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록자 1부
택시 한 대가 종로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 섰다. 성민이 천천히 택시에서 내렸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낯설었다.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장례식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 조문을 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기서 취재를 하라니. 성민은 막막했고, 두려웠다. 이 일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민은 빈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ATM기에서 10만 원을 인출한 후, 빈소들을 둘러보다가,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한 빈소로 들어갔다. 부조금을 내고, 향을 피우고, 조문을 했다. 영정사진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성민은 조금 당황했지만,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소풍 가는 날이라고 엄마는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서 가방에 넣어 보냈다. 평소 유치원 차를 담당하던 운전사가 하필 장염에 걸려서, 그날은 다른 운전사가 대타로 나왔다고 했다. 신나게 놀고 골아떨어진 아이를 선생님이 깨워서 차에서 내려보냈다. 우회전하던 배달 오토바이가 아이를 덮친 것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곧 숨을 거두었다. 아직도 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난임으로 몇 년 동안 고생하다 하늘이 내려준 우리 딸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성민을 보고, 유가족이 우리 딸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물었다. 성민은 그제야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가족의 얼굴을 보자, 차마 기자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기자인가? 난 아직 수습인데. 정식 기자가 아닌데 기자라고 말해도 되나. 수습기자라고 말하면 유가족이 실망할 것만 같았다. 아니, 기자를 싫어할 것만 같았다.
성민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 경찰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성민의 손을 붙잡고, 제발 우리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다. 성민은 꼭 그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빈소로 경찰 제복을 입은, 아니 진짜 경찰이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냐는 유가족들의 물음에 종로서 경찰서장이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성민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정하는 탁진이 왜 자신을 종로서 앞으로 불렀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물음표만 가득하게 만드는지 불만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설명해 주는 법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종로서는 오랜만이었다. 정하는 수습기자 시절 첫 번째로 출입하게 된 라인이 종로라인이었다. 사건팀 기자는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나눠서 커버하게 된다. 정하가 맡은 종로라인에는 종로서, 혜화서, 성북서, 종암서가 있었다. 하루에 이 모든 경찰서를 돌고 사건 보고를 하는 게 일과였는데, 종로서는 라인을 돌 때 가장 먼저 가야 하는 곳이었다. 당시 종로서 강력계는 지하 1층에 있었다. 본관으로 들어갈 수 없고, 본관 건물 옆 별도의 계단을 내려가면 강력계 간판이 보였다. 그곳은 세월의 때가 뭍은 검붉은 색 대문에, 작은 창문은 철창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이 말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는 뜻이었다. 철창 옆에는 인터폰이 있었는데, 형사가 기자라고 문을 열어줄 리 없었다. 정하는 늘 인터폰 수화기를 들기 전에 각오를 다져야 했다. 거절당하는 건 아무리 해도 적응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종로서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굳게 닫힌 철창도, 돌아가라는 거절도, 아무 소득이 없다고 보고하는 일도 버거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와본 종로서는 리모델링을 했는지 사뭇 달라졌다. 그때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강력계 지하 계단도 보이지 않았다. 정하는 로비에 서 있는 탁진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결국 김복동 의원 멘트는 따지 못했다. 8년 전 수습 때처럼, 정하는 이번에도 아무 소득이 없다고 보고해야 했다. 누군가와 통화하던 탁진의 통화가 끝나고, 정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선매 말이 맞았어요. 8년 차인데, 그 정도도 못했어요.”
탁진이 아무 말 없이 휴대폰 메신저를 열어 정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김 의원의 문자였다.
‘입장은 보좌관 통해서 전달하도록 하지.’
정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탁진을 쳐다보았다. 탁진은 휴대전화를 거두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바빴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건...”
“권력은 다루는 방법이 있어.”
“그게 뭔데요?”
“일단, 이 망할 수습부터 찾고 보자.”
탁진은 종로서로 들어가다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김 의원이 추가로 보낸 것이다.
'제2의 미친개를 키웠네. 곧, 만나서 얘기하지.'
탁진은 서장을 만나겠다며 계단을 올라갔고, 정하는 1층 형사과로 향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우리 수습이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아, 저쪽이요.”
