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케익과 빵모자에 대한 거부감

나는 여전히 빵 쪼가리와 모자 하나에 마음이 뒤틀린다

by 레비나스


"막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는디, 입학한다고 내가 새옷을 사줬단 말이여. 그 새옷을 입혀주니께 막내가 그 옷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나 학교간께 새옷 사줬어?'라며 웃는데, 성아들 헌옷만 입혀준 것이 어찌나 미안허던지......"

지금도 가끔, 어머니는 아내에게 내 초등학교 입학식날의 에피소드를 잊지 않으시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면 나는 옆에서 아무말 없이 가만히 웃고 있긴 하지만 나 역시 그날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금단추가 달린 고동색 재킷의 가슴께에 손수건을 달아주던 어머니와 내 손으로 재킷을 쓰다듬던 그 감촉까지 말이다.


삼형제의 막내로 산다는 건, 어릴적부터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버티는 투쟁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막내라 하면 으레 귀여움을 독차지했을 거라 짐작하지만, 실제로 형들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고 형들이 쓰고 남은 옷이나 물건들을 당연하게 물려받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형들의 체취가 남은 헌 옷가지들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것을 갖는 기쁨보다 남의 것을 내 몸에 맞추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렇게 낡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는 조심스럽게 자랐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롤케이크와 빵모자다.

내 생일은 늘 조금 멋쩍었다.

형들의 생일에는 크림 케이크가 식탁 가운데 놓였다.

제철 과일이 올라간 그 화려한 식탁 앞에서 형들은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내 차례가 되면 어김없이 투명한 비닐에 싸인 롤케이크가 올라왔다.

자르기 편하고 보관이 쉽다는 실용적인 이유였겠지만, 어린 내 눈에 그것은 축하라기보다 얼른 먹어 치워야 할 숙제처럼 보였다.

비닐을 벗길 때 나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어쩐지 구차했다.

촛불을 끄고 나면 사선으로 뭉텅뭉텅 잘려 접시에 놓이던 그 단면들을 보며 나는 내가 이 집안의 주인공이 아니라 형들의 잔치 끝에 덧붙여진 부록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돌돌 말린 빵 사이의 얇은 잼 층은 내가 이 집안에서 차지하는 얄팍한 입지 같아, 입안에 넣어도 달기보다 퍽퍽했다.

빵모자는 조금 더 아픈 기억이다.

두 형은 번듯한 유치원을 졸업하며 동그란 빵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거실 벽면의 액자 속에서 그 모자는 형들의 성장을 증명하는 훈장처럼 빛났다.

하지만 막내인 나는 형들이 다녔던 유치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했다.

형들의 사진 속 빵모자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고, 나만 쏙 빠진 그들만의 세계를 확인시켜 주는 경계선이었다.

사진 속 형들은 당당했지만, 그 사진을 올려다보는 나는 늘 작았다.


중년이 된 지금도 제과점 진열대에 놓인 롤케이크를 보면 입안이 텁텁해진다.

누군가 멋스럽게 빵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게 뭐라고 아직까지 이러나” 싶어 혼자 속으로 중얼거려 보지만,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은 섭섭함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번듯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자부하다가도, 이런 사소한 기억 앞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속좁은 어린아이를 마주할 때면 스스로도 참 당혹스럽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고작 빵 쪼가리와 모자 하나에 마음이 뒤틀리는 내 모습이 못나 보여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많은 것을 잊는다고 해도, 몸이 기억하는 결핍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이제 내 돈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살 수 있고, 원한다면 빵모자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년의 식탁 위에서 느꼈던 그 얄팍한 소외감까지 돈으로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안의 그 아이는 여전히 롤케이크의 비닐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자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제과점을 지나치며 롤케이크를 빤히 응시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 생의 가장자리에 밀려나 있던 그 시절의 내가, 여전히 그 돌돌 말린 빵 안쪽에서 숨을 죽이고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다.

모든 것을 다 채우고 살 수는 없다.

중년의 삶이란 어쩌면 그런 마음의 구멍들을 굳이 메우려 애쓰지 않고, 내 안에 여전히 서운해하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가만히 인정해 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너 아직 거기 있었구나” 하고 그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지나가는 것.

무심한 척 롤케이크 앞을 지나치며 그렇게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르는 것.

어쩌면 그 정도의 솔직함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여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