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란 귀차니즘의 끝판왕이다

For better or worse

by 꿈 공작소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이야말로 귀차니스트의 인생 모토다. 가끔 사람들은 귀차니즘하고 게으름을 혼돈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두 성향에는 엄연히 다른 점이 있다. 먼저 귀차니즘은 귀찮은 일을 몹시 싫어하고 꺼리는 성향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귀찮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정말 필요할 때만. 반면 게으름은 행동 자체가 굼뜨고 움직이거나 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성향을 말하는 것이니 근본적으로 다른 성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이런 귀차니즘을 신봉하고 사는 사람에게 과연 이사란 어떤 의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라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새집을 찾고 짐을 싸고 옛집을 정리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귀찮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마디로 이사란 귀차니스트에게는 사서 하는 고생이다.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신혼 때 사서 들어온 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몇 년만 버티면 주택 할부금도 완납하게 되고, 그 시기가 은퇴 전 어느 시점이라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은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미래를 책임져 주어야 할 자녀도 없으니 이제 주택 할부금의 굴레에서만 벗어나면 한껏 누릴 수 있는 멋있는 실버 경제적 자립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반려인을 설득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반려인의 입에서 폭탄선언이 터져 나왔다.

'우리 방이 하나 더 있는 큰 집으로 무조건 이사를 가야 해.'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포도 아닌 이 또 무슨 한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인지. 대체 왜 둘만 사는, 방이 둘, 화장실이 둘에 널찍한 거실과 베란다가 있는 집을 버리고 집을 늘려가야 하는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금 우리 집의 장점을 부각하며 이사 안건 백지화 로비에 들어갔다.


먼저 우리 집은 유명한 식당들이 즐비한 먹세권에 고속도로가 넘어지면 코가 닿는 지척에 있어 접근성도 좋고, 또 나이가 들어가며 숙명적으로 친해져야 하는 대학 병원도 바로 길 건너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사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해명하라는 촉구를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마치 내 체형에 맞추어 잘 길들여진 움푹한 소파처럼 너무 편안하고 안락해 이보다 더 편리한 서식지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벌써 마음을 정한 반려인에게는 나의 설득과 주장은 공중에 흩어져 소멸되는 공허한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워봐야 에너지만 소진할 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생각이 그곳에 이르자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생각이 마음이 차지하고 들어왔다. 그리곤 요즘 정치인들에게는 사전에서나 볼 수 있다는 협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집 구하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대의명분이라도 있었지... 우리 집 구하기는 대의명분도 없는 상태로.


미국의 집을 사는 방식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한마디로 서비스 업종에 특화된 한국에 비해서 미국은 서비스 면에서 굉장히 낙후되어 있는 나라다. 엄연히 부동산 중개인이 있지만 구매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이유로 주택 구매를 거의 자율에 맡긴다. 매물이 나와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개입을 하기도 하지만, 80% 정도의 일을 구매자 자신이 발품을 팔아 해결을 하게 놓아둔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무슨 강하게 자립심을 키워야 하는 아이도 아닌데... 모든 것에 DIY (Do It Yourself-혼자서도 잘해요)가 생활화가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열심히 집을 찾다 구미가 당기는 매물이 나타난다고 해도 덜컥 우리 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부터는 고도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내 패를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고 다른 이의 패를 간파해야 하는 집을 건 도박은 월드 시리즈 포커 결승전에 오른 사람들의 블러핑 (bluffing)을 방불케 한다. 원체 협상하고 거래하고 이런 것을 굉장히 귀찮아하는 사람이라 호갱이라 불려도 정찰제가 완비된 곳만 가는 사람에게 이런 과정은 너무도 피곤했다.


그러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고, 두 명의 경쟁자까지 들어붙어 대기업 공사 도급 계약 입찰에 버금가는 심리전을 써서 어렵사리 계약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이제는 이사를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해야만 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럴 때 MBTI의 마지막 문자에 대문자 J를 쓰는 성향이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깨알 같은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한다고 해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것을 이번 이사를 통해 알았다.


미국 서비스 업체에 종사하는 분들은 마음이 한량없이 넓고 여유가 넘쳐나서 일단 서면 계약을 완료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뀐다.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고용하는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을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면 나중에는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어 수만 개의 볼링핀을 들고 저글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수준이면 천수관음보살*이 와서 저글링을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좋든 나쁘든 (For better or worse)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다 보니 이사는 완료할 수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 숨 돌릴 시간이 주어졌을 때 불현듯 귀차니스트에게 이사란 Shaking the Box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햄스터들에게 박스 안에 생존환경을 만들어주면 자기가 편안한 자리를 잡고 움직임이 엄청나게 둔화된다. 이들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면 실험자가 박스를 흔들어 햄스터들을 자리에서 털어낸 다음 그들이 새로운 편안한 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도록 만들어야 한단다.


이번 이사가 딱 그 느낌이었다. 편안함 속에 귀차니즘을 넘어서 게으름의 경계에 반쯤 누워있던 상태였는데 반려인의 손에 의해 흔들려 버린 내 편안한 서식처. 아직까지는 흔들어 놓은 박스의 효과가 조금은 남아 있어서 퇴근 후 짐을 푸느라 초과 노동을 고되게 하고 있다. 이제 새 박스로 들어왔으니 빠른 시간 내에 정리를 마치고 내 자리를 찾아 안주하는 햄스터처럼 귀차니스트의 본연의 모습으로 속히 돌아가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다음 이사는 다음 생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계획해야겠다.


*일본 밀교의 팔이 천 개인 관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