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죽었습니다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탁진은 캐리어를 방 한가운데 내팽개치고는 헬멧부터 찾았다. 도심을 달리는 동안에도 탁진은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시 대한일보로 복귀하는 것은 탁진의 시나리오에 전혀 없는 일이었다. 사회부장, 아니 전국부장의 힘 빠진 얼굴이 짠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익숙하게 광화문에 도착했다. 탁진은 대한일보 간판을 보며 다짐했다. 절대 전처럼 힘없이 당하지만은 않겠다. 자신처럼 힘없이 당하는 후배를 만들지 않겠다. 3년 전 분노에만 가득했던 김탁진은 한층 더 농염해졌다.


4층 복도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왔다. 탁진이 대한일보를 그만두었을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3년 전 탁진의 대한당 대선후보 고발기사를 막았던 바로 그 장본인, 편집국장이었다. 아무리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가 싶어 기가 찼다. 부조리함은 여름날 불쾌한 습기와 같아서 없애지 않으면 곰팡이로 자라나 사회악이 되고야 만다.


강당 문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국장의 말을 유심히 듣던 탁진은 대한일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탄생시킨 킹메이커로 거듭났다는 말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킹메이커가 되기 위해서 그가 어떤 짓을 했는가. 후배 기자가 밤낮으로 뻗치고 고생해서 쓴 단독 기사를 막았다. 데스크는 그저 기사 하나를 막았을 뿐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한 기자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것이 고작 국장 자리였다. 마침내, 탁진이 강당 문을 열어젖혔다.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죽었습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편집국장이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모든 기자가 뒤를 돌아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선배 아냐?”

“누구?”

“맞네. 그 전설의 미친개.”


전설의 미친개라면 정하도 익히 알고 있었다. 사회부를 출입할 때 명함을 건네면 동료기자도, 취재원도 저마다 가장 먼저 김탁진 기자에 대해서 말을 꺼내곤 했다. 정하가 검찰출입을 막 시작했을 때 ‘대한일보 김탁진 기자가 사표를 냈다’는 받글이 돈 적이 있다. 정하의 전화는 받지도 않던 중앙지검 3차장이 정하를 방으로 불러 정말로 김탁진 기자가 사표를 쓴 게 맞느냐고 물어볼 정도였기 때문에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당시 중앙지검 3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3년 전인가, 국회의원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수사할 때였는데, 피의자로 소환된 그 의원이 담당 부장검사한테 처음으로 한 말이 뭐였는지 알아? 제발 수사내용 좀 비밀로 해달라고, 김탁진 전화 좀 안 받게 해 달라였어.”


어딜 가도 김탁진, 김탁진 했지만 막상 정하가 탁진과 같은 부서였던 적은 수습 때 딱 한 번이었다. 그것도 수습은 얼굴도 잘 보지 못한다는 캡으로 만났기에, 직접 지시를 받거나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다. 다만 1진 선배들이 탁진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한 사람에게서 두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대한일보 공채로 입사해 사회부, 산업부, 정치부까지 엘리트코스만 밟아온 기자라 승승장구할 거라고 했고, 그 선배랑 만나게 되면 혹독하지만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정하는 언젠가는 같이 일해볼 수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대한일보를 떠나면서 같은 부서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정하가 기억하는 탁진이 사표를 썼던 그날은 오후 데스크 회의가 취소된 날이었다. 대한일보 9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선배들은 그 전설의 미친개의 퇴사 사유에 대해 취재에 나섰지만, 이유를 정확히 알아낸 기자는 없었다. 정치부장과 삿대질하며 싸웠고, 탁진이 아버지같이 따르던 사회부장이 중재해도 소용없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기자들의 동요에 편집국장이 기자협회장을 통해 전한 내용은 이러했다.


“사직서에 적은 퇴사사유는 단 한 줄이었다.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죽었다’”


그랬던 전설의 미친개가 돌아왔다. 정하는 아까 헬멧을 쓰고 ‘대한일보’ 간판을 빤히 쳐다보던 남자를 떠올렸다. 누가 그를 기자라고 보겠나. 라이더재킷에, 발목을 드러낸 슬랙스에, 에나멜 로퍼까지. 보수적인 대한일보와는 1도 연관성이 없어 보였는데, 심지어 잘 어울렸다. 여자 꽤나 울리고 다녔겠다는 생각을 하던 정하는 탁진과 눈이 마주쳐 시선을 돌렸다.


“언론은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대선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는 곳입니다. 대한일보는 언론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대한일보가 만든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 드러나면,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언론은 어떻게 책임을 질겁니까?”


탁진의 한마디가 장내를 단순에 휘감았다. 편집국장은 헛기침을 했다. 정하는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그 순간 자신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이 다 꺼벙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상 정의롭게 펜으로 칼을 휘젓는 수많은 기자들이 정작 회사 내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았다.


“요즘 신문 누가 봅니까. 인터넷 기사도 아니고, 이제 유튜브 방송을 믿습니다. 언론의 신뢰는 누가 무너뜨렸습니까. 검증이 아닌 킹메이커 노릇을 자처해서, 정치권력에 빌붙여 정치권으로 나가고, 기업 권력에 빌붙어 대기업 홍보팀으로 가는 선배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꿍꿍이를 가진 사람들이 쓰는 기사를 누가 믿습니까. 의도를 가진 기사를 누가 믿습니까. 그래놓고 정론직필이라고 말하면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데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동의하지는 않았다. 기자들은 그저 멍하니, 편집국장의 표정만 살필 뿐이었다. 정하는 이 모든 기자들이 단체로 가스라이팅 상태라고 생각했다. 편집국장은 마침내 마이크를 다잡았다.


