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는 출장도 아닌데 왜 불안할까?
공항을 데려다줄 택시를 기다리는 출발 30분 전부터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닌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나비의 날개짓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혹시 바빠져서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점심에 대한 보상으로 욱여넣은 거한 아침 식사가 야속할 지경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음에도 자꾸만 확인을 한다. 예약은 제대로 되었나? 날짜를 확인하고 시간은 점검한다. 비행기 스케줄과 비행기가 출발하는 터미널까지 다시 꼼꼼하게 돌아본다. 벌써 수십 번을 확인을 한 과정인데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란을 강박증 내지는 강박장애라 한다. 정의에 의하면 강박장애는 일종의 불안장애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상태를 말한다 (출처: 나무위키). 강박장애는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으로 나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강박 사고에만 해당된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에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은 강박증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강박증이 일상생활을 방해하면 질환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다행히 나에게는 강박증이 특정한 환경과 시간에만 국한이 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니 중증 환자는 아닌 셈이다.
기다리던 택시가 제시간에 도착을 하고 택시를 타고나면 다음 과정의 걱정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주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또 다른 나비 한 마리가 문을 열고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뱃속에 사는 이 나비는 번식력도 무서울 정도로 강해서 걱정이 하나 늘 때마다 몇 배가 되어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렇게 한 마리 두 마리 모인 나비들은 성역 (santuary)을 이루고 마음과 생각을 잠식해가기 시작한다. 수십 번을 다녀갔던 공항인데도 불안감은 포로로 잡은 내 마음을 좀처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시큐리티 체크 포인트도 TSA Pre-Check이라 부르는 프로그램에 가입이 되어 있어 단 2분이면 통과를 할 수 있고, 셔틀을 타고 작은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작은 터미널로 옮겨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만약의 변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찍 공항에 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에 게이트를 제시간에 찾아가는 걱정보다는 비행 출발 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 같은데.
이런 모든 걱정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걱정들이 실수를 잘 하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 주는 장치는 되지만 마음속의 전쟁은 좀처럼 평화 협정을 이루어 내기가 힘들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처럼 변해 버린다. 성경에 나오는 깨끗이 청소된 집에 더 많은 귀신들이 몰려든다는 구절처럼, 머리를 비워낸 순간에 오히려 걱정이라는 이름의 잡념들이 몰려든다. 뱃속에 있던 나비들이 머물던 걱정과 근심의 나무들이 골수를 타고 가지를 뻗어 머릿속에 새로운 개체로 뿌리를 내린다. 이 나무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어느새 머릿속을 점령해 버린다.
게이트에 앞에 출발 시간 한참 전에 도착을 하고서도 계속해서 강박은 진행된다. 종이 탑승권을 쓰던 시절에는 탑승권이 분리되는 곳에 경고문이 하나 있었다. 'Void if Detached! (분리되면 무효)' 그런데 이 탑승권이라는 것이 원래 쉽게 분리가 되라고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이라 호주머니에 넣다가 솔기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 탑승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확인 강박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가 되었음에도 그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다. 혹시나 삭제 버튼이 눌렸을까 봐.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강박 증상은 계속된다. 좌석이 뒤쪽인데 혹시나 가방을 얹을 공간이 없으면 어쩌지? 창가 자리인데 화장실을 가야 한다면? 그런데 내 옆에 앉은 사람이 잠을 자고 있다면 이 사람을 깨워야 하나? 아니면 화장실 가야 하는 것을 참아야 하나? 이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어쩌면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오만가지 걱정을 해가며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나와의 싸움을 한다. 이제 비행기에 타야 하는 시간. 걱정했던 대로 내 좌석이 있는 곳에 화물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가방을 부쳐야만 했는데 가방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이제는 변수가 별로 없는 비행기라는 특수한 공간에 앉아 있으니 좀 여유를 가져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 즈음에는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 예를 들면 렌터카를 구하고 호텔을 찾아가고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또 마음이 분주해지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세 시간의 여유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