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준한] 내가 머문 공간들

또다시 이사합니다.

by 이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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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찾았다. 신림에 있는 꽤 규모 있는 부동산이다. 수십만 구독자가 있는 유튜브를 운영 중이기도 한다. 7층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괜히 은행 앱을 열어 초라한 잔액만 확인했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사회적 총알들. 내 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고 묻는 직원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했다.


"보증금 500에 월세 보증금 포함 60으로 7평짜리 되는 지상층을 구합니다!"


난감해하는 부동산 직원의 눈치. 아직 퇴거날짜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퇴거날짜 한 달 전에 다시 방문해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급식에 나온 맛있는 반찬처럼 내 계좌의 돈을 다루었다. 계좌의 앞자리 숫자가 변하는 것을 경계하고 예의주시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재방문을 하고 새 집을 찾는 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일전에 미리 작성해 둔 조건 아래에서 부동산 측이 베스트 3 매물을 이미 골라놨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보여줄 필요 없이 자신들이 최선의 매물로 찾았다나? 의심이 가득해지는 가운데 첫 번째 원룸에 도착했다. 숭실대학교 근처에 더 이상 이 가격의 원룸은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계단을 올라 4층으로 향했다. 방을 살펴보고 다시 내려왔다.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가격조차 낼 수 없는 현실을 도피하며 두 번째 원룸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꽤 큰 창문과 깔끔한 화장실 그리고 복도가 있었다. 금액도 적절했다. 세 번째 원룸은 열리지 않는 양창(;;;)에 환기조차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방을 골랐다.


두 번째 출가의 연장선이자 세 번째 원룸이다. 내창이 있는 1.5평짜리 고시원에서 40만 원을 내며 첫 출가를 했고 현재는 강남의 8평짜리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 언제나 금전적인 문제가 고질병이었다. 학생 때도 돈이 없었고 직장인이 되고서도 돈이 없었다. 반년 전 나름대로 예금과 적금을 조금씩 쌓아 올려놓았지만 십이지장 용종 출혈로 그 마저도 다 까먹은 신세가 되었다. 아무리 객관화를 하려 해도 내 통장 잔고는 '억까'를 당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방마다 사연이 녹아 있다. 고시원에서는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와서 기름냄새를 풍기며 쓰러져 잤고, 4평짜리 원룸에서는 쓰리잡과 포잡을 번갈아 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서른이 되어 이제는 독립을 해야 한다며 50만 원을 들고 무조건 나간 역삼역 근처의 고시원에서는 돈을 벌어보겠다며 4개월 내내 일만 하다가 피로누적으로 응급실을 갔고, 현재의 강남역 근처 반지하방에는 정규직 취직에 성공했던 기쁨도 잠시 병이 생겨 쓰러졌던 기억과 지나쳤던 짧은 사랑의 기억이 묻어있다.


공간은 고정적이지만 사연은 그렇지 않다. 머리든 가슴이든 어디에나 남는다. 중요한 건 당시의 나의 상황과 그 방에서 쌓았던 추억이 현재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느냐다.


현재 살고 있는 강남의 반지하 방의 퇴거일은 7월 11일이다. 더 이상 강남에 머물 이유는 없지만 서울에서 계속 1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은 똥고집 때문에 신림 근처 오피스텔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집 구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를 체감하며 다시금 엄마의 위대함에 혀를 내둘렀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지난 사무직 업무 대신, 현장의 기술직을 배워보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방에는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 한다. 계획에서 엇나가면 기대심이 깎여 스트레스를 받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에서 얻은 작은 이벤트와 이익이 그 이상의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경험을 너무 자주 겪었다. 다만 최소한의 첫걸음을 준비함과 동시에 현재 살고 있는 반지하 방이 품고 있는 약간의 습기와 날파리의 팔자 비행, 그리고 계단보다 높은 턱이 있는 화장실이 또 다른 사연이 되어 내게 기록될 것이다.


안녕. 즐거웠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어느 반지하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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