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록자 1부
정하는 곧장 대한일보 7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왼쪽은 편집국장방과 바로 옆에는 데스크회의실이 있다. 데스크회의실 문에는 ‘모든 것은 여기서 끝낸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땐 치열한 언론 현장을 나타내는 문장인 것 같아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오늘 사표를 쓰려는 정하에게 저 문장은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대한일보가 다루면 기사이고, 대한일보가 다루면 여론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정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오른쪽 편집국 사무실로 향했다. 가장 안쪽에 정치부장이 두 다리를 쭈욱 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시간에 취재기자가 편집국 사무실에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에, 다른 부장들이 정하를 흘끔흘끔 보았다. 정하는 이리저리 굴러 여기저기 해진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매고 사표를 꺼내 정치부장 책상에 올려두었다.
“마지막이니까. 이유는 좀 들어야겠습니다. 도대체 왜 기사가 삭제된 겁니까?”
흘끔흘끔 보던 다른 부장들이 재밌는 구경이라도 난 듯이 이제 대놓고 보기 시작했다. 정치부장은 휴대폰을 정하의 사표 옆에 두고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김복동 의원이 너 고발했다고 보복기사 쓴 거잖아”
“기사 내용 중에 틀린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너, 대체 무슨 의도야. 민국당에서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았어? 그게 대한당 출입이 쓸 기사냐고.”
정하는 얼마 전 취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건팀에 있을 때부터 친했던 강력계 막내형사는 정하와 같이 연차가 들어 팀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근 김 의원이 사석에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비서관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아 기사를 썼다. 기사가 나가고 이튿날, 사건을 제보했던 비서관은 ‘기자님,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 김 의원은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며 정하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보통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사나 책임자인 부장을 고발하곤 하는데, 김 의원은 일개 평기자인 정하를 콕 집어 고발했다. 이 사건은 여의도에 꽤나 화제가 됐고, ‘받글’로 여의도 일대를 한 바퀴 돌아 강력계 형사에게까지 흘러갔다. 형사는 휴대전화 자동녹음기능부터 끄라고 했다. 그리고는 힘에는 힘으로 받아치는 거라며, 소스를 던졌다. 김 의원의 아들이 마약복용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경찰 조사 당일 경찰서장과 근처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는 것.
단 한 줄의 소스였기에, 정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꼼꼼하게 취재했다. 김 의원이 서장과 식사했다는 일식집 사장의 확인과 영수증까지 받아낸 뒤, 김 의원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나 전화는 받지 않았다. 기사와 관련된 일이니 꼭 연락을 달라고 문자를 남겼다. 하루를 기다렸으나 ‘읽음’ 표시 후 답장은 없었다.
다음날 정하는 발제를 하고 김 의원에게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다. 마감시간 30분을 앞두고 ‘김복동 의원 아들 마약 복용 혐의 경찰 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완성한 뒤, 직전까지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기사 마지막에 ‘해당 의혹에 대해 입장을 듣기 위해 김 의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넣어 기사를 넘겼다. 팀장이 온라인 기사를 데스킹 하고 송고했다. 이제 부장이 지면기사 데스크를 볼 차례다. 후배들은 정하에게 그동안 김 의원이 기자들을 무시하는 거 참아왔는데 너무 통쾌하다고 한 마디씩 건넸다. 그 사이에 팀장의 전화가 울렸다. 조용해진 국회 부스 안에서 부장의 고함은 휴대폰 스피커를 뚫고 정확하게 팀원들의 귀에 꽂혔다.
“기사 빨리 삭제하고 지면에 들어갈 다른 기사 5분 내로 찾아와!”
기사는 그렇게 송고된 지 단 1분 20초 만에 삭제됐고, 정하의 단독 기사가 들어갈 자리에는 김 의원이 국내 굴지의 세운전자 대표 박태준과 MOU 체결 협약식에서 악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단신 기사가 들어가 있었다.
정하는 정치부장의 책상 위에 던진 자신의 사직서 옆에 경쟁사인 민국일보 지면을 펼쳤다. 정치부장의 얼굴은 이제 시뻘게져서 곧 터질 것처럼 보였다. 이제 편집국의 모든 데스크들이 대놓고 정치부장과 정하를 보고 있었다.
