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이지 않는 선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탁진은 귀국하는 비행기 창가에 앉아 발아래 구름을 내려다봤다. 홍콩에서의 지난 3년은 짧은 만큼 강렬했다. 탁진은 대한일보를 떠났을 때 업계가 들썩였던 것도 몰랐고, 직전까지 머물렀던 외신을 떠날 때 국장이 뒷목을 잡았다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며칠 집에서 꼬박 잠을 자고, 다시 채비를 해서, 산티아고로 떠날 요량이었다. 그 이후는 아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뭐든, 가고 나면 방법이 생길 터다. 처음 홍콩에 왔을 때처럼.


탁진이 홍콩에 아시아 지사를 둔 이 회사를 선택한 건 국내 최고언론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대한일보에 더 이상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신이라면 자유롭게 취재하고 자신 있게 보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탁진은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고, 가장 빨리 절차가 진행된 곳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어떻게 짐을 꾸렸는지, 어떻게 공항까지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이후의 기억은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탁진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가, 공항 한가운데 앉아 40분 동안 꼼짝도 못 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했다. 그러다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험난한 기자교육을 시키기로 유명한 대한일보에서 8년이나 버텼으면, 못할 건 없었다.


탁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려두고, 수습의 마음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나갔다. 불같은 성격도 잘 감추었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관련된 기사는 조회수가 늘 상위권에 랭크됐다. 그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에 관심이 높았다. 회사에서는 한국에 대한 기사를 쓰길 원했고, 탁진은 홍콩에서 한국에 대한 기사를 썼다. 한국에서는 소속된 부서의 내용만 기사를 써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광범위한 분야의 기사도 모두 쓸 수 있었다. 탁진은 그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지난 10년간 쌓아왔던 취재원들은 홍콩에서도 좋은 소스가 됐다.


홍콩에서 지낸 지 3년을 코 앞둔 되던 어느 날, 18세 소녀 사망사건이 발생해 전역이 떠들썩했다. 편집국장은 탁진을 불러 사망사건의 전담취재팀의 팀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전담취재팀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회사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알았다. 워낙 국민적인 공분이 일었기에 관련된 기사만 쓰면 조회수가 치솟았다. 탁진은 국장의 속내를 알면서도 별다른 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의도가 불순해도 제대로 취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애써 눌러놓았던 사명감이 살아났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탁진은 전담취재팀 팀장을 맡아 5명의 팀원과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취재를 시작했다. 팀구성은 꽤 괜찮았다. 시위대를 취재한 후배는 소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이 있었다는 것을 본 목격자를 찾아냈고, 진술을 확보해 왔다. 경찰을 취재한 후배는 그날 대열을 이탈한 대원은 없었다는 반론권을 받아냈다. 유가족을 취재한 후배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성실하게 자란 내 딸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고 울부짖는 모친의 애타는 심정을 기사에 녹여냈다. 취재가 모일수록, 탁진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오랫동안 안갯속을 걷다가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었다. 취재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탁진이 움직였다. 기사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일이자, 기사가 나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 당국의 확인이었다.


탁진은 허름한 단빙가게에 신문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매일 오전 7시, 치즈가 들어간 단빙 2개와 따뜻한 나이차 한 잔. 같은 시간 같은 메뉴로 그의 하루 중 유일하게 고정된 시간을 일 년 넘게 보내자, 사장님도 “어이, 탁”이라고 인사할 정도로 친분이 쌓였다. 큰 덩치에 턱수염 더부룩한 중년의 사장님은 말수는 없지만 단빙 실력 하나는 최고였다. 그가 왕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얼굴에 굵은 잔주름이며 민첩함이며 쓸데없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런 역량이 필요한 일을 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탁진은 3분 만에 단빙을 흡입하고 나이차를 두어 모금 마신 뒤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탁자에 두었다. 사장은 말없이 거스름돈을 건넸고, 탁진은 그것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탁진은 현금 뭉치 속에 섞인 쪽지를 확인했다.


'yse, you are.'


탁진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었다. 좁디좁은 골목, 높게 뻗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이 비집고 들어섰다. 마침내 시위대를 진압하던 경찰 중에 공안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날 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탁진은 나직하게 울리는 비트 소리의 공간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한구석에서 취기가 잔뜩 오른 팀원들이 반겼다. 술을 전혀 하지 않는 탁진이지만 팀원들의 권유에 칵테일 한 잔을 손에 쥐고, 답답한 공기를 피해 테라스로 향했다. 홍콩의 야경이란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뛰어다녔다. 그런 고생쯤은 결과만 나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팀원들도 테라스로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다는 경찰 취재를 하던 후배만 아직인 것 같았다. 국장의 데스킹만 거치면, 내일 아침 홍콩을 넘어 전체 민주진영 국가들을 뒤흔들 기사가 탄생할 것이었다. 오늘과 내일은 분명 다른 날이 될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 예상 못 했거든.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제목 달아서, 기사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어. 조회수 포상으로 여행 갈 계획 짜고 있었어.”

“고생하게 해서 미안해.”

“가성비는 떨어지는 일이 분명해. 그런데, 나 좀 재미있었어. 설레고, 흥분되고. 이런 감정 정말 오랜만이야. 탁 덕분이야”


모두가 흥에 겨워 취하던 때, 탁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편집국장이었다. 귀를 때리는 스피커를 피해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탁진은 처음엔 노랫소리 때문에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대체 왜 기사가 못 나간다는 거죠? 이 사건 취재를 지시한 건 국장이었습니다. 저흰 지시를 따랐고, 감춰진 진실을 찾았다고요!”

“제임스가 붙잡혔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경찰 취재 갔다가 온다는 후배였다. 탁진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잡아갔다는 겁니까? 왜 잡아갔다는 겁니까?”

“탁진, 자넨 정의롭고 열정적이고 실력도 있어. 그런데 너무 위험해. 세상엔 보이지 않는 선이라는 게 있다고”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신나 있는 팀원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탁진은 휴대전화를 떨궜다.


기사는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했고, 후배는 사흘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탁진은 자세한 내용을 물을 수 없었고, 후배도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제임스의 얼굴 여기저기에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는 것. 구타의 흔적이었다. 탁진은 이것이야말로 기사감이라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언론사를 협박하고 기자를 구타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임스가 출근한 이후 자신을 대하는 팀원들의 불편해하는 태도를 보고, 탁진은 이내 마음을 접었다. 팀원들은 익숙한 듯 조회수 높이는 기사를 쓰고, 정시에 퇴근을 했다.


그날 탁진은 생애 두 번째 사표를 썼다. 홍콩에 올 때 짐이 워낙 간소했던 터라 정리하는데도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탁진은, 그저 자신이 무얼 잘못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홍콩에서의 지난 3년여 남짓한 시간 동안 오히려 물음표만 늘어갔다. 제발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괴롭혀가며 답을 찾던 탁진은 마침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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