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님의 가슴 통증은 아마 영원히 낫지 않을 것이다.
서피랑 서포루 기둥에 등을 기대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야말로 생명수였다.
덥고 습한 공기가 폐부를 누를 때쯤, 먼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땀방울을 훔치고 지나갔다.
찰나의 청량함.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평화는 길지 않았다.
근처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시끌벅적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렸다.
“아이고, 우리 바깥양반 같은 사람이 어데 있겠노. 얼매나 성실하고 배려심이 깊은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다니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여자의 얼굴엔 수국이 만개해 있을 것이다.
기둥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입 안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네 최고의 요주의 인물, 김 형님의 아내였다.
그 형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네 인간 기피 대상 1호다.
예민함은 바늘 끝 같았고 집요함은 사냥개 같았다.
미용실에선 깎을 것도 없는 머리의 좌우 균형을 따지며 ‘책임’이라는 단어를 썼고, 윗집 아이의 발소리엔 직접 제작한 우퍼 스피커로 보복 소음을 쏘아 올렸다.
결국 윗집은 야반도주하듯 떠났다.
자신의 안온함을 위해 타인의 일상을 기꺼이 파괴하는 사내.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저었다.
한번은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임에도 그는 의사의 멱살을 잡을 듯 책상을 쳤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와 내 가슴이 이래 아픈 거냐고! 당신 돌팔이 아이가?”
평소 부처 같던 의사가 볼펜을 탁 내려놓으며 처방전을 날렸다.
“환자분, 성격이 그 모양인데 가슴이 안 아프고 배기겠소!”
서포루 언덕 위에서 들은 아내의 극찬은 내가 알던 괴팍한 빌런과는 다른 평행우주 같았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가 병원에서 그토록 지독하게 건강을 확인하려 했던 집착, 타인의 일상에 날을 세우던 그 날카로운 예민함. 그것은 밖을 향한 공격인 동시에 제 집 안방을 단 한 순간도 비우지 않겠다는 사내의 기괴한 방어 기제였다.
그는 세상 모든 불운으로부터 자신이라는 성벽을 완벽하게 요새화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내 울타리만 지키는 방식.
그것은 명백한 이기주의다.
하지만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온갖 가시를 세우며 독기를 뿜어내던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남편으로 무장해제 되었을 것이다.
밖에서 긁어모은 타인의 친절과 여유를 가로채 오직 제 집안에만 쏟아붓는 기이한 독점.
이제야 의사의 처방전이 다시 읽힌다.
성격 때문에 아픈 것이라던 진단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제 몸을 너무 팽팽하게 죄어온 사내의 ‘과부하’였다.
그 형님의 가슴 통증은 아마 영원히 낫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는 악마가 되어서라도 안에서는 천사로 남고 싶은 그 비겁하고도 절박한 모순이, 그의 심장을 쉼 없이 누르고 있는 한 말이다.
아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그가 밖에서 쳐야 할 성벽은 더 높고 날카로워질 테니까.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으나, 아까처럼 시원하지는 않았다.
아내의 수국 같은 웃음 뒤로, 야반도주한 윗집 아이의 겁에 질린 눈망울이 자꾸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