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심사와 현장 가는 길]
그래도 나름 입사 시험 준비를 한답시고 당시 제일 유명한 영어회화 테이프였던 ‘English 900’로 독학을 하고 주한 미군부대 내 Chapel에 (예배당) 일요일마다 출석해 미군들과 신앙심을 앞세운 영어회화를 실전으로 연습해 본 터라 내심 입국심사대 통과 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웬걸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처음 타본 초짜 기사는 기압 차를 고려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지금이야 착륙 전 코를 부여잡고 내압을 이용해 귀를 뻥 뚫어 주는 신공을 (발살바법, Valsalva Maneuver) 발휘하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방법을 알지도, 알 수도 없었기에 비행기 안에서 긴장감에 한잠도 못 잔데 다가 기압 차로 인해 귀는 꽉 막힌 채 21개의 여권을 가지고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그리고는 입국심사대에서 입국담당자가 하는 말이 웅웅 울리는 먼 소리로 들리는 천지개벽 할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진땀을 흘리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를 읊조리고 있던 사이 서광이 비췄으니 짜증 섞인 표정으로 아래, 위를 훑어보던 입국담당자가 내가 듣기에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본다. “당신 토목 기술자입니까?” 나는 냉큼 자신감 넘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상하다. 입국담당자의 손이 갑자기 바빠진다.
21개의 여권에 입국승인 스탬프를 빠르게 찍으며 “사담 후세인 대통령도 토목공학을 전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없어야 하는 부분은 나중에 현지인 친구들에게 확인해 보니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사실 바그다드 법학대학에 입학했을 뿐 토목공학을 전공한 적은 없었다. 입국담당자가 당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모든 학문에 능통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자국 현장에 부임하는 외국인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렇게 21개의 스탬프를 찍고 있는 사이에 하품이 나오면서 막혀 있던 내 귀가 뻥 뚫리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제야 입국담당자와 가볍게 농담도 주고받게 되었다. 아울러 뒤에서 호기심과 우려 섞인 40개의 눈동자들이 입국담당자가 스탬프를 찍기 시작하는 순간 안도감에 젖어드는 것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이렇게 모든 인원이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당시는 이라크와 이란이 한창 전쟁을 하고 있던 터라 밤에만 공항을 운영하는 통에 입, 출국하는 사람들로 혼잡한 공항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현장 직원과 간신히 만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서 자리에 앉으니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한 명도 빠짐없이 이라크로 안전하게 데리고 온 젊은 기사에게 박수! “라고 하자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좌석에서 일어나 돌아서서 인사를 꾸벅하고 다시 좌석에 앉자마자 긴장이 풀린 나는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한참을 가다가 어디서 인지 버스가 멈추었고 다들 내려서는 쌀쌀한 이라크의 도로변, (이라크는 한 여름에 영상 40도까지 올라가지만 북부 지역은 한 겨울에 눈도 내리고 영하로 내려가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허름한 카페에서 그야말로 차이 (홍차) 반, 설탕 반이 들어있는 조그만 유리컵을 훌훌 불어가며 따스한 차로 몸을 녹이고는 다시 현장으로 출발을 하였다.
새벽녘 우리를 실은 버스는 현장에 도착을 하였고 나는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