비에 쫄딱 젖은 어린양처럼 한 앳된 남자애가 형사 앞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하는 성민의 얼굴이 낯이 있었다. 정치부장에게 사표 쓰며 난리 치던 날, 잔뜩 얼어서 쳐다보고 있던 수습 중 한 명이었다. 정하는 이 모든 상황에 화가 치솟는 걸 느꼈다. 뭘 하다 잡혀온 건지 저 수습한테도 화가 났고, 아무리 잘못했어도 기자를 현행범처럼 잡아놓고 조사하고 있는 경찰에도 화가 났다. 그러다 지난날 강력계 철창 앞에서 울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오랫동안 묵혀왔던 서러움이 복받쳤다.
“동의는 받았어요? 영장 없이 기자를 이렇게 끌고 와서 조사하는 거면 가만 안있….”
“현행범이야.”
탁진이 서장과 함께 형사과에 들어오며 말했다. 경찰서장을 보고 형사과 경찰관들이 전부 일어나 인사했고, 형사과장이 부랴부랴 나오더니, 탁진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이야, 소문이 진짜였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히 두고만 있던 건지, 탁진의 태평한 표정을 보고 정하는 더 길길이 뛰었다.
“현행범이요? 선배는 애한테 무슨 일을 시킨 거예요!”
“무슨 일을 시켜, 그냥 빈소 마와리 돌라고 한 건데.”
“부조금을 훔쳤어요? 비싼 신발을 가져왔어요? 대체 빈소 취재에 가서 경찰서에 잡혀올 일이 뭐가 있냐고요!”
“빈소에서 유가족에게 경찰관이라고 사칭한 현장을 저희가 봤어요. 마침 제가 빈소를 갔을 때였거든요.”
경찰서장이 웃자 경찰관들이 따라 웃었다. 성민은 창피한 듯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정하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탁진이 나섰다.
“죄송합니다 서장님, 이 일은 저희 선에서만….”
“당연하지. 김탁진 복귀 신고 정도로 생각하지.”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부조를 했더라고. 너무 혼내지 마.”
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은 로비까지 나와 탁진과 정하, 성민을 배웅했다. 로비에 남은 세 사람. 성민은 자신은 오늘로 기자생활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다. 집에 가서 우선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몸을 푹 담그고 싶었다. 꼴좋다는 아버지의 비웃음도,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도 다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찰 조사까지 받았는데, 그 정도쯤이야.
“그래, 경찰 사칭까지 해가면서 취재한 내용 좀 들어보자.”
탁진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성민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안도와 함께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제가 능력이 없는 걸로 하겠습니다. 전 빈소 취재로 기사 쓰는 일은 안 하겠습니다.”
성민의 큰 눈망울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정하는 10년도 넘는 연차 차이의 선배에게 대드는 이 깜찍한 수습을 보고, 탁진을 쳐다보았다. 수습에게 빈소 취재를 시키는 건, 진짜 사건을 가져오라는 게 아님을, 정하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긴 했지만. 탁진은 성민을 빤히 보았다.
“빈소 취재를 왜 시킨 거 같냐.”
“제가 싫어서요. 어제 강의할 때도 저 싫어하셨잖아요.”
탁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너에 대해서 뭘 안다고 싫어하냐.”
“그럼 대체 왜 시키신 겁니까?”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지켜보던 정하가 나섰다. 성민의 휘둥그레한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주변이 안 보일 때가 있어. 기자는 그러다 사고 친다. 넌 오늘 넘어선 안될 선이 있다는 걸 본거야.”
탁진이 잔잔하게 말하고는, 팔짱을 풀고 성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야 인마, 내가 거짓말은 안된댔지. 딱 봐도 어리바리한 놈이 무슨 경찰 행세야?”
탁진은 국장이 아예 말도 안 되는 놈을 붙인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수록 국장의 마음에 든 구석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어느덧 표정이 풀린 정하도 입가에 미세하게 미소가 실렸다. 이번에는 정하가 나섰다.
“이 근처 두부찌개 잘하는 집 있는데, 가실래요?”
“너보다 내가 더 오래전부터 알던 집이거든?”
“가자, 수습. 두부는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