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검지는 칼날처럼 정확히 내 미간을 겨냥했다.
"거기, 그 삼팔선 같은 주름 좀 어떻게 해봐. 가만히 있어도 나라 잃은 백성 같잖아. 어제 찍은 사진 보니까 당신 혼자만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더라."
나라를 잃은 듯한 내 미간의 주름은 주말 아침부터 시작된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었겠으나, 나는 굳이 입 밖으로 내어 항변하지 않았다.
오십 평생 내 얼굴은 세월이 허락한 자연산 영토라고 믿었건만 아내에게 그것은 단지 ‘재건축이 시급한 낙후 지역’일 뿐이었다.
내 미간에 깊게 파인 내 천(川) 자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물여덟에 사회에 나와 직장이라는 여진을 견디고 매달 날아오는 대출 이자를 계산하며, 직장 상사의 무능한 지시를 묵묵히 삼켜내는 동안 조금씩 침식되어 온 내 생존의 참호였다.
하지만 그 치열했던 삶의 훈장도 미학적 기준 앞에서는 속절없이 철거 대상이 되었다.
아내의 성화는 며칠 후 ‘부산 서면 ㅇㅇ성형외과 1시30분 예약’이라는 카톡 메시지로 도착했다.
그렇게 나는 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에 인공의 의지를 주입하는 보톡스 유랑길에 올랐다.
병원은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눈이 시릴 만큼 하얀 대리석 바닥과 그림자 하나 생기지 않는 할로겐 조명 아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무균실의 공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세련된 공간의 한구석에는 나처럼 중년이 넘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마치 제 발로 찾아온 도축장의 가축이거나, 자신의 노화를 공식적으로 선고받기 위해 대기하는 미결수들처럼 어색한 자세였다.
우리는 애써 철 지난 잡지를 뒤적이는 척했지만 시선은 자꾸만 상담실을 들락거리는 젊은 직원들의 팽팽하고 매끈한 얼굴에 머물렀다.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그들의 피부가 인류의 미래라면, 내 미간은 50년 넘게 찌푸리며 다져진 화석화된 과거였다.
“남편분, 미간에 보톡스만 살짝 넣으셔도 인상이 훨씬 훤해지실 거예요. 요즘은 남자분들도 관리 안 하시면 한순간에 훅 무너져요.”
패션화보집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현실감 없는 외모의 상담실장의 목소리는 훈련된 자본주의의 상냥함을 입고 있었으나 단어의 뼈대는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무너진다’는 동사가 내 생의 지반을 날카롭게 건드렸다.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내 얼굴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력이 이끄는 대로, 혹은 세월이 할퀴고 간 대로 근육은 탄력을 잃고 주름은 깊은 계곡을 팠다.
그 생물학적 붕괴를 막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생각보다 명확하고 저렴했다.
내 생존의 참호를 시멘트 대신 메우는 보톡스의 정가는 단돈 5만원이었다.
반백 년의 고뇌가 단돈 5만 원, 약물 몇 방울에 휘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서글펐다.
시술 의자에 눕자 간호사가 내 손에 작은 고무공을 쥐어 주었다.
긴장하면 꽉 쥐라는 뜻이었다.
중년의 사내가 고무공을 쥐어짜는 사이, 차가운 알코올 솜이 미간과 눈가를 훑고 지나갔다.
"따끔합니다."
의사의 건조한 경고와 함께 바늘이 파고드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물질이 근육의 결을 찢고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은 불쾌했다.
뻐근한 압통과 함께 약물이 퍼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주름을 펴는 약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소멸의 과정을 거부하기 위해 억지로 밀어 넣는 ‘인공의 고집’ 같았다.
2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내 미간과 눈가의 도랑은 돈값을 하는 약물들로 빈틈없이 채워졌다.
병원을 나서며 아내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일주일만 지나봐, 훨씬 나아질거야. 사람 인상이 달라 보인다니까. 진작 좀 맞지.”
아내는 자신이 주도한 재개발 사업이 흡족한 듯 웃었지만 나는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약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표정을 지을 근육이 마비된 것인지 미간과 눈가 주변이 묵직했다.
일주일이 지나면 거울 속의 나는 분명 주름이 지워져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거울 속의 나는 어딘지 모르게 낯선 사내로 보일까?
치열한 밥벌이의 고뇌와 짜증, 때로는 안도와 환희의 흔적이었던 그 주름들이 증발한 자리에 무색무취하고 텅 빈 평활함만이 덩그러니 들어앉아 있는 건 아닐까?
일주일이 지나자 정말로 주름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약효는 놀라울 정도로 정직했다.
이제 아무리 인상을 써도 미간과 눈가는 꿈쩍하지 않았다.
타인의 치명적인 실수에 화를 내고 싶은데 표정은 득도한 승려처럼 온화했고 슬픈 뉴스를 보며 혀를 차는데도 눈가와 미간은 보톡스의 힘으로 팽팽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내면의 감정은 여전히 파도처럼 요동치는데 얼굴이라는 수면은 인공적으로 얼려진 빙판처럼 고요했다.
그것은 명백한 ‘표정의 거세’였다.
사내들은 나이가 들면 자신만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의학의 힘이 결합된, 철저히 ‘관리된 얼굴’을 갖게 되었다.
매끈해진 덕분에 타인에게 주는 인상은 유순해졌을지 모르나 그 안에는 50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한 인간의 고단한 역사가 하얗게 표백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잃어버린 표정에 대한 철학적 고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보름쯤 지나 거울을 보는데 팽팽해진 미간과 눈매가 묘한 승리감과 활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 이거 봐라? 제법 젊어 보이는데?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고."
5만원의 굴욕은 어느새 안도로, 안도는 다시 은밀한 욕망으로 번져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미간이 반듯하게 펴지고 나니, 이번에 쳐지기 시작한 눈꺼풀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는 세수를 하다 말고 거울에 얼굴을 바싹 밀착시켰다.
팽팽한 미간과 대조적으로 세월의 무게와 중력을 이기지 못해 반쯤 닫혀버린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하고 졸려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시야를 가리는 무겁고 축 처진 눈꺼풀.
억지로 눈을 크게 뜨려 해봐도 눈꺼풀은 더이상 힘을 써주지 못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안검하수였다.
하나의 흠집을 가리자, 그동안 숨어있던 더 거대한 노화의 잔해들이 수면 위로 끔찍하게 떠오른 것이다.
"안검하수 수술이라는 걸 하면, 십년은 젊어 보일까?"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도살장 끌려가듯 병원에 갔던 사내는 이제 거울 앞에 없다.
나는 지금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처진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린 채 스마트폰으로 '남성 안검하수 비포어와 애프터 후기'를 맹렬하게 검색하고 있다.
나는 이제 내 생의 남은 영토마저 그 얄팍한 젊음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메스 앞에 상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보, 다음번엔 성형외과에서 안검하수 상담도 같이 받아보면 어떨까?"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퍽 진지했다.
표정을 잃어버린 사내가 얻은 것은 고작 주름 없는 미간이 아니었다.
늙음마저 자본의 힘으로 유예하고 매수할 수 있다는, 지독하고도 간사한 통제감의 중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