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카사 비센스

가우디의 카사 비센스에서 보낸 아침

by 꿈 공작소

비행기에서 보낸 하루를 제외하면 벌써 바르셀로나 여행 3일째다. 이제야 조금씩 도시의 리듬에 우리도 적응해 가고 있다. 호텔 주변 상점들에도 익숙해졌고, 이제는 굳이 지도를 뒤적이지 않아도 골목길 어귀쯤에 있는 괜찮은 카페 하나쯤은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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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오늘도 여느 때처럼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 도시에서 주문을 받던 아가씨가 드물게 말을 더듬으며 소통이 되지 않았다. 뒤에 서 있던 중년 여인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아가씨, 영어 공부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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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바르셀로나 중산층이 거주한다는 그라시아 지구로 향했다. 이곳에 가우디가 처음 참여한 건축 프로젝트가 있다고 했다. 지하철 출구를 나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도 평범한 주택가였다. 과연 이런 곳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우디의 첫 주택이 숨어 있을까 싶은 의심이 살짝 들 무렵 — 마치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붉고 섬세한 타일로 장식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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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독특함과 화려함에 입에서 무심코 긴 감탄이 새어 나왔다. 다만 웹사이트에서 보았던 것처럼 건물이 선명한 붉은색은 아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은 대부분 보정을 거친 탓에 (심지어 공식 페이지마저) 훨씬 더 붉고 선명해 보였던 모양이다. 실제 건물은 시간의 결이 스며든, 조금은 바랜 벽돌색에 가까웠다.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자 아직 입장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오픈런을 예약한 것을 보면 이번 여행은 느긋하게 하겠노라 다짐했건만, 마음만은 여전히 분주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남는 시간 동안 예쁘게 꾸며진 정원의 카페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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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입장 시간이 되어 안으로 들어섰다. 자연의 마술사라 불리는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첫 주택.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면을 수놓은 꽃무늬 타일이었다. 이 집은 주식 및 통화 중개인이었던 마누엘 비센스 몬타네르 (Manuel Vicens Montaner)가 여름 별장으로 의뢰한 건물인데, 당시 부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금잔화 (Merigold)를 모티브 삼아 외벽 장식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 앞에 서면, 건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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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비센스, 이 집은 ‘가우디의 꽃의 집’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별명에 걸맞게 정원 곳곳에는 종려나무가 심어져 있고, 철제 문이나 창살조차도 장미 문양이나 식물 이파리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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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역시 자연의 연장선처럼 꾸며져 있었다. 각 방마다 테마가 달라 다양한 식물들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고, 방 하나하나 허투루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정성이 담겨 있었다. 집을 투어하는 것인지 식물원을 감상하는 것인지 착각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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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 깊었던 공간은 1층 끝자락에 위치한 흡연실이었다. 파란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키는 천장이 인상적인 이 방은, 자세히 보면 포도송이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분위기도 감돌았는데, 실제로 당시의 가우디는 알람브라 궁전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집은 그의 독창적인 곡선미와 유기적인 양식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직전, 다양한 건축 양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실험작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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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실제 거주 공간이었던 만큼 침실과 욕실 등 실용적인 방들이 이어졌지만, 그 장식의 정성만큼은 결코 덜하지 않았다. 특히나 천장 장식은 너무도 화려해 많은 관람객들이 고개를 들고 감상하다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새가 그려진 천장도 눈에 띄었는데, 이는 이 부지에 살던 새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금잔화 주변에 살던 벌레를 잡아먹던 새들이었는데, 건물이 들어서며 그 생태계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가우디가 그 기억을 집안 장식으로 되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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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으로 올라가 본다. 3층은 원래 직원 숙소로 사용되던 다락방이었는데, 지금은 소박한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다. 당시의 설계도와 모형, 역사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가우디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의 작품 모형도 함께 볼 수 있었다. 가우디의 작품은 외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인상적이기에, 많은 후배 건축가들에게 오랜 시간 모방과 영감의 대상이 되었을 법하다. 안타깝게도 이 집은 원래 산타 로사 슈라인과 더 넓은 정원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정원은 잘게 쪼개져 팔리고, 성소 역시 철거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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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옥상에 올랐다. 가우디가 설계한 집들 중, 진짜 하이라이트는 늘 옥상에 있다고 한다. 처음 마주한 그의 옥상.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했다. 작은 공간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기와와 타일로 장식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만들었다. 담장에도 꽃 장식이 정성스럽게 붙어 있었고, 가우디 특유의 굴뚝 또한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그의 열정과 시선을 잠시라도 함께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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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업고 튀어가 아닌 괴나리봇짐 매고 튀어 사인? 도둑들을 위한 것일까?


가우디는 1878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집은 가족이 사는 작은 나라다. 집이 없는 가족은 이주한 땅에 사는 것과 같다. 내가 소유한 집은 나의 모국이고, 임대 주택은 낯선 땅이다. 가족 없는 집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가, 가족과 함께 머물 아름다운 공간을 상상하며 이 집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집은 화려함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소망과 기억, 그리고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가득했다. 카사 비센스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가우디의 상상과 그리움이 얽힌, 살아있는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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