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이크를 빌려주는 사람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종로서 인근 안국역 근처에는 작은 골목상권이 형성돼 있다. 사람이 지나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좁은 골목을 들어가면 소음이 차단된 한적한 공간에 막걸릿집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그중에서 가장 안쪽 구석에 위치한 문을 허리 숙여 들어가면, 기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두부찌개집이 있다. 탁진이 먼저 들어서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룸으로 돼있는 공간으로 안내한다. 정하도 살짝 허리를 숙여 들어서며 뒤따라오는 성민에게 이마 조심하라고 말하는 찰나, 이미 이마를 찧은 성민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정하는 탁진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이 따로 없는 이 집은 사장님이 그날 들어온 신선한 재료를 손님들의 입맛에 맞춰 요리를 내어준다.


“우선 두부찌개 하나 주세요 사장님, 두부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사장이 웃으며 요리를 하러 나갔다. 정하는 익숙하게 룸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를 꺼냈다. 목이 타들어갔다. 소주 1, 맥주 2, 이 완벽한 비율을 화려한 손놀림으로 세 개의 잔에 채우자, 성민이 배우겠다는 듯 뚫어지게 보고 있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정하는 소맥을 시원하게 넘겼다. 성민이 고개를 돌려 잔을 비우려는데, 이미 잔을 비운 정하가 성민의 잔을 잡았다.


“기자는 고개 돌리면서 마시는 거 아니야.”

“네?”


성민은 고개 돌리고 마시지 않는다고 혼난 적은 있어도, 고개 돌리고 마신다고 지적받는 상황이 여전히 어려웠다.


뭐부터 가르쳐야 하냐. 자 봐.”


정하가 자신의 잔에 다시 소맥을 채웠다. 그리고 탁진의 눈을 보면서 소맥잔을 넘겼다. 캬아, 하는 음성어까지 내고는 성민에게 눈짓으로 따라 하라고 시켰다. 성민은 가뜩이나 불편한 탁진을 보는 것도 어려운데 보면서 술을 마시라는 것도 고역이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얼굴만 탁진을 향한 채 눈을 찔끔 감고 원샷을 해버렸다. 입가에 주룩, 흐르는 소맥을 소매로 닦은 성민이 탁진의 눈치를 봤다.


“취재원 앞에서 고개 돌리지 말라는 거지. 취재원이 윗사람이 아니라고. 기자 선배 앞에선 고개 돌려야지, 나이도 어린 게.”

“너도 이 연차 돼봐. 선배 후배가 어딨어. 그냥 기자 동료지.”


탁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정하를 보고는 옆에 있는 물통에서 물을 따랐다. 그 사이 사장님이 테이블에 버너를 놓고 그 위에 두부찌개가 담긴 냄비를 올려놓는다. 정하가 불을 켜면서, 탁진 앞에 놓인 소맥잔을 슬쩍 보고 말했다.


“소문이 사실인가 봐요? 술 한잔도 안 한다는 거.”

“술 안 먹고도 기자 할 수 있어요?”


성민이 놀람 반, 기대 반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롤모델이 있잖아. 술 한잔도 안 하고 그 많은 취재원이 있는 기자.”


정하는 이 말을 하면서 예전에 들리던 소문이 떠올랐다. 탁진이 대한일보 입사 초 기수별로 돌아가면서 대면식을 했는데, 만나는 모든 선배들이 술을 하지 못한다는 탁진에게 마시면서 느는 거라고 강요했다. 탁진이 큰 결심을 하고 소주를 한입 댔다가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대한일보에서는 회식 때 술을 강요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탁진 덕분에 술을 권하는 문화가 사라졌다는 그 전설.


“도대체 술을 안 마시면서 어떻게 취재원이랑 속 깊은 얘기를 해요?”

“음…. 잘생긴 얼굴?”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나,라고 생각하다가 술을 마신다고 해서 탁진만큼 깊은 정보를 취재할 수 있는 취재원이 나에게 있는지 정하는 돌이켜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취재원과 밤새 술 먹느라 시름시름해진 간이 불쌍해졌다. 잘났다 그래, 진짜 잘난 놈이다.


“넌 그 좋은 학교 나와서 왜 기자가 됐어?”


정하의 질문이 성민에게 향했다. 성민은 이 말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어 국자로 국물을 두부에 뿌리기만 했다.


“여기가 니 궁금한 거 다 물어보는 청문회야?”


탁진이 타박하듯 나무랐다. 정하는 자신이 사표를 쓰고도 여전히 정치부 기자처럼 물어봤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정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몇 번의 소개팅을 했는데, 그때마다 취재처 일이 터져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 폭격을 쏟아내 상대방이 질색팔색하곤 했다. 자신의 입을 툭툭 치면서 정하가 말했다.


