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둘도 없는 친구 ‘라니’를 소개합니다”
(3번)
(이웃사촌 구출작전)
미국 사람들의 호언장담과 조금 과분하고 과다한 감정 노출에 익숙해졌고 가끔은 질리기도 하였던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라니가 인사차 또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한번 해본 객기 정도로 여겼기에 시쿤등 한마음으로 영상을 심심풀이 정도로 여겼지만 그래도 라니의 정성을 봐서라도 하는 심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역시나 라니의 약속은 전혀 다른 차원의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즉 사나이 대장부의 한 마디 말은 천금보다 무겁고 가치가 있는 "는 말이었다. 결코 뜻 없이 건성으로 인사차 대충 해본 허세 가득한 약속이 아니었다. 곧바로 그가 약속한 ‘나를 구하기 위한 작전’은 하나둘씩 내 삶에서 현실화되었다.
USB의 영상의 첫 부분은 내가 수술하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이 동네의 동우회 친구들이 동네 fitness center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여러 가지 기구로 운동을 하는 장면이었고 Music box에서는 내 귀에 익숙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명 배우 실버 스탤론이 로키 빌보 아로 열연했던 영화 로키 (Rocky) 시리즈의 대표적인 테마 주제곡인 ‘ Eye of the Tiger’ 'Gonna Fly Now'와 'Going The Distance'들로서 비록 로키 영화를 보지 못해도 이 곡들은 한 번 정도는 들어 봤을 그런 유명한 곡들이다. 특별히 간혹 예능 프로에서 쌍용(기성용,이청용) 쌍박(박지성,박주영)의 둘이 박빙의 진검승부의 결투를 버릴 때에 약방의 감초처럼 박진감과 긴장감을 높이는 전주 음악으로 사용되는 곡들이기도 하다.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는 냐가 아니라 얼마나 삶을 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1976년 로키 1편에 열연한 실베스터 스탤론의 당시의 나이가 30세이었고 내 나이 역시 처음 영화 ‘로키’를 감상할 때는 한 창의 나이였지만 이놈의 무상한 세월의 눈 깜짝할 사이의 장난 앞에서 우리들도 황혼의 나이가 되고 말았다. 남성미 넘치고 근육질 넘치던 그 명배우 실버 스탤론의 얼굴에는 무정한 세월의 흐름의 흔적만이 남아서 깊은 주름살 이 패였고 백옥 같은 피부는 탄력을 잃어 쭈글 쭈글 해졌고 또 신비로움을 풍 겼던 은빛 머리카락 은빛이 바래 백발로 변하고 말았다. 나나 그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음을 보이고 감출 방도가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러나 역시 역대급 명화의 반열에는 아무나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전무후무한 ‘인간 승리’이야기 로키의 대사들 역시 명대사의 반열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고 여전히 주옥같아서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내 귀를 후벼파고 가슴에 감당키 어려운 전율을 가져다주었고 지금 들어도 내 어금니를 굳게 깨물게 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단순한 복싱 영화가 아닌 내 인생을 다시 일어 내키고 재 충전하기에 딱 좋은 영화이었다. 라니가 준 영상의 대미는 천신만고 끝에 다시 한번 링에 설 기회를 쟁취한 로키 발보아가 아버지의 재기가 ‘Impossbile 불가능’하다면서 부정적인 아들에게 한 대화의 일부인데 충분한 가치가 있기에 소개해 본다.
“이 세상은 따스한 햇살과 무지개로만 채워져 있지 않아.”
(The world are not all sunshine and rainbows.)
“엄청나게 살벌하고 끔찍한 곳이지.”
(It’s a very mean and nasty place.)
“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상관없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널 두들겨 패서 평생 무릎 꿇고 살아가게 만들 거야.”
( I don’t care how tough you are. It will beat you to your knees and keep you there permanently if you let it.)
“네 가치를 안다면 가서 너의 가치를 쟁취하거라.”
(Now If you know what you're worth, go and get what you’re worth.)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는냐가 아니라 얼마나 삶을 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한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하나씩 얻는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전율의 느낌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스란히 나를 꿈틀거리게 한다.
“인생이란 건 결국 난타전이야. 네가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는가가 아니라. 네가 끝없이 맞아가면서도 굴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하나씩 얻어나가는 게 중요한 거야. 계속 전진하면서 말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야.”
영상의 마지막은 짐에서 운동하던 친구들의 나를 향한 영상 편지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루빨리 회복이 되어서 내가 있어야 할 곳, 제자리로 돌아오라”는 당부이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고 지극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친구들의 간절함과 애절함의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효과는 내 삶에서 곧바로 나타났었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다>
친구들의 영상편지와 응원가를 들은 후 나는 이제 더 이상 집콕으로 살아갈 그 어떤 핑계도 고집도 내세울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단지 이웃사촌이라는 이유 하나로 또 친구를 구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까지 지극 정성 수고한다면 나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삶을 성찰 또 고찰해 보는 것이 인간 됨의 도리라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아닌가?
