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표 쓰기 좋은 날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 사표 쓰기 좋은 날

‘사표 쓰기 딱, 좋은 날이네’


정하는 광화문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광화문 앞에는 오색찬란한 한복을 입고 휴대폰에 기록을 남기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관광객들 사이로 붉은색 전통 무예 의상을 입은 광화문 수문장이 보인다. 궁궐과 도성을 지키는 상징인 수문장의 얼굴에 위엄과 근엄함이 서린다. 그의 옆에 오색찬란한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이 땡볕에, 그늘 한점 없는 곳에서, 표정하나 없이 동상처럼 서 있는 수문장의 얼굴이 땀으로 번쩍번쩍 빛나자 정하는 그가 동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하는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종로 3가에 있는 토익학원을 마치고 광화문 삼거리까지 걷곤 했다. 광화문을 등지고 바라보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옆에 국내 굴지의 언론사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많은 언론사 중에서 내가 갈 곳 하나 없겠나, 언젠간 기자증을 찍고 저 건물을 바삐 오가는 기자가 될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 생각은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로 이뤄졌다.


정하는 힘 있게, 그러나 서두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걸었다. 정하의 옷장에는 요즘 유행이라는, 서른다섯 또래 직장인들이면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손바닥만 한 핸드백 하나 없었다. 지난 8년간 친구 결혼식을 갈 때도, 휴가를 갈 때도 늘 노트북을 데리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핸드백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대학 때부터 메던 백팩은 사건팀에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부를 출입하게 되면서 입기 시작한 정장에 영 안 어울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큰맘 먹고 백화점을 돌며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백팩을 멨다가 얇은 어깨끈이 노트북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을 때, 정하는 내 인생에 예쁨이란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다짐했다. 지금 그 백팩 가장 안쪽에 사직서가 담겨있다. 퇴사 기념으로 손바닥만 한 핸드백이나 하나 살까, 하다가 그럴 여유는 있을까, 당장 월세는 얼마나 감당할 수 있나 머릿속으로 계산하다 포기하고는 일단 결정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기억이란 건 한번 각인되면 가라앉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트리거가 생기면 5년 전 일도, 10년 전 일도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정하는 과거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수능 이후 한 번도 읽지도, 쓰지도 않았던 중국어 회화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생존본능이자 어쩌면 보호본능이었다. 그 이후로 살다가 잊고 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를 때면, 자신이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있는 상황이라고 거꾸로 인식하는 것이 습관이 생겼다. 정하는 회사 로비에 도착할 때까지 그 짧은 시간에 언론고시를 준비했던 9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흠칫, 놀랐다. 기자로 사는 동안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 중위권 4년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는데,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를 외치는 선배들을 만나 대학시절 내내 신나게 놀러 다녔다.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광화문 시위에 처음 나갔던 그날이 정하가 처음으로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경험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 하나 지나갈 틈 없이 네모 반듯하게 도열한 경찰차벽이었다. 이런 고급 운전스킬은 누구한테 배우는 건가 궁금했다.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광화문 삼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였다. 정권에 대한 부당함을 외치는 시민들이 모여있는데 이상하리만치 흥에 겨웠다. 민중가요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선배들, 어린 자녀를 목마에 태우고 들썩이는 가족, 그런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로 쏘는 물대포까지. 정하는 순식간에 바뀐 상황에 당황하면서 선배의 손에 이끌려 지하철역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그날 뛰던 심장의 속도를 수습기자 시절에 또 한 번 느낀 적이 있다. 당시에도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광화문으로 터져 나왔을 때였다. 노동자의 권리를 사수하겠다는 목적으로 신고한 집회는 점점 정권 퇴진 운동으로 향했다. 권력의 심장부의 거대한 비리 게이트의 서막을 알리듯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정하가 대학 때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갔던 시위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조금은 느슨해진 차벽을 사이에 두고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를 했고, 경찰이 도열하고 있는 쪽에서 취재하던 수습기자 정하는 머리 위로 무언가 날아오는 걸 목격했다. 정하는 받은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기자증을 걸고, 휴대전화 메신저로 선배에게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그때 한 경찰이 투명한 아크릴판으로 된 방패막을 머리 위로 올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기자님, 여기서 휴대폰 보고 계시면 위험해요”


정하는 그때 묘한 감정을 느꼈다. 기자님, 기자님, 기자님이라. 기자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신선함이었다. 두 번째는 기자이기에 이 현장에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공무집행에 방해가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서러움이었다. 세 번째는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유리구슬을 보며 저걸 정수리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정하는 도로 위에 떨어진 유리구슬과 화분파편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선배가 스케치 기사에 넣을 기사 몇 줄을 보내라고 했다. 정하는 유리구슬과 화분파편이 뒹구는 경찰대열 쪽 상황을 정리해서 보냈다.


'경찰차벽 너머로 유리구슬과 화분파편이 날아왔다. 분노한 시민들의 함성소리가 담긴.'


그러나 선배가 정하의 바이라인과 함께 쓴 기사에는 이렇게 담겼다.


'시위대들은 경찰을 향해 유리구슬과 깨진 화분을 던졌다. 경찰들은 방패로 막았다.'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유리구슬과 화분파편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했다. 다만 그 유리구슬과 화분파편에 담긴 시민들의 분노와 경멸, 모멸감에 대해서 기사에 담을 수는 없다. 저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른 기사로 보였다. 정하는 그날 선배한테 기사에 감정이나 해석은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을 받았다.


정하는 회사 로비에서 출입증을 찍으며 그날의 광화문들을 떠올렸다. 2년여의 사회부 출입 후 정치부 출입을 하게 되면서, 왜 그렇게 경찰들이 도열해서 시위대를 막았는지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여당이었다가 야당이 된, 그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국회의원과 저녁자리에서였다.


“광화문 집회소리, 관저에까지 다 들려. 정말 생생하게 들려. 그분은 밤에 잠을 못 잤대. 그 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맴돌아서.”


노동권 보장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국민들의 손으로 뽑힌 최고 권력자에게 퇴진하라는 함성은 말 그대로 우레와 같다고 했다.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어쩌면 가장 두려운 공포의 소리일 것이라고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를 상징하는 푸른 기와는 상당한 거리로 동떨어져 보여 이 함성이 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리의 힘은 생각보다 위대했다. 많은 사람의 소리는 무언가를 바꿀 힘을 갖고 있다. 정하는 자신이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힘을 갖기 위해서였다는 걸 생각해 냈다. 막상 경험해 보니 그 힘은, 써야 할 기사를 쓰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는 걸, 사표 쓰기 직전에야 깨닫고는 씁쓸해졌다.


정하를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한 건 큰 굉음과 함께 바로 옆을 지나친 바이크 한 대였다. 정하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근엄한 오피스 건물이 즐비한 광화문에 묵직한 이 근방 분위기와는 이질적이었다.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대한일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언론사에 택배기사가 수시로 드나들긴 하지만, 어쩐지 택배기사의 분위기가 묘했다. 정하는 급송택배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오토바이를 지나쳐 대한일보 건물로 들어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