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면 안되는 것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다음 날, 국과수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같이 이동하는 동안 성민은 부족한 잠을 청했다. 동기들은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어제 그 헬맷이 전설의 미친개래, 나도 들어봤어. 3년 전에 그만뒀다던데. 그럼 우리 캡으로 오는거 아니야? 선배들 하는 얘기 들었는데 그건 아닌거 같다던데. 잠이 더 급했던 성민의 귓가에 탁진에 대한 이야기가 맴돌았지만 이내 튕겨내버리고 숙면을 취했다.


성민은 국과수 부검 현장을 참관했다가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살인사건 현장사진을 보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부검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건, 버거웠다. 성민은 프로페셔널하게 부검을 진행하는 부검의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이유 모를 패배감을 느껴서 눈물이 났다. 부모님 말씀 들을걸, 괜히 객기를 부린건가 싶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이었던 성민의 아버지는 대표이사 자리에까지 올랐고, 외아들인 성민에 대한 교육은 철저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시터, 좋은 과외선생님, 유명한 일타 강사에게서 족집계 과외를 듣고 자랐으니, 성적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선택하는 자유따윈 성민에게는 없었다. 부친은 무조건 경영대를 가라고 했고, 모친은 경영을 공부하려면 미국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한국에 들어와 군대에 갔다. 면회를 온 모친이 MBA를 가라는 부친의 말을 전했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한 번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탐구한 적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본 적도 없었다. 그저 하라는 대로 했고 가라는 대로 갔는데, 20대 후반이 돼서야 뒤늦은 사춘기가 온 것이다.


성민은 권위적인 부모님에게서 한 번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늘 불안했고, 공허했다. 그 마음은 어느새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검사? 매일 주말 검찰 고위 인사들과 골프치러 나가는데. 정치인? 우리 지역구에 공장 지어달라고 사정사정하는데. 그때 문득 아버지가 잔뜩 화를 내며 누군가와 전화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경제지에 실린 아버지 회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거다, 싶었다. 성민이 아버지에게 날릴 수 있는 힌 방은, 그의 유일한 핏줄인 자신이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성민은 언론고시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부터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부모님 몰래 강남에 있는 한 은퇴한 기자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두어달 작문과 논술을 쓴게 전부였다. 좋은 스펙, 상견례 프리패스상 이미지, 지나가는 개미도 밟지 못할 것 같은 선한 눈망울로 대한일보 최초 뉴욕대 출신 기자가 탄생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고민할 새도 없었다. 사회부장은 성민을 따로 불러 단단히 주의를 줬다.


“외국에서 대학 나왔다고 나대지말고 얌전하게 다녀”


지난 한 달 동안 수습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이 일은 그저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사건 현장 감식 사진을 보고, 부검의들이 시체를 검안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캡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회사로 들어와”


성민은 부검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합법적인 기회를 획득했다고 내심 좋아하면서, 동기들과 인사한 후 서울청으로 향했다. 경찰서 취재를 담당하는 사건팀의 팀장은 서울청 기자실로 출근했다. 성민은 서울청에 처음 와보았기 때문에 두리번거리며 곳곳을 구경했다. 어떻게 오셨느냐는 의경에게 어색하게 기자라고 말했다. 로비 한켠에 마련된 경찰의 역사가 담긴 사진을 보고 있던 성민에게 캡은 다른 4명의 동기들과 달리 너는 수습과정을 다른 팀에서 받게 됐다고 말했다. 왜 나만인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성민은 그렇게 서울청을 나서 대한일보 지하 3층으로 내려가 주차장 옆 허름한 방에 있는 탁진에게 향했다.


“기자할 생각이 없는 놈이 왔네?”


탁진은 성민을 한눈에 꿰뚫어보았다. 쥐꼬리 월급에 주말도 없이 발제에 시달리는 이 직업은 허영심 가득한 겉멋에 들거나 치기 어린 사명감 같은 게 없이는 선택하기 힘들기 때문에, 입사 전 관련된 활동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민에게는 그 흔한 대학생 기자단 이력같은 게 있을리 없었다. 과도 경영대였고, 학회나 동아리 활동도 경영이나 경제 관련된 것만 있는, 기자를 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 치고는 너무 심심하고 밋밋하다는 것이다. 성민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성민이’는 뭔가가 되기 위해 준비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네 전 기자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성민은 발끈했다. 심심하고 밋밋한 이력을 가진 사람은 기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 기자가 뭐 그렇게 대단한 직업이라고.


“아닌데요.”


성민은 이미 탁진의 덫에 걸려버렸다.


“너, 기자가 제일 하면 안되는 게 뭔지 알아?”

“오보내는거 아닙니까?”

“거짓말 하는거. 오보도 거짓말 하다가 내는 거야. 앞으로 우리팀에서 거짓말하다가 걸리면 죽는다. 난 거짓말하는거 귀신같이 잡아낸다.”


탁진은 정하를 봤을 때처럼 성민을 보면서 자신의 수습기자 시절이 생각났다. 수습들이 혼날까봐 거짓말하는 것을 잡아내는 건 탁진에겐 누워서 떡먹기였다. 친한 경찰 형님, 친한 기자 동료에게 전화 한 통만 해도 금방 알아낼 수 있는데, 수습들은 꼭 거짓말을 해서 일을 만든다. 혼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귀한 도련님같은 요즘 애들은 초장에 잡지 않으면 나중에 큰 사고로 이어진다. 성민은 자신의 방황을 여기서 그만둬야하는 건가 생각했다. 기자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버틸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 미국으로 떠나는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까짓거, 그만 하더라도 수습은 다 마치겠다. 내 앞에 있는 미친개 때문에 그만뒀다는 수근거림은 듣지 않겠다.


“종로에 있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가. 도착하면 보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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