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간의 거리

미간처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by 이준한

나는 미간이 넓다. 나름의 콤플렉스다. 예전에 앞트임 수술을 받으려 성형외과를 갔는데 의사가 쓰읍, 뼈 골격 문제로 앞트임이 거의 불가능하다더라. 결국 속쌍꺼풀 수술을 받았는데 라인을 얇게 잡아달라고 해서 지금은 티도 나지 않는다. 아이고, 아까운 우리 엄마 돈.


미간이 넓으니 자연히 양 눈썹 사이도 넓다. 근데 자꾸 둘이 이어진다. 내 눈썹은 털이 나는 곳이지 오목교가 아닌데. 매번 미용실에 가서 조심스럽게 눈썹 사이를 정리해 달라고 주문한다. 미용실을 나서면 상쾌하면서 동시에 조금 미안해진다. 사실 내 눈썹은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결국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1개월 단기 계약직을 다니고 있다. 지난 1월 12일에 몸 상태가 악화되어 쓰러지고 이틀 뒤 퇴사를 한 상태에서 도저히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여름에 수술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직장을 찾기도 모호한 상황이다. 결국 실업급여가 필요했다. 한 달을 고생하다가 겨우 합격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기업이고 집에서 도보로 단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다니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난 언제나 내가 일을 길게 병행하지 못하는 것의 원인을 찾았다. 오랫동안 피해망상에 시달려온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기는 문제의 원인을 대부분 외부에서 찾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원인은 대개 주변 사람 탓으로 귀결되었다. 사수가 없었기 때문에, 직장에 깡패가 찾아와서, 내 업무 역할이 어중간했기 때문에.


이번 계약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발은 좋았다. 나는 낯을 전혀 가라지 않는다는, 내향인의 성질에 위반되는 특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장점으로 빠르게 공동체에 녹아들었다. 웃으며 일을 했고 살아온 날들을 공유했다.


이 관계가 허물어지기까지 딱 3일이 걸렸다. 나는 사람들과 점점 말을 섞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오히려 말이 없던 형 하나가 대화의 중심에 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게 3주가 흘렀고 나는 또다시 빌어먹을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외부 사람들 때문에 내가 회사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나 역시 이를 충실히 따랐다(심지어 데일 카네기조차 ‘인간관계론’에서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웃으며 다가갈 것. 친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칭찬하며 다가갈 것. 그리고 언제나 가벼운 목례든 활기찬 음성이든 인사를 먼저 할 것. 그렇다면 이번 일을 통해 나는 거기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하고 싶다. “위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시작할 것”.


처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웃으며 다가오고 목례를 하고 칭찬을 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성격이 좋은 사람이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사기꾼이다. 비즈니스가 아닌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는 대부분 후자로 분위기가 흐른다.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고 사람들은 나를 부담스러워했거나 여자에 미친 사람(여초직장이다)으로 봤을 공산이 크다.


이를 인정하고 나니 한껏 마음이 편안해졌다. 싯다르타는 외로움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 매달릴 때 외로움이 더 강해진다”라고 말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집착으로 변모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내려놓을 생각이다. 사람을 대할 때, 일을 대할 때, 친구를 대할 때, 가족을 대할 때, 연인을 대할 때 드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을 생각이다. 허지웅 작가의 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멀어지면 외로워지고 너무 가까워지면 위험해진다. 남은 계약기간 2주 동안 눈썹 사이를 더욱 정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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