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으로 제작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다카하타 마사오는 뜨거운 차를 호호 불며 마시고 있었다. 직전의 애니메이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제작하는 데 꽤 많은 혼백을 소모했다. 생각의 정돈이 필요했다. 다음엔 무슨 작품을 진행할까. 옆에 있던 지인도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의 스즈키 도시오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수화기 너머로 스즈키의 말을 경청하던 다카하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왜 당신을 만나야 합니까?" 스즈키의 요청은 간단했다. 자신의 [아니메주] 잡지 창간호에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독자 페이지에 실을 인터뷰를 하고 싶다 했다. 다카하타의 대답을 들은 스즈키가 또다시 수화기 너머로 한 시간쯤 부탁과 애걸, 설득을 반복할 때쯤 타카하타가 그의 말을 끊었다.
"난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그 작품을 같이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옆에 있어요. 바꿔줄까요?"
이것이 훗날 '지브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두 수장, 다카하타와 미야자키 그리고 스즈키의 첫 통화였다.
스즈키는 협상 끝에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미야자키는 인터뷰 내용을 8쪽에서 16쪽으로 확장하길 원했고, 노조활동까지 제대로 서술되기를 원했다. 거기에 '호루스' 역의 오카타 히사코와 '그룬왈드' 역의 히라 미키지로의 코멘트를 싣는 조건이 더해져 미팅이 성사되었다. [아니메주]를 홀로 집필, 편집해야 할 스즈키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협상 카드가 없었다.
우선 첫 번째 미팅은 다카하타였다. 그는 이제 막 [쟈린코 치에] 극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커피숍에서 스즈키와 만난 다카하타는, 자리에 앉자마자 세 시간 동안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스즈키에게 물었다.
"내가 한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다면 해 보세요."
다카하타와의 인터뷰에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스즈키. 이번에는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제작하던 미야자키를 찾아갔다. 그러자 미야자키는 스즈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했다.
"[아니메주]는 애니메이션 붐을 타고 만들어졌잖아요? 그런 것에 호의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잡지와 인터뷰를 한다면 내가 더러워져서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를 거절했던 타카하타는 자신이 세 시간 동안 떠들었던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요약하라고 하질 않나. 되려 온갖 조건을 들이밀며 인터뷰를 허용했던 미야자키는 갑자기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나.
하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아니메주] 창간호에 실을 인터뷰를 따 내야 했다. 화가 난 스즈키는 옆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 미야자키 옆에 앉았다. 미야자키는 스즈키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흘러갔다. 새벽 3시, 입도 뻥긋하지 않던 미야자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집에 갈게요. 내일은 9시까지 출근해야 해서요."
이튿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스즈키는 미야자키의 사무실을 찾아가 그 옆에 앉은 채 시간을 보냈다. 미야자키가 스즈키에게 말을 건넨 건 사흘째였다.
"여기에 쓸 만한 전문용어가 뭘까요?"
미야자키가 내민 그림은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의 성] 첫 부분의 카레이싱 장면이었다. 스즈키와 같이 갔던 동료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경륜에서는 '추임 젖히기'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미야자키는 스즈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 수 있었다. 다카하타와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그들의 사무실에 가서 미야자키와 다카하타의 작업 방식을 두 눈으로 지켜본 스즈키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수가 있을까? 놀라울 만큼 금욕적이면서 엄격한 프로정신의 주인공. 그것이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두 가지 시련이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리틀 네모]의 제작이 미국에서 편집권 문제로 불발되었다. 영화기획위원회에서는 '원작도 없는 걸 영화로 만들 순 없다'며 미야자키의 기획을 거절했다. 미야 자기가 제대로 열이 받았다. "영화로 만들 목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건 불순하니까 만화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 그리겠어." 라며 펜을 잡았다.
