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적응기 그리고 눈물의 애국가]
배정받은 숙소에 들어가 침대와 옷장만 있는 삭막하고 낯선 방에서 드디어 해외 현장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전, 노크 소리와 함께 갑자기 외국인 한 명이 들어왔다. 마침 침대 위에 베개가 보이지 않아 별생각 없이 영어로 “베개 좀 가져다줘요.”라고 하자 씩 웃더니 한국말로 “아~ 형님! 베개요? 빨리 갖다 드릴 게요.”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말을 모국어 보다 잘한다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하우스보이, 후세인이었다.
당시 사원과 대리는 2인 1실이었고 과장 이상부터 독실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2인실을 써야 했지만 숙소에 여유가 있어서 침대가 2개 있는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도 정신은 점점 맑아지고 그러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려고 하는데 머리맡에 둔 사발시계에서 벨이 울렸고 입사 2년 차로 군기가 (?) 바짝 들어 있던 나는 샤워장이 어딘 지도 모르는 채 우선 밖으로 나와 보니 일찍 일어난 직원들이 몇 명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제일 처음 본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샤워장을 물어보니 위치를 알려준다.
여러 직원들과 커튼이 쳐 있는 공동 샤워장에서 어색하게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는 숙소 밖으로 나와 보니 그제야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숙소와 사무실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직원에게 사무실을 물어보고 같이 사무실로 향해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지역에는 군부대나 정유공장 등 주요 시설이 없어 안전하니 걱정을 말라고 한다.
그렇지만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TV를 통해 본 이라크와 이란의 상황은 심각했으며 콧수염을 기르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포와 미사일을 마구 쏘아대고 있었고 매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사무실에 가서 소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공무직원의 안내로 여러 직원들과 만나게 되었으며 전기와 건축 그리고 관리부 직원들과도 인사를 하였다. 현장에 먼저 부임한 입사 동기들이 많이 있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며 필요한 장비나 자재가 있으면 아낌없이 도움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이라크에서의 현장 근무는 정신없이 시작이 되었고 실제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과 사뭇 동떨어진 현장공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어 갔다. 공사명 이외에 아무것도 모르고 간 당시 현장은 주감독이 독일인들이었고 부감독들이 4~50대의 중국인들이었다.
당시 독일은 중국에서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부감독으로 중국 직원들을 두고 함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독일 감독들은 캠프 부지 내 각각 별채로 이루어진 빌라에서 거주하고 있었지만 중국 감독들은 길게 지어진 단층 숙소의 다소 협소한 일인실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와는 수교관계가 없었기에 ‘중공’이라고 부르며 사적으로는 접촉할 수가 없었던 중국인 감독들과 사상과 업무를 떠나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냈는데 나는 나이가 가장 어렸던 관계로 그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분들 이제 7~80대이겠지요.
중국 감독들은 휴가를 다녀올 때 당시 한국에서 인기가 있던 우황청심환 등을 가지고 와서 우리 한국 직원들과 거래를 하기도 했고 밤에 숙소로 우리를 불러서는 땅콩과 과자 등을 안주삼아 도수 높은 백주를 함께 나눠 마시기도 했다. 독일 감독들은 본사에서 6개월에 한 번 큰 나무박스에 맥주, 통조림, 소시지 등의 식품을 보내주어 개인 별로 지급하였기에 우리도 가끔 초대를 받아 별미를 맛보기도 했다.
독일 감독들과는 축구도 함께하였고 또한 바그다드 인근 브라질 시공사 직원들을 초청해서 발주처인 이라크 직원들과 함께 4개국 미니 월드컵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 부임 후 처음으로 월례 아침 조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뭉클하면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 매일 TV 시작하고 끝날 때 틀어주던 애국가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먼 나라 이라크에서 아침 조회 시간에 함께 부르는 애국가는 정말로 감동스러웠다.
우리 애국가와 함께 나오던 태국과 방글라데시의 국가는 지금도 멜로디를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물론 몇 번의 조회 이후 눈물은 말라버렸지만 그때의 그 감흥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