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답은 충분히 아름다운가

가보지 못한 길의 찬 바람을 견디며 오늘을 껴안는 법

by 레비나스





도심의 낡은 건물, 빛바랜 붉은 벽돌 사이로 뜬금없는 문구 하나가 걸려 있다.

[원래 내 꿈은 교수였다..ㅅㅂ]

뒤에 붙은 자음은 비속어라기보다 차마 뱉지 못한 생의 울분이나 허탈함에 가까웠다.

과메기와 대패숙주찜을 파는 술집 입구에서 주인장은 자신의 실패를 간판 삼아 내걸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가 되기를 꿈꾸며 유년의 계단을 오른다.

하지만 삶이라는 파도는 대개 우리가 설계한 항로를 비껴간다.

상아탑 대신 주방의 열기 앞에 서게 된 주인장의 사연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그 간판이 주는 묘한 해방감을 읽는다.

번듯한 상호 대신 '좌절된 꿈'을 내걸어버린 그 당당한 체념.

'원래'라는 단어는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슬픈 고백인 동시에, 한때 가졌던 뜨거운 열망을 조롱하는 훈장이다.

그는 안주를 볶으며 가끔 가슴 한구석에 문신처럼 새겨진 '교수'라는 단어를 만져보았을 것이다.

그 문신이 따끔거릴 때마다 그는 프라이팬을 더 세게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만난 청년은 부모의 걱정 어린 눈빛 때문에 공무원 시험 교재를 뒤적이긴 하지만 실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며 우울하게 말했다.

"뭘 골라도 후회할 것 같아요."

청년의 말은 맞다.

우리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감당해야 할 '오답'을 고르는 것뿐이니까.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든, 닫힌 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피할 방법은 없다.

교수가 되지 못하고 술집 주인이 된 삶이 실패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안주를 볶느라 뻐근해진 손목과 단골손님의 주사를 받아내며 깊어진 눈가의 주름이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명예보다 실존적이고, 강단의 풍경보다 구체적이다.


지혜로운 삶이란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른 오답의 뻐근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실패한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밑바닥에 퇴적층처럼 쌓여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축축한 토양이 된다.

오늘 밤, 저 낡은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묻어둔 '원래의 꿈'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실 것이다.

"애인 바뀐 단골손님 모른 척해 드립니다"라는 익살스러운 문구 아래서, 그들은 정작 자기 자신의 바뀐 모습은 모른 척하지 못해 괴로워할 것이다.


붉은 벽돌 위의 문구는 실패의 기록이 아니다.

화려한 이상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현실과 기꺼이 악수하게 만드는, 지독히도 인간적인 생존의 흔적이다.

교수가 되지 못한 대신 그는 수많은 취객의 인생 단편을 읽어내는 능력을 얻었을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완벽한 문장은 아닐지라도 직접 손에 흙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 쓴 그 오답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역사다.

술집을 지나치며 주방 안에서 꽤나 단단한 칼질 소리가 들리는 것 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