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이라크, 이라크는 왜 쿠웨이트를 침공했을까?]
전편에서 말씀을 드린 걸프전을 (Gulf War)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회사에서 공지된 '희소식'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 두고 '걸프전'에 대해 당시 내가 남겨 놓은 메모장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걸프전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시작된 전쟁으로 다국적군의 (미국, 영국,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등) 투입으로 1991년 2월 28일까지 진행되었다.
그러면 이라크는 왜 쿠웨이트를 침공하였을까?
첫째로 이라크는 이란과의 8년 전쟁으로 경제 상황이 매우 피폐해져 있었다. 전쟁 부채가 미화 800억 불 (현재 환율 기준: 116조 원) 이상으로 불어나게 되자 쿠웨이트의 막대한 유전자원을 점령해 재정난을 극복하려 했다.
특히 당시에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OPEC 생산 쿼터를 초과해 석유를 증산하면서 국제 유가를 낮추는데 결정적 역할로 인해 이라크의 원유 판매로 인한 수익을 현저히 줄였다고 비난을 했다.
두 번째로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 시절 자국의 영토였다고 주장을 하면서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특히,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 유전 중의 하나인 루메이라 (Rumaila) 유전이 쿠웨이트와 국경에 인접하여 루메이라 유전에서 원유를 도굴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 번째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이란과의 8년 전쟁을 치르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걸프지역에서 패권을 강화하고 아랍 세계의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하려 했다.
즉, 쿠웨이트를 병합하면 페르시아만에서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고 인근 국가를 압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라크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철수 결의 안 채택에도 불구하고 1990년 8월 28일 쿠웨이트를 공식적으로 합병하게 된다.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투입되어 1991년 2월 이라크를 격퇴하고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당시 다국적군의 주요 작전은 '사막의 방패작전'과 (1990년 8월 ~ 1991년 1월 1일)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1991년 1월 1일 ~ 2월 2월) 나뉜다.
'사막의 방패작전'은 (Operation Desert Shield)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하고 다국적군들의 대규모 병력을 집결한 작전이며 '사막의 폭풍작전'은 (Operation Desert Storm) 공습과 지상전으로 이라크군을 격퇴한 작전으로 스텔스 폭격기 및 정밀유도무기 등 첨단 무기를 대량 투입하여 이라크군을 무저항 상태로 만들고 최종적으로 100시간 지상전을 통해 쿠웨이트를 해방시킨 작전이다.
그러면 걸프전 이후 이라크와 세계는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전쟁 이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의 무장 해제와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생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이라크에 대한 포괄적인 경제 제재를 시작한다.
이라크는 원유 수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돈줄이 끊어지게 되고 당시 원유 생산으로 부국이었던 이라크는 화폐 가치 폭락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Hyperinflation: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월간 물가 상승률이 50%를 초과하는 등의 경제 현상) 발생하였다.
그 결과 수입에 의존하던 의약품, 식량 및 생활용품의 부족으로 이어지면서 어린이 포함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허덕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뿐이었을까?
앞서 올린 글 10편 '이라크와 이란은 왜 전쟁을 했을까?'에서 언급한 대로 이라크는 시아파가 60%이고 수니파가 20%인 국가인데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수니파로서 집권을 하고 있었고 특히 무시하지 못할 세력을 가지고 있던 쿠르드족이 인구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내부적으로 단합이 어려운 구조이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국민들의 눈을 대외적으로 돌린 것도 그런 이유가 포함된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강압정치를 통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었으나 국제적인 고립과 남부의 시아파 및 북부의 쿠르드족이 봉기하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일명 공화국 수비대를 동원해 잔혹하게 진압을 시도하여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학살되고 수백만 명의 난민 또한 발생하게 된다.
결국 10여 년간 그런 불안정한 상태가 유지되다가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갑자기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WMD: Weapon of Mass Destruction) 보유하고 있고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명분 하에 이라크를 침공하게 되고 결국 사담 후세인 정권은 붕괴되고 만다.
그런데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이라크 조사단을 (ISG: Iraq Survey Group) 이라크에 파견해 조사 후, 결국 2004년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으며 이를 생산할 계획도 없었다."라고 발표한다.
당시 미국의 CIA 국장이 부시 대통령에게 대량살상무기 증거가 확실하다고 보고한 내용이 잘못된 정보였으며 아울러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이 UN연설에서 탄저균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험관을 보이며 전쟁의 정당성을 설득했으나 훗날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오점이었다."라고 후회를 하게 된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대체할 세력을 확립하지 못해 이라크는 내전에 휩싸이게 되고 이 혼란한 틈을 타서 훗날 테러 집단인 IS가 등장하는 결정적 배경이 된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결국 미국이 중동의 석유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결과적으로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정보에 의한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