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지로나

완벽하지 않아서 더 빛난 하루

by 꿈 공작소

바르셀로나 여행은 거의 완벽했다. 구 선생이 엿을 먹인 경험 두 번과, 체력적으로 피곤해 아주 사소한 장소 (나에게는 중요했지만 여행 파트너에게는) 하나를 계획에서 건너 뛴 것을 제외하고는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떠나는 시간까지 물 흐르듯 흘러갔다.


심지어 호텔에서 짐을 찾아 Avis 렌터카로 가기 위한 지하철 환승 계산까지 완벽했다. 올라 카드 5일짜리가 만료되었기에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 지하철 여덟 번을 탈 수 있는 티켓을 끊었고, 마지막 환승까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바르셀로나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은 연주를 하는 사람들로 흔들거렸다. 그들과 함께 바르셀로나의 낭만과 흥을 마지막까지 즐겼다.


그렇게 계획대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달해 렌터카를 수령해 지로나로 갔다면 참 행복했을 텐데… 구 선생과 우리의 악연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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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분명 내가 예약을 한 Avis는 바르셀로나 중앙역 근처였는데, 우리가 내린 역은 한산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렌터카 회사가 있을 곳 같지 않았다. 그래도 구 선생이 알려주는 경로대로 따라갔는데… 끝까지 안내를 따라갔는데, 결국 아무것도 없는 곳에 우리를 끌고 가서 경로 안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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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했다. 다시 Avis 앱을 켜서 주소 링크를 눌렀더니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내를 하는 구 선생. 정말… 내 핸드폰이 아니라면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지하철 티켓을 사고 Avis를 찾아가야만 했다. 나의 계산과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안 그래도 해외에서 운전을 한다고 심기가 불편한 짱구언니인데, 지하철역에서 걸어야 하는 길은 또 왜 이렇게 멀고 험한지. 둘 다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Avis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이 다 빠져있었다. 게다가 후진 기어가 예전에 내가 쓰던 것과 반대쪽에 있어 차를 기둥으로 몰아넣는 위기도 맞아야만 했다. 겨우 렌터카 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출발할 수 있었는데, 지로나에 가기 전 풍선 아저씨가 알려준 ‘엘스 분커스 델 카르멜(Els Bunkers del Carmel)’이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티비다보에 있는 사크랏 코르 성당 (Temple Expiatori del Sagrat Cor)을 보고 가자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유일한 목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로나에 도착하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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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보다 작은 도시인 지로나는 주말 오후를 누리는 사람들로 거리가 채워져 있었다. 스틱으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음 가는 길. 그 길 위에 비척이며 걷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호텔을 찾아야만 했다. 게다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호텔 주차장 입구는 그토록 잘 숨겨 놓았는지. 호텔을 끼고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주차장을 찾았다.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나니 맥이 풀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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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냥 눌러 앉을 수는 없었다. 일단 동네 가게를 찾아 음료와 물 그리고 생존을 위한 주전부리를 사다 놓고 지로나 구경에 나섰다. 짱구언니가 좋아하는 피자집 하나를 물색해 놓고 동네 돌아보기에 나선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거리에 비해 지로나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결코 바르셀로나보다 여행객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대체적으로 고요한 분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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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나는 바르셀로나보다 작지만, 그만큼 깊이가 있었다.


주말 오후의 거리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오니아 강을 끼고 형성된 마을은 마치 피렌체의 한 장면을 닮아 있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오래된 건물들의 색감은 스페인의 시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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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나는 꽤나 유명한 식당도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미슐랭 별점을 받은 식당도 몇 있다고 들어 예약을 하려고 했지만, 토요일 오후에 예약 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래서 피자집 하나를 섭외했는데, 하고많은 식당 중에 왜 흔한 피자집이냐고? 구 선생 때문에 지치고 힘든 짱구언니에게 소울 푸드를 수혈해야 한다. 그래야 짱구언니가 다시 살아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다행히 분위기 좋은 골목길에서 먹는 피자는 특별했다. 모기 몇 마리가 귀찮게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벽에 가까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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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푸드를 먹고 힘을 얻은 짱구언니가 마을을 좀 더 돌아보자고 했다. 이곳에 Muralla de Girona라 불리는 로마시대에 지어져 중세에 확장된 성벽 길이 있다고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꼭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소울 푸드를 먹고 다시 정신을 차린 짱구언니를 힘들게 할 수는 없어서 그냥 골목길을 정처 없이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작은 가게들,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음악 소리. 그것이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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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젤라토 하나와 광장을 더하니 완벽해졌다. 하루 종일 그냥 광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한참을 광장 끝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 도시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꽉 채워져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익명성은 오히려 자유를 주었고, 그 자유는 여유로 변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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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깨달았다. 여행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계획이 어긋나도, 길을 잘못 들어도, 결국 그 모든 우연이 나를 이 완벽한 자리로 데려온다는 것을. 그날의 바르셀로나와 지로나는 그렇게 내게 불완전함의 미학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모든 게 매끄럽게 흘러가던 여행보다 훨씬 진하고, 기억에 남는 역전의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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