이력서 써 보기’ 앞에서 텅 빈 종이 한 장을 보면서 꾸물꾸물하고 있나요? 기억하세요. 억지로 마지못해 시작한 ‘이력서 써 보기’가 훗날 내 삶의 운명을 갈랐다고 고백할 날이 올지? 이력서가 내 직장도 구하고 또 영혼까지 구할지. 이력서를 써 보면서 혹시나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횅재를 잡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