“부장이 기사 킬 시키는 동안 민국일보에서는 기사를 써서, 예쁘게 사진까지 박아서, 밤새 윤전기가 돌아가서, 1면에 실려서, 전국에 배달이 됐어요”
“대한당에서 민국당이 민국일보랑 짜고 여당 원내대표를 공격하려 한다고 강경대응 입장까지 내놨어. 우리가 기사 냈다고 생각해 봐, 대한당에서 얼마나 난감하겠어?”
“글쎄 대한당이 난감한걸 왜 우리가 고려해야 하냐고요!”
정하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섰다. 그때 편집국에 인사를 돌기 위해 들어온 앳된 무리들이 잔뜩 긴장한 채 정하와 정치부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면접 때나 입는 검은색 칼정장에 이름표를 붙인 걸 보면, 수습기자들이었다. 수습기자들은 입사 후 2주 동안 사내교육을 받기 때문에 지난주부터 편집국으로 출근했다. 갑자기 벌어진 광경에 잔뜩 놀라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전국부장이 수습기자들을 편집국 회의실로 안내했다.
“자자, 저건 싸우는 게 아니라 이견을 조정하는 중인 거야.”
전국부장은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정하를 보며 그 혈기왕성함이 기특해서 피식, 웃었다. 반면 정하는 화가 나는 것을 넘어 절망감을 느꼈다. 무슨 의도냐니. 부당한 지시에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는데, 거기다 대놓고 자신을 사적인 감정으로 보복이나 하는 기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도 못하고 악을 바락바락 쓰는 부장을 보며, 이건 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난 8년 동안 취재원 만들겠다고 밤낮없이 먹은 술과 발버둥 치는 간, 주말도 없이 취재처를 돌아다녔던 두 다리의 고난의 시간들이 무색해졌다. 정하는 퓨즈가 나감과 동시에 무언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부장이랑 맨날 술 먹는 국회의원이라 막은 거 아니에요?”
정치부장은 모래를 한 움큼 집어삼킨 듯 대꾸하지 못했다. 그때 편집국 내 종이 울렸다. 팔짱 끼고 구경하던 다른 부장들이 움직였다. 정하는 사표 쓰는데 정신이 팔려 오늘 기자협회 총회가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치부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정하는 한숨을 내쉬며 4층 대회의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과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 갔다 와?”
"편집국에."
"왜? 기협총회는 여기서 하는데?"
“오늘인 것 같아. 기자짓 끝내는 날.”
동기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편집국장이 단상에 섰다. 웅성거리던 강당은 이내 잠잠해졌다. 1년 차 기자들의 노트북 타자소리만이 요란했다. 출입처 브리핑 때 워딩 하는 것처럼, 회사 회의도 워딩을 해서 회의가 끝나면 전체 공유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자 아니랄까 봐.
편집국장은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언뜻 보면 출마선언하는 정치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홀로 비장하게 서 있는 편집국장이 홀로 동떨어져 보이면서 이질적이었다.
“대한민국 여론을 선도하는 우리 대한일보는 90년간 살아있는 역사이자 1등 언론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우리는 정론직필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여러분들은 대한일보 기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오늘 대한일보에 새 역사를 함께 써갈 수습기자들이 모였습니다.”
정하는 편집국 회의실 앞에 붙어있는 ‘모든 것은 여기서 끝낸다’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국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배척했다. 여론을 언론이 만든다는 생각이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은 여론을 따라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뿐이다. 살아있는 역사? 언론은 살아있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일 뿐,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특히 정론직필을 말하는 부분에서 정하는 코웃음을 참지 못했다. 날카로운 펜도 돌멩이에 갈아서 무디게 만드는 회사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정하는 속이 울렁거림을 느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어제 먹은 소주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 공간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제 대한일보는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위해 또 한 번 도약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후보 자질 검증을 하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탈피해 명실상부한 킹메이커 언론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정하가 다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4층 대회의실 문이 열렸다. 웬 가죽바지를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바이크 헬멧을 벗었다. 누구지, 어디서 본듯한 사람인데. 국장이 이 와중에 배달음식을 시켰나. 그때 가죽바지의 한 마디가 대회의실 공기를 가로질렀다. 정하는 저 외침을 대학생 때, 수습기자 때 광화문에서 들어본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죽었습니다!”
막내 기자들의 타자 소리가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