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록자 1부
경찰서 숙식을 하는 수습기간 동안 한숨 돌리는 기간이 있다. 2주간의 언론진흥재단 교육기간이다. 긴장되기도, 피곤하기도 했던 사내교육도 오늘로 끝이었다. 내일 언론진흥재단 교육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일정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간다고 들떠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성민은 조용히 하품을 삼켰다.
교육 과정 중에서도 경찰서 숙식 훈련은 계속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경찰서 기자실에서 자면서 밤낮으로 취재하는 수습 교육의 방식이다. 서민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관할에 있는 경찰서 세 곳의 당직과를 찾아 사건이 있는지 물었고, 문전박대당했고, 파출소에 가서 주취자들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보고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밤 12시가 넘었고, 원룸 한 칸 정도의 말진 기자실에 들어가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언론사의 수습기자들을 밀치고 들어가 웅크리고 누워야 했다. 언제 청소했을지 모를, 누군가가 남기고 간 시금털털한 냄새들이 몸에 베일 새도 없이 4시 반에 알람소리에 일어나 눈곱만 떼고 또 밤새 들어온 사건이 있는지 경찰서를 돌았다. 1진에게 특이사항 없다고 보고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경찰서는 다 없어져야겠네.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특이사항이 아무것도 없으면, 세금 아까워서 어떻게 해?"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혼난 적은 처음이었다. 잠은 못 자는 것도 괴로웠지만, 가장 괴로운 건 제대로 씻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2~3시간 자는데 샤워는 사치였다. 부모님이 정해준 루트대로 공부해서, 해외에서 대학을 가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도련님’ 성민은 온몸이 근질거려 계속해서 몸을 비벼대야 하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건가 매 순간 의문이었다. 정말 이렇게 해야만 기자가 될 수 있는 건가 궁금했다.
오전 9시가 되자 수습기자들이 모여있는 대한일보 회의실로 누군가 들어왔다. 어제 그 헬멧 쓰고 강당에서 소리치던 사람이었다. 수습기자들은 잔뜩 얼어 입을 다물고 탁진을 보았다. 성민은 졸린 눈을 간신히 반쯤 떴다.
“기자는 뭐 하는 사람이야?”
탁진이 다짜고짜 어리바리한 눈망울들에 물었다. 잔뜩 언 병아리들 중에서 감히 먼저 말을 꺼내는 용기는 없었다.
“대답을 해야지?”
그제야 웅얼거리듯 취재하는 사람, 사회를 바꾸는 사람, 불의를 고발하는 사람 등등 답이 나왔다. 탁진은 반은 수면상태인 성민에게 너는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성민은 느릿느릿한 말투로,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탁진이 물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병풍도 해상에서 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30분 만에 사고 관련 첫 보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구조 상황이 중요했던 상황에서 당국은 “수학여행 간 고등학교의 한 반 인원 전체가 구조됐다”라고 말했다. 자, 너희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느냐.
누군가 “당당하게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보도를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탁진이 물었다. 그건 이 말이 사실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희대의 오보가 됐다는 것을 너희가 아니까 하는 말이고. 당장 속보를 해야 하고, 위에서는 어떻게 됐는지 확인됐느냐고 전화가 쉴 새 없이 오고, 지면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래 너희가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하자, 그럼 바로 보도를 할 수 있겠느냐. 니들 선배들은 너희의 보고를 받고 바로 책임 있는 당국에 확인을 했을 것이다. 그럼 결국 당국의 확인이 가장 중요한 건데, 이 희대의 오보는 당국의 잘못된 발표가 있었다. 그럼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당국의 잘못된 발표 뒤에 숨을 것이냐.
탁진은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국가가 비상조치를 시행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브리핑룸이 아닌, 청와대 유튜브 계정을 통해서 발표가 됐다. 브리핑실은 굳게 문이 닫혔고, 현장에 기자들은 없었다. 그럼 이건 보도를 할 것이냐.
누군가 “보도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탁진이 물었다. 그건 실제상황이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고, AI 딥페이크가 횡횡하는 시대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무엇을 믿고 기사를 쓸 수 있겠느냐.
어버버 하는 눈망울들을 보고 탁진이 말을 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너희가 앞으로 현장에서 겪어야 할 일이야. 그럼 기자는 대체 어디까지 확인을 하고 크로스체크를 해야 하지? 시간은 한정돼 있고 어느 순간에는 마감을 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확신을 가지고 기사를 쓸 거지?”
회의실은 숙연해졌다.
“정답은 아무도 몰라. 그러나 경험적으로 최선의 방법은 있어. 너희가 언제까지 기자를 할지 모르겠지만, 기자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게 될 거야. 그게 기자야. 기자는 고민하는 사람이야.”
교육을 마치려고 할 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탁진이 성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만 하는 기자를 사회가 인정할까요? 힘 있는 단 세 줄 기사라도 정치권이 뒤집히고, 국민들이 분노를 하고, 사회가 움직입니다.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회를 움직이는 역할이 중요한 책무인 거 같은데요. 그런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는 결국 권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탁진이 교육에 들어오기 전 받은 수습기자 명단을 훑었다. 박성민, 28세, 뉴욕대 경영 졸업.
“권력을 견제하는 것, 중요하지. 그것도 고민에서 출발하는 거야. 고민하지 않으면, 견제도 못해.”
그날 수습기자들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성민은 헬맷을 들고 4층 강당에 등장했을 때부터 이상한 줄은 알았는데, 역시나 이상한 사람이 맞다고, 될 수 있으면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습교육이며. 교육이라면 모름지기 정답을 알려줘야지. 수능에서 5개의 보기 중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토익처럼 문법을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정답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틀린 답을 피해 갈 수 있지 않나. 그런데 탁진은 질문만 던지고 옳은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교육 때 들어온 선배들처럼 기사는 이렇게 써야 하고 회사 시스템은 이러하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성민은 답을 모른다면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고는 잊어버리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