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의 로이 맥브라이트는 아버지를 이해했을까.
대부분의 자취생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반찬을 가지러 가거나, 가족의 생일이 있거나, 부모님을 보러 간다거나 등의 다양한 상황에서 '본가'라고 불리는 공간에 가게 되면 이상하게 그곳의 공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말이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탔던 엘리베이터가 낯설고, 야심한 밤 컴퓨터를 하던 내 방이 낯설고, 밤늦게 티브이를 보며 기대었던 소파도 낯설다. 그 끝에는 부모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최소 1.5배는 심해진 것 같은 잔소리과 내 장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참견을 마주한다. 아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퉁명소리를 내뱉는 순간 부모의 얼굴을 보며 내 입을 원망하게 되고 부모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어우, 대가리만 커서 밖으로 나갔지 나는 평생 애다 애.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는 부자간의 이해를 다룬 영화다. 수 십 년간 만나지 못했던 부자가 서로를 마주했을 때 과연 서로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가정에 소홀해진 부모에게 갑자기 자식이 찾아왔을 때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로이 맥브라이트는 군인이다. 초고도 대기권 안테나 설비에서 근무한다. 어느 날 전자기파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서지 현상'으로 인류에게 재앙이 닥칠 것임을 알고 화성으로 향한다. 우주선에 탄 그를 많은 사람들이 존경과 경외의 눈으로 쳐다본다. 사실 그는 30년 전 우주개척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던 클리포드 맥브라이트의 아들이었으며, 현재 인류의 모든 우주 발전의 유산은 그의 아버지의 노력 아래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이는 착잡하다. 사실 '서지 현상'은 현재 아버지가 30년 넘게 생존해 있는 해왕성의 탐사선 '리마 프로젝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우주 사령부가 '서지 현상'이 클리포트의 정신이상으로 발생했다고 의심하고 그를 막지 못할 경우 클리포드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몰래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0년 간 자신은 아버지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주의 아름다운 모습과 근미래에 인류가 달을 식민지화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충실하게 스크린 위로 올려놓는다.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사실적이고 경이로운 우주 구현에 있지 않다. 로이 맥브라이트라는 인물이 미션을 위해 아버지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돌이켜보는 것에 초점을 둔다.
괜찮은 영상미를 보여주며 정작 초점을 다른 곳에 두기 때문에 극 전개의 집중도는 떨어진다. 우주 해적과 우주에서 발생하는 사고 등에 대한 아이디어는 좋지만 정작 영화 전체적으로는 굳이 있어야 했을 장면이었는지 의문도 든다.
여러 사건이 발생하고, 홀로 아버지가 있는 해왕성으로 향하며 로이는 여러 생각에 빠진다. 대체 아버지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 30년 동안 묵혀왔던 감정을 이야기해야 하나. 여기까지 뭣하러 왔냐고 잔소리는 듣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평소에 잘 대해주지 못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죄책감에 빠진다. 그러다가 비소로,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아버지를 만난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가 적어도 자식에게만큼은 어른에 거의 가까운 존재가 된다는 관념적인 말에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부모는 자신의 일을 가정을 위한 일로 확대하며 가족을 건사하고, 머리가 큰 자식은 자신의 일을 그저 개인적인 일로 내버려 둔 체 부모와 갈등한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야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며 후회하고 눈물을 흘린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도 부모와 마찰을 빚었다. 진로 때문이었다. 전기 공사 도급업으로 가정을 일궈왔던 아버지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의 동세대 아메리칸 뉴웨이브 감독과 만나며 영화감독을 꿈꿨던 제임스 그레이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우리가 부자도 아니고 연줄도 없으며 할리우드 출신도 아닌데(브루클린 출신이다), 네가 영화감독이 될 것 같냐?" 이에 대한 제임스 그레이의 명확한 인터뷰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애드 아스트라>를 통해 감독 나름대로 아버지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느낄 뿐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클리포드는 로이를 보고 영화 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를 한다.
"지난 30년간 나는 임무 생각만 했어. 가족 생각은 하지 않았지"
"나에게도 너처럼 능력 있는 파트너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둘이서 같이 연구를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언뜻 무책임해 보이는 대답이다. 매정하게 대답하고 이후에 다정하게 말을 하는 건 본인의 잘못을 덮으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크로포드의 행동은 미션이 아닌 가족, 즉 로이에 대한 부모다움을 행사하려는 나름의 시도임을 알게 된다. 이 내용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마지막 씬에서 로이가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직접적인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해왕성으로 향하면서 늘 유지했던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던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암시는 보인다. 30년 만에 조우한 아버지와의 짧은 대화와 그의 마지막 행동에서 그는 과연 아버지를 이해한 것일까.
단순히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부모행세를 하는 사람들과 단순히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으로서의 권리를 당연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중 둘 다 성인이 된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사람의 수는 과연 얼마나 적던가. 모두가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모습은 아름답지만 나는 아직 주변에서 그런 가정의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한다. 모두가 어느 한쪽이 희생해야 비소로 흐느끼고 후회한다.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이란 말인가.
어떤 감독들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결핍을 부정하거나 혹은 극복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한다. 주인공은 감독의 경험을 투명한 캐릭터로서 부여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감독과 유사한 자신의 경험을 뒤돌아보게 되고, 후회하게 되고, 대비하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현실을 담는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조금 후퇴해, 영화를 통해 나와 같은 체험이나 고민이 있었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