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설의 미친개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검은색 비니를 푹 눌러쓰고 야상을 걸친 탁진은 카트를 끌고 터덜터덜 출국장을 나섰다.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해 몸은 무거웠지만, 머리는 가벼웠다. 무심코 환영객들을 보고 있는데, 이상한 팻말이 보였다.


‘축 환영, 미친개의 귀환’


저 오그라드는 문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당황스러운 탁진의 표정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보고 있는 사람은 탁진이 아버지처럼, 스승처럼 따랐던 대한일보 사회부장이었다.


탁진이 대한일보를 떠난 지난 3년 사이에 부장의 흰머리는 염색을 감출 수 없이 늘었고, 얼굴의 주름은 더 축 쳐져있었다. 탁진은 특히 그의 안색이 거슬렸는데, 거무죽죽한 피부색, 붉게 충혈된 눈, 앞으로 툭 튀어나온 목, 불룩 튀어나온 배. 쉬흔이 넘어 부장 직함을 달고 있는, 기자‘였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외형이다.


기자가 아니라 과거형으로 부르는 이유는, 탁진은 이들이 더 이상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라고 정의 내렸기 때문이다. 부장을 '데스크'라고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책상에 앉아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현장을 구른 기자들은 부장이 되고나서부터 현장을 취재하지 않는다. 후배들의 보고를 받고, 취재를 지시하고, 보강할 부분을 지시하고, 신문을 만드는 편집과 책임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언론사에서 보직을 맡으면 언론노조를 탈퇴해야 한다. 그 말인 즉, 그들은 ‘사측’이라는 뜻이다. 언론사 부장의 역할은 ‘한때 기자였던 기사 편집자이자 회사 간부’가 가장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얼굴이 그게 뭐예요. 말 안 듣는 후배 놈이 사라졌으면 맘 놓고 회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탁진은 부장의 눈을 애써 피하며 툴툴거렸다. 부장은 얼굴을 거칠게 쓱쓱 문지르다가, 자신을 보는 탁진의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냉큼 쏘아붙였다.


“사돈 남 말하네. 이제 알겠냐? 다 똑같다는 거. 외신이라고 뭐가 달라?”


탁진은 답답한 듯 비니를 벗어던지고는 말없이 아이스아메리카노만 쭉쭉 빨아댔다.


“그만하면 할 만치 했어. 돌아와.”


탁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돌아갈 생각이었으면, 떠나지도 않았을 거다. 탁진은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끝끝내 따라다녀 괴롭혀왔던 대한일보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또다시 마주해야 했다. 권력형 비리 고발 기사가 윗선에 의해 좌절된 날, 동시에 좋은 기자 동료이자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여자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했다. 탁진은 그날 밤, ABC 방송 메인 뉴스에서 자신감 넘치게 리포트를 하던 유미의 얼굴이 떠올라 표정이 일그러졌다. 탁진은 떠오르는 기억을 흐트러트리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가장 따르는 선배가 나한테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간에게서 혐오감을 느꼈다.


“선배가 그런 말 하는 거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훤히 보이네.”


부장은 탁진에게서 오랜만에 ‘선배’라는 말을 듣고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탁진이 사건팀 막내였을 때는 자신은 바이스로, 탁진이 1진이었을 때는 자신은 캡으로 도합 3년을 합을 맞췄다. 탁진은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언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 선배에게서 배웠다. 어떻게 하면 선배처럼 이달의 기자상을 받을 수 있는지 비법 좀 알려달라는 탁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상 받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선배였다. 탁진은 빨리 연차가 쌓여서 이 추상같은 선배처럼 멋진 기자가 되고 싶었다. 사건이 터지면, 취재가 필요하면 회사가 가장 먼저 찾는 기자. 탁진은 자신이 바이스가 되고 캡이 되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부딪히면서 깨닫고는 선배가 더 좋아졌다. 자신은 늘 따라가고 싶었지만, 미처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네가 하고 싶어 했던 건 해보고 그만둬야지. 나도, 마찬가지고.”

“특별취재팀 말씀하시는 거예요? 대한일보가, 그 가성비 없는 팀을 만든다고?”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 탁진의 고질병은, 그의 감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기 때문에 생긴 확신 같은 것이었다. 기자가 기사 쓰는 방법을, 취재의 정도를 배우고 나면, 그 이후는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가 커나가게 된다. 그때 만들어지는,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고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제3의 요소가 이 ‘감’이다. 탁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고 있는 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뭐든 쉽게 믿지 않는 거 알겠는데, 팀장은 그러면 안 돼. 기본은 팀원에 대한 믿음이야.”

“사회부 밑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선배가 부장이면, 생각은 해볼게요.”

“아니, 어느 부서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부서야. 네가 팀장이자, 부장인거지.”

“이거 봐. 그런 팀이 언론사에 어디 있어요. 그것도 대한일보에서? 절대 불가능해.”

“가능하게 만들었어. 내가 사직서를 걸었거든.”


탁진은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직서를 걸었다는 말에서, 그간 무슨 과정을 걸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언론을 홍보지로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본 떼를 보여줘. 난 못했지만, 넌 할 수 있어.”


탁진은 말없이 사회부장을 봤다. 매섭고 날카롭게 사회를 꿰뚫던 선배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아 왜 낼모레 죽을 사람처럼 그러고 있냐고 왜! 해내면 될 거 아니에요”

“나 사회부장 아니야. 전국부장 된 지 1년이 넘었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보이지 않는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