사람의 도리 또 한 인간의 품격에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호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함이 아닌가. 나를 향한 호의에 최고의 응답은 나를 향한 사랑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임을 알만한 나이가 아닌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반응을 하던지 오늘의 나의 선택이 훗날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내 인생의 큰 획을 긋는 전환점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심 끝에 내려야 할 선택들은 예상외로 쉽기만 하였는데 다음날 즉시 내 평생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로 선택을 했는데 첫번째 선택은 라니의 강추로 내 몸을 전문 재활원에 맡기는 선택이었고
두 번째는 내 평생 처음으로 두 개의 지팡이를 들고서라도 녹슨 내 몸을 추슬러서 그동안 뜸했었던 동네 한 바퀴 걷기에 나섰다. 걸으면서 또 올린 시의 구절들이 있는데 바로 이때를 위한 시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이다. ”그날 내가 가는 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지요….. 그러나 두 갈래의 길 중 다른 길을 택했지요…. 그리고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옛날 그 옛날에 내 앞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그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재활원에 등록하다>
지금 와서 보니 내 평생에 가장 가장 잘했었던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특별히 나 같은 Quadruple bypass Open Heat surgery 사중 개심술 심장 우회 수술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번 열어젖힌 가슴뼈가 봉합된 채로 녹슬 고 약해진 가슴과 복부 그리고 양팔의 근육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하지만 어떤 모양이라도 봉합되었던 가슴 뼈가 균열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에 홀로서 재활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들고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오래동안 검증되고 확인된 경험 또 철저한 통계를 뒷받침으로 하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재활이 중요하였다. 처음에는 시큰둥 하는 마음으로 재활원에 내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래도 소개를 했었던 라니의 얼굴을 봐서라도 토끼인 소인 양 끌려가 억지로 마지못한채 갔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때의 그 선택의 결과로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하게 되었다. 하루 두시간씩 격일제로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임했고 역시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작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을 맺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친구들의 영상편지 후 내가 내린 두 번째 선택은 재활원에 클래스가 없어 갈 수 없는 날에는 혹시나 넘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서도 두 지팡이에 내 몸을 의지해서 홀로서기의 동네 한 바퀴를 하는 것이었다. 걷는다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지렁이처럼 ‘꿈틀 그린 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구부러진 허리로 또 힘찬 예전의 내 발걸음이 아니라 위태위태하고 비실비실한 모습으로 걷기를 강행했다. 도저히 불안한 모양이었는지 아들과 아내가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예전에 동네 한 바퀴에 걸리는 시간보다 무려 3배나 더 걸었고 혹시나 해서 조금이라도 숨이 찰 때면 군데군데 멈추어야 했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절실하면 이겨내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는 내 삶을 원상 복귀라는 정점을 향하여 가고 있었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역시나 큰 수술 후 ‘원상 복귀’라는 정점을 향한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고 뾰족하기만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길에서 가장 어마 무시했었던 벽은 작심삼일 이라는 천적 앞에서 사정없이 와르르 무너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망설이고 주저한 나를 꿈틀거리게 한 일등공신이 있었으니 라니의 끈질김과 애절함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은 안개가 더없이 자욱하고 시야를 가려서 내 마음도 흐리게 만들었었다. 원상복귀를 향한 길이 흐려져서 보일락 말락 할때도 많았다. ‘오늘은 위험천만하니 내일 하면 되지 뭐’라는부정적이 생각이 꿀떡 같이 고개를 치켜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뜬금없이 어떤 날에는 ‘나는 환자이지만 나와 동행해야 할 가족들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날에 바깥을 나가야 하나?’라는 참으로 대책 없는 동정심이 발동을 할 때면 영락없이 ‘오늘은 쉬고 내일 하자’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때도 많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문 앞에서 또 콘도 로비에서 전등불과 우산을 준비해서 나를 기다리는 라니가 마음에 걸려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As long as I am alive No body left behind 즉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도 낙오자가 없다”라는 라니의 선언 앞에 나의 전매특허였고 고질병인 핑계와 게으름은 설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잠깐’은 쉽다. 그러나 ‘한결같음은’ 어렵고 희귀하고 드물다. 잠깐의 의리와 우정은 쉽다 하지만 한결같은 우정은 어렵고 드물다. 그러나 이걸 어떡하나. 오직 한결같은 우정만이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다. 모든 미약한 시작이 창대하게 끝나는 것 즉 와신상담과 고진감래의 뒤에는 다’ 한결같음’의 덕택인 것이다.
혹시라도 세계여행 마니아인 전직 비행기 조종사 라니가 장기간의 유럽 여행으로 내 옆에 빈자리가 있을 때면 영락없이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친구가 채워주었다. 라니가 만들었던 촘촘한 네트워크의 힘을 톡톡히 본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작전도 위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 없이는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되고 만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빠지지 않고 해낼 때 비로소 위대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위대한 계획은 없소 단지 위대한 역할만이 있을 뿐이다.
바야흐로 2월 7일 날 수술을 한 지 무려 6개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흘러갔었던 어느 날 수술 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던 수술 담당 의사와의 상담이 있었다. 다행히 봉합되었던 가슴뼈와 전반적인 회복이 잘 진행이 되었다는 참 학수고대했었던 반가운 뉴스를 받았고 모든 활동에서 자유로움이라는 허락도 받았다.
