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nophobia, 개가 무서운 이유 그리고 일상화된 비상상황]
당시 현장은 노선 중앙에 본부를 두고 동편과 서편 양쪽에 꽤 먼 거리를 두고 공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번은 늦은 저녁시간에 혼자서 서편 공구사무실에 다녀오다가 Oiled Road에서 (포장을 하지 않고 폐유 등을 뿌려 놓은 길로 건기에는 흙먼지가 덜 날려 사고가 방지되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우기에는 매우 미끄럽다.)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갓길 쪽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멀리서부터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들개 떼였다.
들개들이 차문을 열 수는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모든 차문의 잠금장치를 내리고 (당시에는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차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기능이 없었다.) 차 안에 장착된 이동식 무전기를 통해 공구사무실과 교신을 시도하였으나 통신 가능 지역을 벗어난 관계로 포기한 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2~30 마리의 들개들이 접근하여 차 문에 부딪치고 앞발로 긁어 대는 등 상황이 점점 악화되던 순간, 다시 몇 번의 시도 끝에 다행히 차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차를 몰아 본부로 향해 가면서 또 갓길에 빠질까 봐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계속 미친 듯이 짖어대며 쫓아오는 들개들 때문에 혼비백산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나는 들개들에게 쫓기는 꿈을 가끔 꾸곤 했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보이던 들개들이 허연 침을 흘리며 광기 어린 눈으로 짖어대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랜 기간 개를 무서워했다. 물론 지금은 기억 속의 한 컷일 뿐이지만 말이다.
전쟁이 날로 격해지고 있었다. 본사에서도 현장에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놓고 철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었기에 현지에 있던 우리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당시 타국과의 인접 지역에서 고속도로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현장으로 대피하는 등의 피난 동선을 수립하고 비상식량도 따로 비축해 놓아야 했다. 개별 차량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사전에 정해진 인원들과 동승하여 약속된 지점으로 모이는 모의 훈련도 몇 차례 했다.
그러던 중 정유공장이 있는 인근 도시에 미사일이 날아들 것이라는 소문을 현장에서 근무 중이던 현지인 직원을 통해서 듣게 되었고 밤에는 사무실과 숙소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을 치고 지냈다.
오발 위험이 있기에 늘 불안했는데 우리 현장이 있던 지역 군사령관이 현장 인근에 배치된 미사일 발사대를 보여주며 이란의 미사일은 한 발도 떨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계속 공사를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그 거짓말을 (?) 믿어 주려고 노력하며 공사에 박차를 가하였는데 다행히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란의 미사일은 날아들지 않았다.
그와는 별도로, 외국인들이 최근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다시 언급되고 있는 쿠르드족에게 납치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던 중, 우리 현장 동편 공구에서도 근로자 몇 분이 납치를 당했다가 해당 지역의 유력자를 통해 쿠르드족과 협상을 하여 석방이 되는 등 안팎으로 위기상황은 고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 어지간히 무디어진 우리는 본사의 철수 지시에도 계속 공사를 수행하겠다는 답변만 보내고 말았다.
그렇게 현장은 준공일정에 맞추어 순조롭게 (?) 진행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