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평화와 안도감

주말부부의 주말에 대해서

by 레비나스


직장 때문에 통영으로 내려오는 사내들 대다수는 혼자다.

가족과 함께 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아내의 직장과 아이들의 학교라는 견고한 현실 앞에서 사내는 기꺼이 유배를 자처한다.

그런 사내들의 퇴근길 풍경은 복제된 것처럼 닮아 있다.

한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투가 들려 있고, 그 안엔 내일 아침까지 해결할 도시락이 들어 있다.

처음 이곳으로 발령받았을 때만 해도, 사내는 이 초라한 식탁을 아내에게 영상 통화로 비추며 "금방 올라갈게"라고 다정하게 속삭였을 것이다.

그때의 거리는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필터였고, 사내는 금요일마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엑셀을 밟으며 차의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영상 통화는 의무가 되었고, 이내 피하고 싶은 부채가 되었다.

화면 속 아내의 얼굴을 보면 '고생한다'는 위로를 건네야 할 것 같은데, 사내의 마음속엔 '나도 여기서 죽을 맛이야'라는 보상심리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사내는 신발장 위의 자동차 키를 보며 멈칫한다.

'이번 주말엔 그냥 통영에 있을까.'

그 찰나의 망설임은 죄책감이 되어 사내를 괴롭혔지만, 막상 혼자 남겨진 원룸의 정적은 달콤했다.

아내의 잔소리도, 아이들의 부산스러운 소음도 없는 '1인용의 평화'.

죄책감은 그렇게 서서히 해방감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 달 만에 찾은 집은 이제 사내의 자리를 정교하게 지워내고 있었다.

욕실 칫솔걸이에는 아내와 두 아이의 칫솔만 단란하게 걸려 있었다.

사내의 것은 구석진 유리컵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대충 꽂혀 있었다.

언제든 다시 떠날 손님의 소지품처럼 말이다.

"아빠, 내 방 들어오지 마. 나 화상 수업 중이란 말이야!"

문고리를 잡은 채 멍하니 선 사내의 눈에 거실의 낯선 공기청정기와 소파의 바뀐 위치가 들어온다.

사내의 동의 없이 완성된 그들만의 견고한 왕국.

섭섭함은 날 선 가시가 되어 튀어나왔다.

"집 꼴은 이게 뭐야. 거실에 잡동사니 좀 치우지. 애들 교육은 제대로 시키고 있는 거냐?"

사내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아내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갔다.

아내는 설거지통에 그릇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자기는 어쩌다 한 번 오면서 오자마자 지적질이야? 자기가 애들 숙제 한 번 봐준 적 있어? 그냥 조용히 쉬다 가. 그게 도와주는 거야."


사내는 자신이 통영에서 감내하는 고독이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내는 그저 ‘일요일이면 떠날 불편한 간섭자’일 뿐이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소리만 공허하게 부유했다.

가족은 한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이라는 섬으로 망명을 떠난 상태였다.


일요일 오전 10시.

사내가 월요일 새벽에 출발할까 고민하던 찰나, 아내는 조용히 현관 앞에 사내의 보스턴백을 놓았다.

가방 옆에는 사내의 원룸 냉장고를 채울 멸치볶음과 장조림이 든 보냉백이 나란히 놓였다.

"차 막히기 전에 지금 출발해. 내려가서 한숨 자야 내일 출근하지."

한 끼라도 더 먹고 가라는 애틋한 만류 대신 서둘러 당신의 섬으로 돌아가라는 그 상냥한 축출.

사내는 가방을 메며 아내의 눈을 피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사내는 가슴 한구석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서글픈 안도감이었다.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같은 처지의 동료에게서 문자가 온다.

[소주나 한잔하자. 오늘 박 과장도 일찍 내려왔대.]

술집 안에는 사내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벌겋게 취해 있었다.

"김 선배, 이번 명절엔 올라가야지?"

"가야지. 근데 가서 이틀만 있으면 아내가 그래. '당신 통영 내려갈 때 뭐 좀 더 싸줄까?' 하고. 얼른 네 섬으로 가라는 거지. 나도 이제는 여기 혼자있는게 더 편해."

사내들은 낄낄대며 잔을 부딪쳤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 끝엔 털어내지 못한 씁쓸함이 매달려 있었다.

사내도 그 틈에서 소주를 삼켰다.


밤이 깊어갈수록 통영의 밤바다는 사내들의 한숨을 집어삼키며 더욱 짙게 물들어갔다.

술기운에 비틀거릴 때까지 서로의 외로움을 확인하고서야 각자의 섬으로 흩어졌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기계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복도를 지나, 사내는 어두운 원룸의 현관문을 연다.

아무도 없는 방안, 낮 동안 가두어 두었던 서늘한 공기가 제일 먼저 발목을 휘감는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사내의 그림자가 텅 빈 벽지에 길게 누워 주인을 맞이한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 끝에 걸터앉으니 아까 마신 소주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고요만이 귀부근에서 잉잉거린다.

아내가 싸준 보냉백 속 멸치볶음은 내일 아침이면 차갑게 굳어 식탁 위에 놓일 것이다.

사내는 문득 깨닫는다.

아까 느꼈던 그 해방감은 자유가 아니라 더 이상 누군가에게 소속되지 못한 이의 ‘버려진 편안함’이었다는 것을.

사내는 불을 끄지 않은 채,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몸을 눕힌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눈이 시리게 밝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지금 이 순간 사내가 마주한 것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1인용 유배지’의 완벽한 적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