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출입처가 없는 기자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대한일보 옥상. 오전 8시쯤 편집국에 출근한 부장들이 속속 담배를 피우러 모였다. 이미 조간신문들을 쭈욱 훑어본 부장들은 경쟁사가 어떤 신문을 1면에 배치했는지, 어떤 기사를 놓쳤는지 살펴보았다. 곧이어 각 팀장들이 보고한 발제목록이 올라온다. 출입처 주요 브리핑 일정과 함께 각 기자들이 취재해 기사를 쓸 내용을 확인하고 데스크 회의에 들고 갈 보고 내용에 대해 팀장과 전화로 논의한다. 그러나 어쩐지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부산했다. 마 부장이 아침보고를 끝내고 옥상에 올라오자 부장들이 마 부장에게 몰려들었다.


“마 부장, 왜 미리 안 알려줬어? 특별취재팀 생기는 거 알고 있었지?”


이날 부장들의 화제는 새로 생긴 특별취재팀이었다. 국장의 단독 결정으로 부장들 사이에서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이 없었다. 부장들은 국장이 정치부장일 때 정치팀장으로 손발을 맞췄던 현 정치부장은 미리 알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마 부장은 담배 한 까치를 물고 말했다.


“뭐어, 국장이 결정한 일에 토 다는 거 싫어하잖아.”


사실 마 부장도 특별취재팀 신설에 대해 알지 못했다. 탁진이 대한일보에 복귀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요즘 국장의 동태가 영 수상했다. 데스크 회의에서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부장들도 데스크 회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덩달아 예민해졌다. 임기 1년도 남지 않은 국장의 신경질적인 태도에 불만은 높아져 갔다. 국장이 김탁진을 데려온 건 부장들에게도 꽤 충격이었다. 국장이 정치부장일 때 탁진이 사표를 썼기 때문에, 국장이 직을 유지하는 사이 탁진이 복귀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제 탁진이 그렇게 등장한 후, 국장과 탁진이 어디까지 친분이 있었는지 묻는 사람들 때문에 정치부장은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김탁진 성격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거고, 다른 부서 나와바리 침범할게 뻔한데. 단단하게 경고해 둬야 하는 거 아니야?”

“국장이 저렇게 직접 나섰는데 괜히 말 꺼냈다가 또 신경질 낼 텐데. 김탁진한테 부장직을 제안한 게 국장이라잖아.”


부장들이 마 부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마 부장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연기를 뿜어냈다.


“정치부장은 나야. 우리 나와바리 건드리면, 가만있을 수가 없지. 출입처와의 관계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까짓 게 고위급 취재를 할 수도 없을 거고.”


다른 부장들도 출입처와의 관계와 관련해선 마 부장의 말에 동의했지만, 고위급 취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탁진의 취재력은 부장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싹퉁바가지 성격이 늘 거슬렸지만, 탁진이 취재해 온 것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위급 취재가 부장들의 영역이었기에, 탁진의 취재능력은 이미 부장들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부장들은 괜히 자신들의 자리가 불안해졌다. 국장 인사가 나고 나면 다음은 부장 인사였다. 보직부장에서 밀려나면 후배들에게서도, 취재처에서도 잊힌다. 잊힌 기자는 끈 떨어진 갓에 불과하다. 부장들은 탁진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출입처들 단단히 지켜. 출입처가 없는 기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저 트래픽 기사나 쓰게 되겠지. 없어지면 가장 좋고.”


인사차 회의에 들어오라는 국장의 지시에 탁진은 편집국으로 향했다. 회의실 앞에서 전국부장이 탁진을 낚아채듯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사무실을 오고 가는 부장들이 탁진과 전국부장을 의식했다. 전국부장은 요즘 국장의 신경질이 갈수록 심해져서 부장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고, 며칠간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발제를 찾는데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탁진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정하는 오전에 편집국에 있어본 경험이 없기에 낯선 회사 분위기가 당황스러웠다. 습관처럼 편집국에 갔다가 아침보고 준비를 하는 부장들이 너무 예민해서 조용히 지하 3층 사무실로 내려왔다. 성민은 어제 한 달 만에 집에 가서 욕조에 몸을 푹 담갔다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알람소리에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뽀얗게 나타난 성민을 보고 정하는 처음에 몰라봤다. 성민은 1+1이라 샀다며 정하에게 컨디션 레이디를 하나 건넸다.


정하는 아침의 이 여유로움이 어색해서 조간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성민에게는 부처별로 중요한 기사들을 한번 스크랩해 보라고 지시했다. 성민도 신문을 읽고 주요 기사들을 뽑아 목록화했다. 그러다 정하는 문득 김복동 의원이 고발건과 관련해 경찰에서 연락이 없는 것이 생각났다. 이 정도 일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건 오버 같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법사위 야당 간사였다. 물론 경찰은 행안위 소관이었지만, 국회의원의 영향력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정하는 사건 접수가 됐는지 알아보려 관할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고발 취소했는데, 모르셨어요?”


그 사이 편집회의를 마친 탁진이 특별취재팀 사무실로 들어왔다. 탁진은 무심하게 정하의 책상에 어제 국장에게 제출한 사표를 툭, 하고 올려놓았다.


“김복동 의원이 고발 취소했다는데요. 선배 작품이에요?”

“무리한 고발이었으니까 취소하는 게 당연하지.”


정하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대한일보 그 어느 누구도 고발건에 대해 나서서 알아봐 주거나 해결해 주거나, 놀란 정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한일보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저 선배가 자신의 고발건을 알고 있었던 것도, 그것을 하루 만에 해결한 것도 그저 놀랄 뿐이었다.


“대신 김복동 의원이 경찰서장 만났다는 기사는 킵해두자. 김복동 의원에 대해서 좀 더 캐봐. 나도 알아보고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이, 수습. 넌 네가 취재하고 싶은 거 자유롭게 발제해서 디벨롭해 봐. 기자가 되면 하고 싶었던 취재가 있을 거 아냐. 사수한테 보고하고 도움받고. 저녁에는 경찰서 도는 거 똑같이 하고.”

“네, 알겠습니다.”


탁진이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설 채비를 했다. 정하는 기사 쓰라는 지시도 없고, 덩그러니 놓인 성민을 보고는 탁진에게 물었다.


“오늘 뭐 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기자가 취재를 해야지.”


정하는 그토록 하기 싫던 발제의 늪에 또다시 빠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당장 내일 발제거리를 찾아야 했고, 성민의 발제도 알아봐 줘야 했다. 가뜩이나 심란한테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동기 SNS방은 아침부터 요란했다. SNS를 확인한 정하가 회사 이메일에 들어갔다.


[인사공고]

1. 편집국장 산하 특별취재팀을 신설한다.

2. 특별취재팀 구성은 아래와 같다.

1) 성명 : 김탁진

직책 : 특별취재팀장

2) 성명 : 최정하

직책 : 특별취재팀 / 기자


-시간의 기록자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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