“직업병이에요. 취재원 자리에서 마 뜨는 거 극도로 싫어해서요. 제가 I라는 게 반전이지.”


탁진이 버너의 불을 줄였다. 정하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또 입을 뗐다.


“선배는 뭐 대한이 낳은 아들이에요? 학교도 한국대, 회사도 대한일보. 도대체 그 좋은 학교 나와서 왜 기자를 했어요? 동기들은 판사에 변호사에 의사에 하다못해 일타강사로 억대 연봉을 받을 텐데.”


탁진은 성민에게서 국자를 빼앗아 두부찌개를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서.”

“아이 장난하지 말고요.”

“진짠데?”


탁진이 두 번째 그릇에 두부찌개를 담으며 말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마냥 농담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정하가 재미없다는 듯, 세 번째 잔을 채우려 소주를 들자, 이번엔 성민이 소주를 빼앗아 맥주와 함께 잔을 채웠다. 성민이 만든 소맥을 마시는 정하는 꽤 흡족한 듯, 잔을 마저 비우고 내려놓았다. 성민은 자신의 잔을 비우고는, 술김에 빌어 용기를 내서 탁진에게 물었다.


“왜 돌아오신 거예요?”


정하가 뜨악하며 성민에게 빨리 두부를 먹으라고 재촉했다. 성민은 탁진에게서 답을 듣고 싶었지만, 정하가 난리 치는 통에 억지로 두부를 떠먹었다. 탁진은 어제 강의실에서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답한 성민이 떠올랐다. 훅 치고 들어오는 솜씨가 아직은 투박하지만, 동시에 묵직하기도 했다. 정하가 빠르게 잔을 말았고 성민은 정하를 따라 술잔을 비웠다.


“그럼, 선배한테 하나 여쭤봐도 돼요?”

“네, 수습님.”

“선배는, 기자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탁진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교육 때 있었던 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분명했다. 그러나 탁진은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정하의 답이 사뭇 궁금했다.


“기자가 무엇이냐라….”


정하는 의외로 곧장 대답하지 않고 질문을 곱씹었다. 성민은 정하의 답이 궁금했고, 탁진은 곱씹는 정하를 뚫어지게 봤다.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낮게 눈을 깔고 아랫입술이 톡 하고 튀어나오는 저 표정이 익숙했다. 탁진이 캡이었을 때 받았던 첫 수습들의 첫 모습을 잊지 않는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똘똘하게 탁진을 보던 정하의 인상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체감온도 -17도로 강추위가 예보된 날, 수습기자들을 여러 곳에 보내 스케치를 지시했다. 바이스는 수습들에게 지하철 역 앞 출근길 모습, 병원 앞 빙판길 사고소식 등을 취재하도록 분배했다. 바이스가 수습들의 취재 내용을 모아서 기사를 완성했다. 탁진이 데스킹을 보다가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새벽 4시 한강공원은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철제로 된 그네만 칼바람에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한강라면'으로 유명한 편의점에도 손님은 없었다. 강추위를 피해 들어온 기자에게 믹스커피 한 잔을 내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마음만은 따뜻했다.'


캡은 이 문장을 보고 바이스를 나무랐다. 이 새벽에 이 추위에 애를 한강을 보내면 어떻게 하냐고. 강추위 스케치를 하다가 동사되는 꼴 보고 싶냐고 혼냈다. 아니나 다를까 정하는 그날 추위 스케치를 하고 발가락에 간지러움을 느꼈다. 오래 씻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하는 점심시간에 몰래 병원을 가니, 동상이라고 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동상이 걸렸어요?


정하는 민망하고 부끄러워 작게 읊조렸다.


수습기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네.


수습과정이 끝난 후 내부적으로 평가를 하는데, 탁진은 정하에게 S등급을 주었다. 나중에서야 정하가 새벽 4시에 한강에 갔다가 진짜로 뛰어들 생각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하가 잔을 다시 채우고, 맛깔스럽게 비우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를 빌려주는 사람?”

“네가 방송기자야? 너 펜 기자야. 볼펜기자.”

“언제 적 볼펜이에요. 따지고 보면 노트북 기자지.”


이것들을 데리고 뭘 하는 건지 탁진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민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요하게 물었다.


“그니까,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일이라고요. 저는 언제 눈물이 나는지 아세요? 억울할 때. 억울한 데 말할 데가 없는 게 얼마나 복장 터지는 일인지 아세요? 기자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라고요.”


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8시까지 사무실로. 최정하, 너 한 번만 더 늦으면 가만 안 둬. 수습 넌 오늘 집에 가서 자고 씻고 와. 앞으로도 안 씻고 있으면 죽어.”


계산하는 탁진을 보며 정하와 성민이 김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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