“여러분께 소개드립니다. 오늘부터 신설되는 특별취재팀에 김탁진 팀장입니다.”


장내가 더욱 술렁였다. 90년 대한일보 역사상 특별취재팀은 처음이었다.




기자협회 총회가 끝나고 강당에서 쏟아져 나온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렸다. 정하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정보방에 ‘받글’이 올라왔다.


[받]

전설의 미친개, 대한일보 김탁진 기자 복귀


“이게 받글까지 돌 일이야?”

“업계에선 뉴스이긴 하지. 오전에 나 출입하는 기업 홍보팀에서도 전화 왔었어. 김탁진 온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스타일 좋은 거 보니 여자들은 좋아하겠네.”

“어머, 우리 모태솔로 최정하 마음에 불이 붙나요.”

“뭐래”

“실제로 고백하는 여자들이 줄지었었다고 하대. 취재원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여럿이었고. 유통 쪽 회사 재벌 3세도 고백했다가 차여서 한동안 식음을 전폐했다던데.”

“그 정도라고? 너무 과장 아니야?”

“근데, 너무 냉정하게 차여서 다들 상처받았다고 하더라. 김탁진한테 상처받은 여자들 모임도 있다던데.”

“뭐지? 무성애자인가. 아니면 게이? 그것도 아니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남?”

“셋 다 가능성이 있지. 저 선배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ABC 앵커였다고 하던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대한일보를 벌떼처럼 쑤셔놓고 정작 탁진은 평온하게 편집국장방에 들어섰다. 국장은 광화문 전경이 보이는 창문을 보고 뒷짐을 지다가 뒤돌아서 탁진을 보았다. 국장이 탁진의 기사를 막은 덕분인지 알 수는 없으나, 당시 그 문제의 대선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동시에 정치부장은 국장으로 승진했다.


“어서 와, 전설의 귀환이라고 여기저기서 전화 많이 왔다.

“정부 지원금은 더 많아졌어요? 그렇게까지 했으면 세배는 늘었어야 할 텐데.”


탁진은 순수하게 궁금했다. 한 기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리고 얻은 것이 단순히 돈은 아니었으면 했다.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얻은 것이 단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지막 바람이 있었다.


“지원금은 문제가 아니야. 홍콩에서 우리 기사 좀 봤으면 알 텐데. 대한일보는 국정을 운영하는 동반자다. 청와대의 모든 결정에 우리가 관여하지 않는 게 없어. 우리가 쓰는 인사 단독기사로 여론을 살피고, 우리가 쓰는 하마평 기사 인물 중에서 내각이 탄생해. 우리가 쓰면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따라 쓰지. 우리가 쓰는 기사로 안보 정책방향을 세우고, 우리 사설에 실리는 쓴소리로 VIP의 국정운영 방향이 바뀐다. 이게 힘이야.

“단독 기사 하나 막아서 VIP를 움직일 힘을 얻었다면, 할 만하겠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다. 난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거야. 이걸로 그때 일은 끝난 거야. 구성원들 앞에서 국장 망신 줬으니, 이제 너한테 부채감은 없어.”


탁진은 알고 있었다. 국장은 연임을 한 번 했고, 이제 임기가 1년 남았다. 국장의 다음 목적은 사장자리거나 청와대였다. 그러기 위해선 대한일보 사주의 눈밖에 나서는 안되고, 정치나 기업의 뒷배가 필요했다. 국장은 대외적인 성과와 자신이 대한일보에서 쌓은 인맥을 뒷배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특별취재팀은 국장의 승진을 위한 사리사욕이 만든 결과물이고, 꼴 보기 싫어도 어쨌든 성과를 낼 수 있는 탁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국장이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경험이란 건 기자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힘이다. 연차가 많은 선배라도, 경험 많은 후배에게 실력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기자들의 세계다. 탁진은 언론을 자신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은 언론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특별취재팀을 통해 진짜 저널리즘을 보여주겠다고. 어떠한 타협에도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성실하게 취재하는 기자들과 함께.


“그래, 부장직은 싫다고? 니 연차에 부장은 언론 역사에 처음일 텐데.”


편집국장이 소파에 껄렁하게 앉은 탁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탁진은 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편집국장이 알겠다며 그를 다시 주저앉혔다.


“조건은 세 개예요. 팀운영은 전적으로 팀장이 합니다. 취재처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로 취재를 합니다. 하루에 하나씩 발제는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저희가 발제하면 면 하나를 통으로 주세요.”


편집국장은 웬일인지 이 모든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자신도 조건을 걸었다.


“내 조건은 하나야. 팀원은 김 팀장 포함해서 세 명이고, 그중에 한 명은 이번에 들어온 수습기자로 배정했어.”


탁진은 께름칙했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의 이익을 기가 막히게 계산하는 뱀 같은 국장이 그냥 시키는 일은 없다. 수습기자 녀석은 기자 자격이 없다면 가차 없이 던지면 된다. 그때 우당탕탕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정하가 편집국장방을 박차고 들어왔다. 정치부장이 헐레벌떡 뒤따라 들어왔다. 정하는 백팩에서 사직서를 꺼내 편집국장 책상에 척, 하고 올려놨다. 정치부장이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 질렀다. 정하는 흔들림이 없었다. 편집국장 방을 나오며 정하는 방금 헬맷을 만지작 거리는 미친개의 입가에 비웃는듯한 웃음을 본 건지 헷갈려했다. 정하가 나간 문을 보면서 탁진이 국장에게 말했다.


나머지 한 명은 쟤 줘요.

최정하? 의외네. 김탁진이 선택한 기자라니. 근데 쟤, 쉽지 않아. 고집이 고집이 말도 못 해.”

요즘 애들 같지 않게 파이팅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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