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의 정령들이 사는 집
국립 카탈루냐 미술관을 돌아보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Pg. de Gràcia쪽으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는 가우디 건축의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카사 밀라 (Casa Milà) . 입장 예약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카사 밀라 1층에 위치한 El Cafè de la Pedrera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물론 이런 여행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은 항상 손님으로 바글거리니 가격 대비 맛이 없는 여행자의 함정으로 불리지만, 여행 6일 차가 되고 나니 맛집을 찾아가고 싶은 열정도 식은 상태였다. 그냥 한 끼니까. 우리에게는 그냥 대충 때우고 카사 밀라를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천막 안에 자리를 잡고 잽싸게 파스타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 다녀온 짱구언니가 화장실을 가란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데도 내부 장식 구경을 위해 꼭 가란다. 카사 밀라의 별명과 이 카페의 이름이 la Pedrera (채석장)인 이유는 외관이 울퉁불퉁한 자연석처럼 보여 그렇다고 한다. 외관도 울퉁불퉁, 그리고 내부도 울퉁불퉁 마치 채석장 동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시킨 음식은 예상보다 맛이 있었는데, 우리가 폭풍 흡입을 하고 있는 모습에 옆에 앉은 듕귁 가족에게 우리 음식이 맛이 있어 보였나 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주문을 한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한참 웨이터 아저씨하고 실랑이를 벌이더니 마침내 영어가 좀 되는 여자가 일어나 우리 접시 쪽에 손가락질을 해가며 따졌다. 아무리 목적 지향적이라지만 그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와 손가락질을 할 것까지야… 손가락을 포크로 찍을 뻔했다. 서양에서는 다른 이가 식사하고 있는 것에 눈길을 주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식사를 마치고 카사 밀라에 입장을 기다리는데, 아주머니 하나가 길을 막고 직원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직원은 영어를 곧잘 했지만 채석장 (Quarry)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뒤에 서있던 내가 용케 알아들었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왜 이곳이 채석장으로 불리는지, 채석장의 스펠링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을 해주고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다. ㅋㅋ 내가 마치 여기 일하는 직원인 것처럼.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ㅋ 내가 듕귁 사람처럼 생겼어도 나름 미국 사람이에요.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설계한 마지막 주택 건물이다. 그가 지은 가장 큰 주거 프로젝트이자 그의 상상력이 집약된 공간이다. 건축물이기보다는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보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타원형으로 생긴 중정에서 바라다 본 하늘은 가우디의 타원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의 마스터피스와 조화를 이루며 반짝였다.
투어에 포함된 오디오 가이들을 들으며 돌아보는 카사 밀라. 물론 엄청나게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건물은 사업가 로제르 세지몬 데 밀라와 그의 아내 로세르의 의뢰를 받아 지어졌는데, 이때는 가우디가 자연주의(Naturalista)에 심취해 있던 때라 건물의 많은 부분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기적 형태라는 것이 특별했다. 카사 밀라 자체가 다세대 주택으로 설계가 된 덕분에 공개된 전시실의 대부분이 생활 공간이었다. 아기방, 하인방, 침실 등은 실제 그들이 살았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어 아직도 그들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때 또 다른 무례한 듕귁인 커플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사진에 있었다. 가우디의 건축이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는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좋은 포토스팟을 정하면 그곳에서 사진을 한꺼번에 백 장 정도는 찍어야 만족을 하는 듯했다. 게다가 사진을 찍고 나면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것이 미덕인데 그곳을 가로막고 사진을 확인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진을 다시 찍어야 하는데 스팟을 빼앗기기 싫다는 이기주의적인 모습이다. 그렇기에 그들 주위에는 항상 미간을 찌푸린 사람들이 존재했다. 다른 이를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여행을 금지시키는 만국 공통법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다락방을 지나 이 건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옥상에 올라야 하는데 이들과 엮이기 싫었다. 다락방은 배의 용골 모양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벽돌 아치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은 박물관처럼 가우디가 건축한 건물들의 모형과 그가 어떻게 중력을 계산했는지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가 천재임을 증명해 주었다. 쇠사슬을 달아 늘어뜨린 후 그것을 거울을 통해 보면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아치형의 건물을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파밀리아 사그라다와 콜로니아 구엘 (미완성 건축물)의 아치 지붕이 그렇게 설계되었다.
다락방을 지나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서면… 우아~~~하는 감탄부터 터진다. 규모도 꽤 크고 탁 트인 전망은 둘째치더라도 모래 언덕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 표면에 형형색색의 굴뚝들이 옥상을 지키고 있다. 어찌 보면 외계인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투구를 쓴 전사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은 타일을 붙여 반짝이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중간에 하트가 박혀있는 것도 있다. 가우디가 우리에게 선물해 놓은 굴뚝이 있는 놀이터다. 그곳은 마치 건축과 상상의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세상 같았다.
가우디의 건축물의 대부분은 옥상이 백미인데, 신기하게 생긴 굴뚝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건물에 이 많은 굴뚝이 필요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굴뚝의 용도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는데 이런 사인을 하나 발견했다.
“Don't be misled: they're not chimneys. What you can see on the remarkable rooftop are the guardians of this house. Some see them as warriors. Others as giants who came alive at night under a full moon. In any case, they now speak to us from legendary heights, mocking poems about giants written in English (lord Byron and Tennyson).
오해하지 마세요. 굴뚝이 아닙니다. 이 놀라운 옥상에서 보이는 것은 이 집을 지키는 수호자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전사로, 어떤 이들은 보름달 아래 밤에 살아나는 거인으로 여깁니다. 어쨌든, 그들은 이제 전설적인 높이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며, 영어로 쓰인 거인에 대한 시(바이런 경이나 테니슨 경)를 조롱합니다.”
바이런과 테니슨의 시를 잘 모르기에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굴뚝의 용도는 아닌 것으로. 오히려 이 집을 수호하는 정령 정도로 보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다.
굴뚝의 용도가 어찌 되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옥상은 그 자체로 가우디가 창조해 놓은 하나의 세계였다. 바르셀로나의 햇살과, 여행자들의 행복, 그리고 가우디의 숨결이 한데 섞여 있었다.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겨진 부분조차도 불완전함의 완벽함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돌아보는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 역시 여기도 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