재활 첫날 아령 5파운드( 2.26킬로그램)의 무게로 팔근육 회복하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 어저께 같은데 지금은 30파운드(13킬로그램의 무게)를 어렵지 않게 다룰 정도이다. 감히 말하지 난 내 눈에는 장족의 발전이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화는 순간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의 말씀이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팡이 두개로 시작했었던 동네 한 바퀴 걷기는 어느새 지팡이 하나로 되었고 또 어느새 지팡이의 도움 없이 홀로 걷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어느새 라니와 나의 새벽녘 동네 한 바퀴는 이 실버타운의 붙박이 permanent fixture 가 되었다.
이때를 위한 고사성어가 있는데 내 삶에서 가장 훌륭한 좌표가 된 수적청석(水滴穿石)이라는 말인데 꼭 풀이하자면 水는 물 수, 滴은 물방울 적, 穿은 뚫을 천, 石은 돌 석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라는 뜻으로 본래는 '현재는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자세로, 성실함이 천재를 이긴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위대함을 뜻하는데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빠른 소식통은 AP 통신도 또 UPI 통신이 아니라 라니 통신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의사로부터 Clean bill of Health 양호한 건강 진단을 받은 후에 홀로 걷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다 나를 보고 엄치 손가락을 치켜새운다. 창문을 열고 축하한다고 한다 어색한 분위기이지만 기분은 하늘을 날것만 같다. 짐에 언제부터 다시 올 것이냐고 차를 세우고 질문 세례를 퍼붓곤 했다. 갑작스러운 환대에 어색하기만 했었고 내 평생에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일상 이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변화는 바로 ’그 옛날 그 옛날에 내 앞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을 때에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그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선택의 결과임이 틀림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If you want to go quickly,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병원에서 학수고대했었던 좋은 소식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오면서 불현듯이 뇌리를 스치는 속담들이 있었는데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If you want to go quickly,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라는 속담 그리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Joy is doubled when shared, and sadness is halved when shared.’라는 이때를 위한 속담들이다.
출처는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그 누구로부터 들었던 잠인데 나를 가리켜 한 말처럼 들리는 지혜의 가르침인데 ‘사람이 살다 보면 사는 집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웃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라는 말로 대충 간추려진다.
그렇다. 살다 보면 내 마음 내키는 사람만 골라서 내 이웃으로 둘 수는 없다. ‘인생만사 복불복' 아니면 '인생만사 새옹지마'이라고 하듯이 어떠한 일의 잘되고 못 됨은 운수에 달려 있다”라는 말처럼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팔자소관일 따름이다.
그래서 송나라 때 여자 승진(僧軫)이라는 이가 새 집을 샀는데 누군가가 집값을 물으니 1001만 금이라 했다. ‘무슨 놈의 집이 그렇게 비싸냐?’고 했더니 답은 이랬다. ‘1만금으로 집을 사고 1천만금으로 이웃을 샀다"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이웃과의 화목 공존을 얼마나 중요시했던가.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우리 속담이 있을 만큼 이웃관계는 예부터 중요시되어온 인간관계다.
<나가면서>
늦게나마 이 실버타운에 이사를 온 것이 내 인생의 운수 대통이다 싶다. 물론 좋은 병원에서 좋은 의료진을 만나고 또 더 나아가서 좋은 재활원에 등록한 것은 큰 행운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하필이면 좋은 이웃사촌들 속에서 큰 수술을 받고 또 재활을 한 것 또 라니와 좋은 이웃들 속에서 투병기를 맞은 것은 운수 대통임에 틀림이 없다.
의사로부터 Clean bill of Health(건강 상태가 양호함)이라는 진단을 받은 날 아내와 간호원 막내아들과 함께 집으로 오면서 문득 떠올랐던 시가 있다. 이 동네에서 발간되는 주간 잡지에 내 친구들의 그동안의 나를 향한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을 꼭 전하기에 딱좋은 시이다. 평시에 좋아하는 K-poet 인 정용철 시인의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이다.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냅니다.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좌절하고 낙심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소망의 언덕에 서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불평이 가득하고 웃음이 사라질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불평이 떠나고 미소가 피어 오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정용철 시인의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중에서
그렇다. 수술 후에서 부터 재활 그리고 삶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선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운수대통의 일이다. 아무도 찾는이가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환자 당사자에게는 힘들고 지루하고 잔인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럴 때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이고 위안이다.
아무도 찾지 않은 무인도에서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재활의 승패를 가늠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칠순을 코앞에 두고 내가 원하는 진정한 재활은 단지 육체적인 원상 복귀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육체적인 재활은 단지 절반의 성공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온전한 재활의 성공은 이제 남은 세월 동안 나 자신이 외로움 속에서 다시 태어나서 이제부터라도 그 누군가에게 어떤 새로운 삶의 희망일 때에 비로소 가능함은 아닐까 싶다. 그럴 때에 비로소 늦게나마 쓰라린 고생을 뛰어 넘어서 새롭게 얻은 심장을 가지고 다른 심장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의 원상 복귀를 성취한 날 진정한 재활을 이룬 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