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준한] 욕구를 그리워하다

포르노그라피가 아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준 <님포매니악>

by 이준한

한 때 내게 전부였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가족, 연인, 친구, 물건, 감정, 장소, 기억, 혹은 또 다른 무언가의 형태로 존재했다. 어느 날 그것이 갑자기 사라졌다. 당황스럽고 갑작스럽다기보다는, 기분이 묘했다. 익숙한 일상을 지냈다. 그러다가 한 순간, 부재가 느껴졌다. 동공이 흔들리고 심장이 멈추고 밥을 먹다가 밥알이 코로 들어간 듯한 답답함이 영원히 지속되는 느낌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 전부였던 무언가를 찾으려고 발버둥 쳤다. 1초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무슨 미친 짓을 해서든, 그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님포매니악>을 보았다.


라스 폰 트리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다. <어둠 속의 댄서>와 <도그빌>에서 적잖은 논란과 호평을 받았고 <멜랑콜리아>에서는 미술가적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님포매니악>과 <살인마 잭의 집> 이후 그의 영화를 방사능처럼 우려하는 눈빛이 늘었다. 칸 영화제에서 <살인마 잭의 집> 상영 중 20분 만에 관객 한 명이 밖으로 뛰쳐나가 토하며 욕을 했다던데, 사실 나는 이해를 못 하겠다. <살인마 잭의 집>은 <인간지네>의 고어함과 <쏘우>의 신체절단, <퍼니게임>의 불쾌함을 모두 합친 것을 최대한 건조한 것에 불과하다.


<살인마 잭의 집>은 산속에서 조용히 살던 한 지질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인간의 잔혹성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 주제의식에 비해 남을 속이는 방법과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은 초보적이기 짝이 없고 행위는 한껏 과장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수위의 농도다. 나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 <안티 크라이스트>, <도그빌>은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가급적 혼자 보기를 강권한다. 자위를 들키는 행위만큼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영화들에 등장하는 노출과 강간, 신체훼손은 모자이크 처리되었음에도 옆에 누가 없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주인공이 성기를 가위로 잘라낼 때 나는 괜히 아랫도리를 양손으로 가렸다.


그러나 이런 연출들이 오로지 선정성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는 언제나 폐소공포증, 고소공포증, 대인기피증을 앓아왔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심해 자기 영화가 개봉하는 영화제에 참석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때문일까.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에서는 언제나 자기 파괴와 자력구제를 찾아볼 수 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는 남편의 소원을 위해 자신을 성적으로 희생하며 동시에 신에게 정화를 요청하던 여성을 다루고, <안티크라이스트>에서는 남편과 섹스하던 중 추락사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남편과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여성을 다루며, <도그빌>에서는 폐쇄적인 마을에 들어와 학대를 받지만 종반에 집단 구성원을 학살하는 한 여성을 다룬다. 자기희생에 대한 자력구제의 희망이 자신의 선택에 있음을 강조하는 영화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영화는 <님포매니악>이다. ‘볼륨 1’과 ‘볼륨 2’로 나뉘어 있다. ‘볼륨 1’에서는 어릴 때부터 성적 쾌락을 알아버린 '조'의 여정을 그린다. '조'는 더 짜릿한 쾌락을 느끼기 위해 남자라면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한다.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국내판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지만 사실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감독판을 봐도 별 문제가 없다. 어차피 특수효과와 카메라 구도를 이용한 페이크샷이다.


성인이 된 '조'는 '제롬'이라는 멋진 남자와 결혼한다. 어느 날 조는 제롬과 섹스를 하고 그가 지쳐서 잠에 들자 홀로 부엌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 자위를 한다. 자위를 하며 흐느낀다. 이어 머리를 감싸 쥐고 괴성을 지른다. 이제 쾌락을 느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의 전부였던 성적 쾌감, 즉 중추신경의 자극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볼륨 1’이 끝난다.


‘볼륨 2’는 중년이 된 ‘조’가 성적 쾌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인다. 코믹할 것 같지만 의외로 무겁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던 흑인 두 명에게 돈을 지불하고 2대 1 플레이를 요구하고, 'K'라는 SM 전문가를 찾아가 치료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헛수고다. 자신도 알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늘 넋이 나가 있다. 친구들이 떠나가고 '제롬'마저 그녀를 떠나간다.


‘조’는 철저히 혼자가 되자, 결국 딴살림을 차린 '제롬'에게 분노의 원인을 돌린다. 왜 나를 버려 이 지경까지 만들었냐고 원망한다. 그러나 '제롬'의 새 아내에게 구타를 당하고 그의 분뇨를 뒤집어쓴 채 산에서 굴러 떨어진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절망과 절규는 이토록 구차하고 고되며 수치스러운 것이다.


‘볼륨 1’과 ‘볼륨 2’는 모두 주인공 ‘조’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조'는 자신의 인생사를 그를 숲 속에서 구조하고 간호해 준 셀리그먼에게 털어놓는다. 샐리그먼은 발기부전이다. 완전히 지쳐버린 ‘조’가 유일하게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남자다. 하지만 '조'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셀리그먼조차 음경을 조에게 내밀며 "어차피 당신이라면 해줄 거잖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총성이 울려 퍼진다.


<님포매니악>은 2014년에 감독판으로 봤다.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돌려보지 않았지만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님포매니악(Nymphomaniac, 색정증). 분별없이 이성을 그리워하고 따르며 무분별한 성행위를 일삼는 성욕 항진증이다. 타인에게 그것은 비정상으로 보일지 몰라도 '조'에게 그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내게 정상인 것들이 타인에겐 비정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자기 파괴가 반복되고 자력구제가 실패할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겐 연인일 테고, 돈일 테고, 명예일 테고, 가족일 테고, 일일테고, 어떠한 물건일 테다. 누군가에게는 <님포매니악>마저 쓰레기 같고 더럽고 추악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자기 파괴의 반복과 자력구제의 실패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 영화는 힐링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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