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프롤로그]

by Oldies but Goodies

1980년대 중동, 전쟁으로 긴장이 교차하던 이라크의 한 현장.

25살의 패기 넘치던 입사 2년 차 사원으로서 나는 매일 치열하게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그 삭막한 해외 현장에서도 웃음과 우정,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다.

이 글은 그 시절, 현장과 바그다드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경험을 담은 기록이다.

이라크로 출국하기 전, 나는 신입사원으로 국내 현장에서 근무를 하다가 동절기 현장 축소 운영 방침에 따라 본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때 인사부 직원이 교육 중에 들어와 혹시 다음 달에 (1984년 1월) 이라크에 부임 가능한 직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른 국가도 아니고 이라크는 한창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도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었는데 내가 나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인사부 직원은 내게 부임 의사를 번복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재차 이라크에 나가겠느냐고 물었다. 늘 넓은 세상에 나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미혼이었던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재확인을 해주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984년 1월이 되었고 집에서는 가족들이 많은 걱정을 하였지만 내 뜻을 굽히지 않고 이라크로 나갈 준비를 차분히 하고 있었다.

그때는 현장에서 근무 중인 직원들이 휴가자나 신규 부임자들을 통해 필요한 물품들을 부탁하곤 했는데 내게도 그런 부탁이 몇 건 들어왔고 회사 앞 다방에서 (그때는 호텔을 제외하고는 다방이 훨씬 더 많았다.) 부탁받은 물품들을 받아오면서도 간혹 해외 현장에 나가는 것이 잘한 선택인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도 가져보면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꿈을 점차 현실로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 글은 1980년대 이라크 현장의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40년 넘게 건설업에 몸담으며 여전히 현역으로 살아가는 제 이야기를 소소하게, 천천히 풀어내고자 합니다. 우선은 23년간의 해외 현장 생활에서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후 연재될 글들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긴 시간 현역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제 경험이 독자님들의 삶에도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이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984년,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몹시 추웠던 1984년 1월의 어느 날, 김포공항에서 이라크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다.

당시에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라서 일반 국민들은 여권 발급받기도 힘들었고 나가려면 출국 전 반공보안교육도 받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매섭게 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에 들떠 있던 25세의 초짜 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사실 흥분보다는 본사에서 주어진 미션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해외가 처음인 내가 40~50 대 근로자 분들 20명을 인솔하여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열사의 땅 중동에는 수많은 한국인 근로자 분들이 고생하고 계셨는데 현장에서 근무하실 그분들과 함께 이라크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가야 하는 상황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내 몸 하나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는데 20명의 근로자 분들과 함께 태국 방콕을 경유해 이라크에 가야 하다니...

모든 승객들이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는 상관이 없었지만 경유를 하기 위해 방콕에 도착한 이후 피하고 싶었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방콕 돈므앙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20명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한 분 모셔다 놓으면 두 세분이 사라지고 또 다른 분들이 순차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공항 안은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어 시원했겠지만 나는 온몸이 흠뻑 젖도록 진땀을 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모두 모여서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하는 순간 뒤에서 “기사 양반! 우리는 벌써 몇 탕째 해외를 나가고 있는데 너무 헛힘 쓰지 마시오.”하는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초짜 기사가 어쩌나 보려고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리저리 뛰는 나를 보고 계셨다고 한다. 이제는 그분들 모두 70~80대가 되셨겠죠?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다시 비행기에 탑승하여 이라크로 향했고 마침내 한밤 중에 이라크의 바그다드 사담 후세인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