미야자키와 스즈키는 곧바로 [아니메주]에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스즈키는 기자였지만 스크린 톤과 바탕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200쪽짜리 만화 단행본을 7만 부 제작해 판매한 뒤 이를 담보로 영화화 기획을 요청한다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5만 부밖에 팔리지 않았고, 이걸로는 기획을 요청할 수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스즈키와 동료는 도박을 좋아하던 와다 유타카라는 출반사 홍보부장을 점찍었다. 그렇게 도박 작전(?)이 시작됐다. 매일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그와 도박을 하면서 5만 엔씩 잃었다.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데 밀어주는 사람이 없네요..."
그렇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치밀한 도박 작전으로 인해 탄생할 수 있었다.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광고회사를 다니던 미야자키의 동생까지 합류해 영화 제작을 진행하려는데, 프로듀서가 정해지지 않았다. 미야자키는 다카하타를 프로듀서로 삼고 싶어 했고 다카하타는 노트 한 권 가득 '자신이 프로듀서에 맞지 않는 이유'를 써 놓은 채 프로듀서 직을 거절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미야자키가 울면서 '15년 동안 다카하타와 일했는데 돌려받은 게 없다'라고 말하면 다카하타는 '난 안 할래'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이게 성인들의 대화라니. 참다 참다 폭발한 스즈키가 다카하타에게 고함을 질렀다.
"미야자키 씨랑 친구 아니에요? 그 친구가 도와달라는데, 왜 안 도와주는 거예요?"
이에 다카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 직을 수락한 것이었다. 이제야 한숨 돌리려는 그때, 다카하타가 물었다.
"근데 어디서 만들어?"
이런 젠장, 회사가 없었다.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카하타와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를 돌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제작을 맡아주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완벽주의자와 일을 하면 작품은 잘 나오겠지만, 그 이후 회사는 쑥대밭이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던 와중 미국의 애니메이션 일을 맡아서 하는, 소박하지만 진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제작사를 찾았다. 바로 톱 그래프트였다.
이번에는 스태프가 문제였다. 톱 크래프트의 스태프는 60여 명. 많지 않지만 제작 자체를 할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다카하타가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 맞는 스태프들인지 테스트를 했고, 전원이 맞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즈키는 스태프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기동전사 건담]에 관여했던 나카뮤라 마츠키를 미술감독에, [우주 해적 캡틴 하록]에 관여했던 고마츠 바라 가즈오를 그림 책임자이자 작화감독으로 부탁하는 등 조금씩 진형을 갖춰갔다. 그렇게 모인 스태프들 앞에서, 미야자키는 소리쳤다.
"6개월 만에 만들어야 한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한 달에 하루만 쉰다!"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쌍욕이 나올만한 발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평소 굉장한 수다쟁이였던 미야자키는 작화에 들어가자마자 잡답 없이 오전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만 했다.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혀를 내부를 정도였다.
그 힘든 현장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가 학창 시절 그린 그림을 가지고 톰 크래프트로 찾아왔다. 미야자키는 이를 보곤 그를 곧바로 채용했고, 안노에게 거신병 장면을 전부 그리게 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었다.
사달이 났다. 개봉은 3월 11일인데, 개봉 때까지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을 2월 말에 알게 된 것이다. 미야자키는 모든 스태프들을 모아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프로듀서인 다카하타가 결정에 어려움을 느끼자 미야자키는 곧바로 그림 콘티를 바꾸기 시작했다. 원안에 있었던 거신병과 오무의 격돌 장면을 제거한 것이다.
이후 10일 동안 톱 크래프트의 모든 스태프들이 사활을 걸고 영화제작에 집중했다. 흥행? 홍보? 그런 걸 걱정할 시간도 없었다. 도에이 배급사와 의논해 필름이 완성되면 먼 곳부터 보내 배송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켰다.
그렇게 개봉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다행히 히트했지만, 제작에 참여했던 모든 스태프들이 사표를 내면서 톱 크래프트는 공중 분해되었다. 아껴왔던 친구들과 이별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때부터 작품이 완성되고 난 뒤 다시는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참고
지브리의 천재들, 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