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집에 사는 귀촌인들

귀촌이라는 환상이 머물다 간 자리

by 레비나스






얼마 전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운전석의 남자는 백미러를 통해 집요하게 내 눈을 쫓았다.

낯선 이의 기척을 살피는 그 눈빛은 경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절박한 확인에 가까웠다.

"말투 보니, 여기 분 아니시죠?"

기사의 음성에는 경기도 특유의 매끄러운 억양이 묻어 있었다.

퇴직 후 통영에 내려온 지 3년째라는 그는, 이 도시의 청량한 물빛보다 그 심해에 가라앉은 지독한 고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참 살기 좋은 곳인데, 도무지 마음 붙이기가 어렵네요. 텃세가 얼마나 심한지... 여기 사람들은 외지인에겐 악마 같은 사람들이에요."

'악마'라는 단어는 좁은 차 안을 단숨에 빙점으로 얼렸다.

그가 겪었을 수많은 문전박대와 무심한 시선들이 핸들을 잡은 마디 굵은 손등 위로 겹쳐 보였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보았다.

바다는 여전히 눈부신 윤슬을 뱉어내고 있었지만, 저 찬란함이 누군가에게는 숨을 조이는 창살이 되고,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고립된 방 안의 정적을 더욱 키우는 소음이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따끔해졌다.




문득 아는 사모님으로 부터 초대를 받아 방문했던 어느 2층 주택이 떠올랐다.

동네 끝자락, 산자락이 바다를 향해 완만하게 몸을 낮추는 곳에 자리한 그 집은 볕이 가장 깊게 들고 바람이 순하게 머무는 명당이었다.

실거래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집을 샀다며 연신 싱글벙글하던 사모님의 뒤를 따라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묘한 이질감에 발을 멈췄다.


이사를 간 빈집이라는데 실제로 집은 비어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만’ 비어 있었다.

거실에는 누군가 방금까지 스포츠 중계를 보았을 법한 최신형 TV가 침묵의 스크린을 세운 채 서 있었고, 안방에는 주인이 정오의 낮잠을 청했던 듯 결이 고운 이불이 단정하게 깔려 있었다.

주방의 냉장고는 낮은 기계음을 내며 웅웅거렸고, 그 안엔 채 시들지 않은 식재료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차갑게 식어 있었다.

창가 아래 늘어선 담금주 병들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투명하게 일렁였다.

그것은 빈집의 풍경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박제된 채 버려진 ‘존재의 잔해’였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아내가 낮게 속삭였다.

"여기, 사실 귀신 들린 집이었대. 들어오는 외지인마다 1년을 못 버티고 다들 도망치듯 나간다더라."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의 내력을 초자연적인 공포로 덧칠했다.

하지만 그 실상은 통영의 푸른 빛에 홀려 내려온 귀촌인들이 마주한 '절망의 신기루'였다.

그들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일 때, 이웃들과 낚시를 하고 갓 잡아 올린 횟감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낭만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먼저 건넨 인사는 차가운 침묵으로 돌아왔을 것이고, 관계의 물꼬를 터보려 정성껏 준비한 식사 초대는 "우리를 오라 가라 하며 가르치려 든다"는 날 선 오해로 변질되었을 것이다.

거리를 두면 이번엔 "역시 서울 것들은 깍쟁이"라는 냉소가 담장을 넘어 날아들었으리라.


매일 보던 푸른 바다는 퇴로 없는 벽이 되고, 창가의 담금주 병들은 한 번도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외로운 먼지만 쌓여갔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손때 묻은 물건조차 챙길 기력을 잃은 채 야반도주했다.

수백만 원짜리 가전제품보다, 저 단단한 이웃의 벽 사이에서 당장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 더 절실했을 테니까. 그렇게 비워진 집은 다시 '귀신 들린 집'이라는 딱지가 붙어 가격이 폭락하고, 또 다른 외지인의 서툰 기대를 기다리는 함정이 되었다.


재미있는 건, 그 집을 새로 산 지인분은 지금껏 아무 탈 없이 평온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집을 괴롭혔던 건 소문 속의 귀신이 아니라, 이곳에 오면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던 ‘지나친 열망’과 그 열망이 배반당했을 때의 비참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지 않고, 바다의 침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귀신도 텃세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다.


오늘도 어느 낯선 창가에서는 누군가 이웃과 나누고 싶어 정성껏 담갔을 술병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때 이곳에 뿌리 내리고 싶어 했던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이자,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의 파편들이다.

택시 기사가 내뱉은 "악마 같은 곳"이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환청처럼 맴돈다.

차창 밖, 통영의 바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그 깊은 물속에 얼마나 많은 외지인의 절망이 가라앉아 있는지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