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람이 죽었는데, 너는 신났어?

시간의 기록자 1부

by 은봉

정하는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했다. 회사 출입증은 반납했어도 국회 출입증이 아직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정하는 탁진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기사를 무겁게 가져와야 한다니, 기사의 밸류를 말하는 것인가. 밸류로 따지면 권력자가 권력을 악용한 것만큼 무거운 기사가 어디에 있나.


사실 정하는 단독을 잘하는 기자는 아니었다. 그가 지향하는 기자의 모습도 아니었다. 모든 수습기자들이 그러하듯, 정하도 기자가 되기 전에는 사회부 기자를 떠올렸으나 경찰서를 취재한다는 것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정하가 사회부 기자를 떠올리는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뤄지듯이, 억울한 상황에 놓인 시민의 이야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정하는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런 사명감이나 철학 같은 것이 있던 건 아니었다. 정하의 생각을 바꾼 건 수습기자 시절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자정이 넘어 경찰서를 돌며 그날 들어온 사건들을 취재하던 때였다. 자정이 넘어도 아무것도 소득이 없어 경찰서 로비에 앉아 망연자실해하고 있었다. 오늘도 사건을 알아내지 못하면 또 밤을 새야 했다. 벌써 나흘째 누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정하는 1시간만 침대에 누워 잠을 좀 자고 싶었다.


그때 갑자기 로비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 시간에 이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로 온 것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남성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정하는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거냐고 물었다. 그들은 경찰이냐고 물었다. 정하는 고민 하다가, 기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히려 잘 됐다며, 정하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한 남성이 흐느끼면서, 동료가 오늘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분신했다고 말했다. 동료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했으나, 사망했다고 했다. 한 전세버스 회사에 소속된 운전사들인 이들은, 회사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결성했다. 관리소장은 “노조를 만들면 죽여버리겠다”라고 협박했고, 대표는 매일같이 직원들에게 회유의 문자를 보냈다며 휴대폰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들의 동료는 사망 직전, 마침내 사장과의 면담이 잡혔고, 여기서 노조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겠다고, 드디어 교섭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회사는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이 운행을 시키는 무리한 정책을 개선해 달라는 초대 노조위원장에게 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1시간여의 대화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초대 노조위원장은 어디선가 시너를 가지고 와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온몸에 부었고, 그렇게 화(火)가 되어 세상을 떠났다. 초대 노조위원장이 남긴 마지막 문자는 조합원들에게 전달됐다.


“목숨 걸고 하겠다는 약속, 지키려고 합니다”


정하는 이들의 말을 노트북에 담았다. 이들은 조사를 받기 위해 형사과로 향했다. 우르르 떠난 이들과 달리, 여전히 자리에 남아있는 남자가 정하에게 다가왔다. 명함을 달라고 했다. 정하가 ‘대한일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자,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자신은 정보과라 명함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정하는 휴대전화에 뜬 1진의 이름을 보고 안도했다. 드디어 보고할 수 있게 됐고, 잘하면 4시간은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선배는 곧바로 사건 현장에 가보라고 했다. 으슥한 서울의 새벽, 한 건물로 들어서자 엘리베이터 앞에는 누군가의 생명이 꺼져가던 순간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온갖 그을음이 묻어있었다. 정하는 부랴부랴 1진에게 전화해서 현장 상황을 보고했다. 정하의 말을 듣고 난 1진은 이렇게 말했다.


“너, 신났어? 사람이 죽었는데 너는 신났어?


순간 정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것만 보고하면 잠을 조금이라도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단독이라는 걸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흥분하기까지 했다. 정하는 동료를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외쳤던 현장을 목격했을 때도, 그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멍해졌다. 정하는 선배에게 호되게 혼나고 벌로 파출소 마와리를 돌면서도 그런 자신이 낯설고 무서웠다. 그제야 정하는 이 사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노조를 탄압하는 사측이라니, 교과서에서 배웠던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이후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여전히, 지금도 제2, 제3의 전태일은 이렇게 실존하고 있는데.


정하는 다음날 동료들이 회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현장까지 챙기고, 취재한 내용을 종합해 기사를 썼다. ‘21세기 전태일이 산화한 날, 첫눈이 내렸다’는 것이 첫 문장이었다. 선배는 사측의 입장과 경찰 취재를 더해 정하의 기사를 도왔다. 그렇게 정하가 대한일보에 와서 처음 쓴 기사는 사회면 톱기자로 전국에 뿌려졌다. 정하는 그날, 그 사건을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정하는 울분에 찬 운전사들의 눈물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소외된 목소리를 전하는 것, 그것이 기자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정치부는 전혀 달랐다. 정치부에서는 정하가 생각했던 기자의 역할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당 내에서 싸우고, 이들의 세지는 말을 기록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말이 좋아 기록이지, 사실은 싸움을 붙이는 것이었다. 정하가 어떻게든 기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안을 취재해도, 데스크에서 킬 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만난 것이 김복동 의원 사건이었다. 법안 취재도 안되고, 정치인의 비리도 안되면, 도대체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 정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의원회관을 들어서는 정하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하를 알아본 김 의원의 보좌관들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정하를 밖으로 내쫓았다. 의원님은 지금 지역구 행사에 갔다고 했다. 그러기엔 김 의원의 수행비서가 사무실에 있는 모습이 하필 정하의 눈에 들어왔다. 정하가 재빨리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자, 의원실에는 불이 켜져 있다. 정하는 오늘 시간 많다고,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곤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까짓것,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번 해보자. 미친개가 전설에만 있나? 현존하는 미친개도 있다.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이 기사는 꼭 내보내고야 말겠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의원회관에 있는 의원들이 속속 밖으로 나가다 앉아있는 정하를 보곤 말을 걸었다. 별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정하의 말과 달리, 김복동 의원실 앞에 뻗치고 있는 대한일보 기자의 모습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때 의원실 내부가 부산스러워졌다. 정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마침내 김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하는 김 의원을 따라붙어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최 기자는 말이야. 아주 고약한 질문만 해.”

“네?”

“기자가 질문을 잘해야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정하는 그 순간 이 세금을 받는 입법기관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굽히라는 것이었다. 국가의 세금을 받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기자에게, 굴복을 하라는 것이다.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정하는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질문하는 게 일이에요. 저는 답을 하든지 말든지 질문을 해야 하고요. 의원님이 답을 하든지 말든지도 자유입니다. 의원님은 의원님 일을 하세요. 저는 제 일을 할 테니까요.”


빤히 쳐다보는 김 의원을 뒤로한 채, 정하는 의원회관을 나섰다. 정하는 국회 출입증도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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