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리고 또 다른 시작]
1984년, 열사의 땅 이라크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단순한 현장 근무 기록이 아니다.
처음 밟은 그 낯선 땅, 전쟁의 포화로 얼룩진 이라크 현지에서의 생활은 한 젊은 기사에게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었다.
5년 간의 해외 현장 생활을 어찌 십여 편의 글로 정리하여 올릴 수 있을까?
전쟁 속에서도 따스한 미소를 잃지 않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울러 설계와 현장 상황의 괴리감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현장을 읽는 눈을 뜨게 되었고 신입사원 1년 차에 국내 현장에서 품질관리를 (QA & QC), 이라크 현장에서는 시공과 (현장 공사 담당) 공무를 (발주처 및 감독관을 상대하고 자재, 인원, 장비 등의 조달과 예산을 관리하는 등의 업무 담당) 두루 섭렵하면서 서로 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능력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대기업에서는 통상 입사 후 처음 맡는 보직이 경력 끝까지 간다고 보면 된다. (물론 보직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공무, 공사 및 품질관리를 골고루 맡아보게 되는 행운이 따라 주었고 이라크 근무 3년 차 이후부터 계속 현장 대내, 외 공무팀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공문과 텔렉스를 (Telex는 인쇄전신기를 통해 문자를 송수신하던 시스템으로 1960~80년 대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던 최초의 글로벌 네트워크였다.) 영문으로 작성하고 이라크 발주처 직원 및 독일 감독관들과 대화를 통해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의 조악한 (?) 영어에서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있는 실전 기술 영어로 무장하게 되면서 입사 후 1년 간의 국내 현장 근무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65개국 80여 개 도시를 누비며 나의 경력 전체를 해외에서 쌓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한 세대가 겪었던 시대의 초상이다.
한국이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던 시절, 수많은 한국인들이 땀과 열정을 바쳐 낯선 땅에서 전쟁을 무릅쓰고 일했고,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이라크의 모래 폭풍 속에서 배운 것은 단순한 기술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 업무 조율과 위기 극복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함께 나눈 노래와 음식이야말로 진짜 자산이었다.
지금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때 함께했던 동료들의 얼굴은 여전히 젊은 모습으로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가 함께했던 바로 그 시간은 우리나라와 이라크라는 나라의 역사 속 작은 조각으로 새겨지게 되었고,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나는 이후에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스리랑카, 러시아, 에티오피아 등 또 다른 낯선 땅에서 새로운 현장 생활을 이어갔다.
각기 다른 문화와 풍경 속에서 또 다른 역경 그에 대한 도전과 배움이 있었으며, 앞으로 그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어 하나씩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시절의 나와 동료들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인사를 건넨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