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첫 휴가와 기내 회상]

by Oldies but Goodies

당시에는 직원들 휴가가 1년에 한 번이었는데 내가 부임하고 얼마 있지 않아 8개월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첫 번째 휴가는 늦게 가야 다음번 휴가가 빨리 돌아온다는 대리, 과장님들의 조삼모사식 충고에도 불구하고 추석을 끼고 9월 초의 어느 날 휴가를 출발하게 되었다.


입사 동기들 몇 명과 함께 바그다드로 이동할 때 그 기분은 정말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다. 비행기 타기도 전부터 하늘로 붕붕 들떠 있었던 우리는 유치하게도 차 안에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합창하였고 바그다드에 있던 사무소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는 늦은 밤 바그다드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당시 정말로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출국수속을 위해 줄을 서있는데 이라크공항 직원들이 큰소리로 “USA” 하더니 미국인들을 맨 앞에 세우고 다음으로 “Japan” 하고는 일본인들을 세우고 세 번째로 “Korea”하면서 한국인들을 불러 세웠다.

그렇지만 뭐 세 번째면 어떠냐 우리는 휴가를 가는데 말이다.


뒤에서는 태국과 인도 그리고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이 꽁꽁 동여매 힘들게 싸가지고 온 가방을 열어 모든 짐을 탈탈 털어 보여주고 또다시 담느라 난리 법석이었다. (원래 한번 힘들게 욱여넣어 꽁꽁 싼 짐을 풀었다가 다시 가방에 담기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현지 공항직원들이 한국인들은 우대해 주는 편이어서 별 다른 짐 검사 없이 잘 통과시켜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더니 추석이라고 한복을 입은 여승무원들이 입구에 서서 우리를 맞아 주는 것이 아닌가? 한창 젊었던 우리 동기들은 모두 미친놈들처럼 히히거리며 좌석에 앉았고, 왜 알지 않는가? 대한항공을 타면 기내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Jim Reeves의 Welcome to My World!

물론 우리는 Anita Kerr Singers의 Version을 더 익숙하게 알고 있고 그 노래를 들으면 왠지 비행기 안에 있는 듯한 느낌과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다소 몽환적인 곡 말이다.


이런 풍문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노래를 만든 사람은 Jim Reeves인데 그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을 했고 1980년대 당시 대한항공 항공기의 사고가 있어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곡과 비행기 사고를 연관시키며 왜 그런 노래를 기내 대표 곡으로 쓰는지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한항공은 그 대표성을 가진 노래였던 ‘Welcome to My World’를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떠도는 소문이었지만 진실은 대한항공만이 알고 있겠다.


어쨌든 그 노래를 만끽하다가 이륙을 한 비행기가 어느 정도 고도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여승무원 한 명이 다가왔으니 우리 동기 중 한 명의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한 것이 1995년 8월이니 30년이 지났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면 제공받을 수 있었던, 그렇다고 모든 승객에게 주지는 않던 기내 선물을 (포커 카드, 당시 유행하던 가요와 팝송 테이프 등) 따로 챙겨 받았으며 아낌없는 기내 서비스도 또한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비행 일정이 너무 순조로우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당시에는 근로자분들 중 필수요원은 장기간 휴가 없이 근무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잠시 쉬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있었고 계약기간을 마치고 귀국하는 분들도 많았다. 몇 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다 보니 기내에서 음주를 즐기며 다소 과하게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기내 승무원들이 이를 진정시키느라 분주했지만 대부분 승객들이 같은 처지의 해외현장 근무자들이라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였고 그러다가 모두들 금세 잠이 들어서 자동적으로 조용해졌다. 아울러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일과성 해프닝이니 일반화하는 오류는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비행기 내부가 금연석과 흡연석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고 팔걸이에는 재떨이가 있었다. 격벽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흡연석에서 담배를 피우면 그대로 담배연기가 금연석에도 흘러왔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국제선 항공기에서 금연이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은 2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도 다른 외국 항공사의 구형 비행기를 탑승해 보면 당시에 사용하던 재떨이가 팔걸이에 남아 있기도 하다. 정말 그런 시절이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한국 상공을 날고 있었고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은 당시에는 지금처럼 숲이 울창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산림녹화를 추진하고는 있었으나 많은 산들이 아직 민둥산에 가까웠고 조림한 나무들도 미처 자라지 못해 황량한 산들을 내려다보며 김포공항에 착륙을 하였다.


출국 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휴가나 국내 복귀로 공항에 도착하면 부모님, 형제자매 심지어 고모나 이모들까지 공항으로 나오던 때였으니 공항이 부산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공항 로비에서는 한국에 올 때 사가지고 온 ‘딱분’이라고 부르던 파운데이션 (닫을 때 딱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년필, 담배 등을 나누어 드리느라 더욱 소란스러웠다. 소중한 분께는 드물게 소니 워크맨도 사다 드렸고 남성들에게는 주류를 여성들에게는 ‘딱분’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만년필이 최고의 선물이었겠다.


사실 다들 잘 알겠지만 휴가는 출발 당일과 한국에 도착하는 날이 최고로 좋았고, 눈감았다 뜨면 어느새 현장으로 복귀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휴가 때 무엇을 했었는지는 별로 기억에 없다. 그저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집에 필요한 물품도 사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정도를 샀던 것만 아스라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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