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밑을 걷는 법
통영해저터널을 찾는 이들은 대개 수족관의 환상을 품고 온다.
머리 위로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은빛 물고기가 유영하는 투명한 통로.
하지만 입구를 지나 터널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환상은 축축한 냉기에 질식당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벽면과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정체 모를 물방울뿐이다.
이 길은 일제가 미륵도의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바다 밑바닥을 파내어 만든 통로다.
썰물 때면 걸어서 건널 수 있었던 얕은 바다였으나, 그들은 굳이 바다 위가 아닌 바다 밑으로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임진왜란 때 조상들이 수장된 그 바다 위를 차마 밟을 수 없어 땅밑으로 숨어든 비겁한 공포의 산물이라고.
나는 벽면에 핀 곰팡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역사의 흉터라기보다, 그저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습기가 만들어낸 생존의 흔적이다.
터널 안의 공기는 무겁고 정체되어 있다.
걷다 보면 내 발소리가 벽면을 타고 돌아와 뒤통수를 치는 기이한 공명을 마주하게 된다.
그 소리는 마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같기도 하고, 혹은 이 어둠 속에 갇혔던 수많은 이들의 마른기침 소리 같기도 하다.
나는 동행들에게 농담을 건넨다.
아주 깊은 밤, 여기서 일본 순사의 유령을 만나면 "이순신"이라고 외쳐보라고.
지인들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터널의 서늘한 기운 탓인지 웃음소리는 금세 사그라든다.
사실 우리가 이 터널에서 마주하는 진짜 공포는 유령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리기 위해 바다 밑바닥까지 파고들어야 했던 그 집요한 광기, 그리고 그 광기가 남긴 낡고 축축한 잔해다.
터널 끝, 지상의 빛이 쏟아지는 출구가 보인다. 사람들은 서둘러 그 빛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우리가 밟고 지나온 것은 승리의 기념비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어두웠던 한 시절의 통로일 뿐이다. 해방 후 우리는 그 바다 위로 당당하게 대교를 세웠고, 일본인들이 숨어들었던 이 길은 이제 산책로가 되었다.
바다 위를 걷는 사람들과 바다 밑을 걷는 사람들.
터널을 빠져나와 뒤를 돌아본다.
입구는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입을 벌리고 있다. 화려한 수족관은 없지만, 그곳에는 지워지지 않는 습취(濕臭)가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낮은 곳에서 흐르던 어떤 삶의 냄새다.
나는 뺨에 묻은 축축한 공기를 닦아내고 비로소 바다 위로 몸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