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이라크와 이란은 왜 전쟁을 했을까?]

by Oldies but Goodies

연재 글 5화 ‘현장 생활과 먹거리’ 편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었던 수니파와 시아파의 관계는 간단히 언급할 사항이 아니다.


중동 문제에 해박한 전문가들이나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을 뿐 특히 중동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의 경우 수니파와 시아파의 관계를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관심도 없기에 잠시 당시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에 대해 간단히 적어 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이라크와 이란 두 나라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언젠가 이란에서 고위층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우리 측 참석자 중 중동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던 어느 임원이 회의를 마치고 갑자기 '슈크란' (شكراً : Shukran)이라고 감사를 표시하였다.

나는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거의 모든 중동 국가에서는 아랍어를 쓰지만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쓴다.

글자 모양은 매우 유사하지만 서로의 언어로는 직접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일순 정적이 흘렀지만 이란 측 인사들이 “우리는 우리 고유의 언어가 있으니 다음에는 실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하며 넘어가 주었다. 매우 예의에 벗어나는 최악의 결례였다.

그렇다면 간단하게나마 두 국가 간 언어 차이를 예로 들어 보겠다.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이란 (페르시아어 / Farsi)

안녕하세요 → سلام (Salâm)

잘 지내세요? → چطورید؟ (Chetorid?)

감사합니다 → متشکرم (Moteshakeram)

안녕히 가세요 → خداحافظ (Khodâhâfez)

이라크 (아랍어 / Arabic)

안녕하세요 → السلام عليكم (As-salâmu ‘alaykum)

잘 지내세요? → كيف حالك؟ (Kayfa hâluk?)

감사합니다 → شكراً (Shukran)

안녕히 가세요 → مع السلامة (Ma‘a as-salâma)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보겠다.

우선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관계 파악에 앞서 두 종파는 성경 속 특정 종족에 속하는 개념은 아니며 두 집단은 이슬람 내부의 종파 분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 속에서는 7세기경 이슬람 내부의 정치 및 종교적 분열에서 시작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럼 먼저 어느 국가가 수니파나 시아파에 속하는지 알아보겠다.


우선 수니파에 속한 나라들은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해 UAE, 카타르,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튀르키예 (터키) 등이 있다. 수니파는 전 세계 무슬림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시아파는 종주국 이란과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바레인 등으로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란이야 시아파의 종주국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이라크도 인구의 60% 이상이 시아파이고 20%만이 수니파인데 왜 두 국가 간 전쟁이 있었을까?


이라크에서 현장 근무 당시 이라크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시아파 국가 간에 전쟁을 하고 있냐고... 당시 현장에 근무하던 이라크인들은 대부분 바그다드대학 출신의 소위 지식층들이었다.


그들의 설명을 들어 보겠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이라크인 친구들 이야기라 모든 내용이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며 읽어 주시기 바란다.


첫 번째로 샤트 알 아랍 (Shatt al Arab) 수로는 양국 간 국경을 따라 흐르는 석유 수출의 전략적 수로인데 이에 대한 양국 간 지배권 확보를 위해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원래는 이라크에 유리하게 국경선이 정해졌으나 1975년 알제 협정에서 수로 중앙선으로 변경되었고 이라크는 이란 혁명으로 혼란한 상황을 틈타 수로 지배권을 되찾으려고 1980년 9월 이란을 침공하였다.


두 번째로는 이라크는 시아파가 60%인 국가로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은 이라크 내 시아파 반정부 세력을 부추기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수니파로 정권을 잡고 있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이를 억제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 즉, 내부의 문제를 국가 간 전쟁으로 국민들의 눈을 돌리게 하면서 중동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세 번째로는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붕괴된 후 호메이니가 이란의 혁명 이념을 주변국 특히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 등에 확산을 시도했으며 다소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하던 사담 후세인 정권에 위협이 되었기에 샤트 알 아랍 (Shatt al Arab) 수로의 지배권을 이유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즉, 1980년 대의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은 단순히 샤트 알 아랍 (Shatt al Arab) 수로로 인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영토 문제를 명분으로 하는 종교적 갈등, 이란의 혁명 이념 확산, 중동 패권 등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힌 전쟁이었다.


이 양국 간의 전쟁은 1980년 9월에 시작하여 8년 간 지속되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라크 체류 기간인 1984년 1월부터 1988년 9월까지는 전쟁이 가장 극심하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이라크와 이란이 왜 전쟁을 하였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번외 편으로 작성한 이 글이 당시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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